물빛이란 고운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다. 그런데 그 마을의 유래는 슬프다. 장마가 지면 하수 처리 시설이 잘 안된 저지대 이곳까지 한강 물이 들어와 '수색(水色)'이 되었단다. 그 고운 이름이건, 그 이름에 담겨진 슬픈 지리사이건, 이제 이 동네는 '역사'의 한 장을 넘기고 있는 중이다. 2005년 뉴타운 개발에 합류했지만 지지부진했던 수색, 최근 들어 재개발이 활기를 띠며 이주가 개시되고, 철거가 진행중이다. 이제 그 사라질 과거, 수색을 사라져버린 여인 예리와 그녀의 주변을 떠도는 세 명의 남자들을 통해 장율 감독이 기억한다. 




우리와 이방인을 가르는 것이 코스모폴리스(cosmopolis) 서울,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겠느마는, 아이러니하게도 '개발'과 '경제'라는 이름표만 달면 간이라도 담싹 들어내어 줄 거 같은, 그리고 그런 토착민과 달리, 경계인인 장율 감독은 그의 작품을 통해 꾸준히 우리가 미처 몰랐던 '그곳'을 영화로 살려내고 기억한다. 일찌기 2008년 <이리>이래, 다큐였던 <풍경(2013)>, <이방인들;디지털 삼인삼색(2013)>, <경주(2014)>에 이르기까지. 이리와 경주란 지명이 곧 영화 제목이었듯, 영화 속 '그곳'은 그곳에 터를 잡아 살거나, 스쳐지나가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한 편의 작품을 이룬다. 아마도 토착민인 우리가 미처 잡아내지 못한, '곳'에 대한 예민한 정서가 경계인 장율의 섬세한 시각 속에 뒤늦은 깨닮음으로 다가온다. 이제 봄날의 꿈처럼 찾아왔다 사라질 <춘몽>도 마찬가지다. 

경계인 장율이 살려낸 물빛 마을 
재개발이 진행될 수색의 한 골목, 거기에 드리워사는 사람들이 있다. 재개발 예정이기에 천정이 무너져도 집주인이 책임지지 않는, 하지만 7,80년대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모던한 양옥집 앞엔 비닐 포장이 생뚱맞게도 '고향 주막'이 덜컥 들어앉아 있다. 그 '주막'의 주모는 중국에 와서 잠시 바람을 핀 결과물로 자신을 낳고 한국으로 도망치듯 들어온, 그러나 이제는 스스로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는 아버지를 부양하는 젊은 예리(한예리 분)다. 북간도 등 종종 책을 뒤적이고, 영상자료원에 가서 무료 영화를 보며, 몸에 흘러 넘치는 리듬을 타는 예리, 하지만 현실은 자신의 운명을 역학자에게 기대어야 하는 '포장마차'와 '아버지'에 의해 묶여 오도가도 할 수 없는 존재다. 



그리고 그런 예리 주변을 맴도는 세 사람, 그녀가 들어사는 집주인 아들이라는 어리버리한 간질 환자인 종빈(윤종빈 분), 밀린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난 탈북자 정법(박정범 분), 한물 간 건달 익준(양익준 분)이 그들이다. 아, 그리고 또 한 명이 있다. 수색 산길을 오프로드식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축구공을 자신의 몸처럼 부리는 소년(이주영 분)까지. 그들은 예리와, 예리의 주막을 빛을 찾아드는 나방처럼 드나든다. 

사라질 수색과 사람들을 향한 헌사이자, 추도사 
흑백의 영화처럼, 그 안에 웅크린 변전소처럼 좀처럼 삶의 환희를 찾을 길 없는 수색의 삶, 그리고 탈북자와, 건달과 찌질한 백수 청년의 어울리지 않은 조합은 때로는 연적으로, 때로는 동지애를 발휘하며, 아버지에 묶여 오도가도 못하는 예리와 함께 그들은 잠시 봄날 꿈같은 시절을 맞본다. 물론 그 봄날의 꿈은, 이제는 봄이란 단어가 무색해진 세월처럼 그랬던 적이 있었는가 싶게 스쳐간다. 마치 이제 사라져 우리의 기억 속에 '수색'이란 단어만이 문명화된 도시 저변에 아르라이 남겨질 기억처럼. 



영화 속 예리가 영화 종반부 주막을 찾아온 '몸도 마음도 건강해 보이는' 남자 앞에서 음악에 맞춰 몸을 나풀거릴 때, 모처럼 입은 그녀의 하얀 치마와 함께, 그녀의 한 마리 나비와 같다. 그리고 곧 그것은 '호접몽'을 떠올린다. 중국의 철학자 장자가 꿈속에서 한 마리 나비가 되어 노닐었는데, 꿈을 깨고 보니 자기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자신의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던, 그 나비의 꿈. 영화는 내내 예리의 이야기를 하지만, 막상 막판 한 장의 영정 사진으로 남긴 그녀를 보니, 그녀가 잠시 이 세상에 왔다 머물러 간 건지, 수색에 버림받은 이 시대의 세 '아웃사이더'가 잠시 예리라는 '꿈'을 꾼 건지 모호하다. 

꿈은 쓸쓸했지만 따스했고, 이제 꿈에서 깨서 돌아와 색을 찾은 수색에 남겨진 그들의 삶은 비루하다. 하지만 잠시 꿈을 꾼 동안구구절절 그들의 삶을 설명하진 않았지만 그들의 존재는 충분히 인간적이며, 심지어 사랑스러웠다. 아마도 수색에 살았을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금수저라는 집주인 아들도, 밀린 월급은 받았지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또 북에 남겨진 사랑하는 가족을 짊어진 탈북자의 삶도, 그리고 위태로운 건달의 삶도. 예리와 함께한 시절은 그저 꿈으로 흘러가고, 수색보다 '상암 디지털 미디어 시티'라는 지명으로 기억되는 도시의 '고향'은 재개발 속에 '수몰'될 예정이다. 잃어버릴 고향에 대한 마지막 헌사이자, 갈 곳없는 아웃사이더를 향한 추모사이다. 
by meditator 2016. 10. 19. 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