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까지 2주에 걸려 방영된 <최후의 권력>이 인류 최초이자, 최후의 완벽한 권력의 형태로 인정받고 있는 원시공동체의 '빅맨'을 반면교사로 삼아, 실제 정치인들의 '빅맨'실험을 해보았다면, 11월24일 5부작 <최후의 권력>은 세 번 째 시간으로 현대까지 유지되고 있는 왕권제도의 존재 이유를 통해 권력의 또 다른 존재 이유를 살펴본다. 


<3부 왕과 나>에 등장한 21세기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왕권 국가에는 브루나이와, 스와질랜드, 그리고 부탄이 있다. 

카메라는 스와질랜드에서 벌어지는 '갈대축제'를 집중 조명한다. 스와질랜드 전국에서 성년이 된 여자들이 모여 왕의 여자로 간택받기 위해 반나의 모양새로 춤을 추며 벌이는 '갈대 축제'가 21세기에도 여전히 벌어지는 것을 두고 이견이 분분하다. 그에 반대하는 혹자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왕의 여자 간택 과정을 매년 수행한다는 과정 자체가 전근대적이며 여성 비하적이라는 주장을 편다. 이에 반해 찬성하는 측은, 만약 그 과정에서 진짜로 왕비가 간택되었다면 지금까지 왕의 왕비만 40~50명에 이르렀을 것이라며, 그것은 그저 성년에 들어선 여성들의 성인식 같은 통과의례이자, 전통 축제라고 선을 긋는다. 이런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되는 가운데, 젊은 여성들은 그 며칠 동안 축제 분위기에 들떠 흥겨워하며, 왕을 실제 만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자신에게 행운이 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들떠있는다. 

(사진; 스와질랜드 국왕, 스포츠 월드)

하지만 13번 째 왕비가 뽑힌 이후로, 축제는 그저 축제일 뿐이었다. 사실 13번째의 결혼도 기실 알고보면 축제를 통한 간택이 아니었고, 우리가 역사를 통해 보아왔던 왕권 제도의 결혼들처럼,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약한 왕권을 다지기 위한 정치적 제휴의 한 형태일 뿐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스와질랜드에서 '갈대 축제'를 둘러싼 논란의 본질은, 왕의 여자가 간택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 국민 소득과, 에이즈 세계 1위라는 치명적인 삶의 조건의 문제다. 그런 현실 속에서 여전히 희희락락 축제나 벌이고 있을 때냐는 반문이 축제를 반대하는 측 목소리의 본질이다. 

스와질랜드와 같은 처지에 놓인 왕권 국가가 또 있다. 바로 희말라야 산속의 이상향 부탄이다. 가난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삶의 만족도 1위인 국가 부탄도 여전히 6대째 왕권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 나라 역시 지표상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과 상관없이 국민들의 가난을 구제하지 못하는 문제가 왕권의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스와질랜드와 부탄은 왕이 스스로 근대적 의회제도를 도입하는데 앞장을 선다고 다큐는 설명한다. 스와질랜드에는 군주제와 투표제도를 결합한 독특한 정치 시스템 틴쿤들라(Tinkhundla)가 있다. 총 95명의 상하원 의원 중, 30명은 왕이 임명하고 65명은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군주 민주주의’라고 설명되는 이 시스템을 통해, 국왕은 민의를 반영하는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의회에 행사한다. 부탄의 4대 국왕 지그메 싱예 왕추크가 시작했고 그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아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제로 정체의 변화를 꾀한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백성은 파도와 같고, 왕은 그 파도 위에 띄워진 배와 같기에 백성을 따르기 위해, 왕은 앞장서 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최후의 권력>이라는 프로그램의 관점에 대해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미 역사를 통해 누누히 학습해 왔듯이, 권력을 가진 자가, 스스로 자신에게 집중된 권력을 나누어 주는 경우가 있었던가? <최후의 권력>은 왕이 앞장서 근대적 의회제도를 도입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21세기에도 여전한 전근대적인 제도를 고집하는 정치 제도의 퇴행에 불만을 느낀 국민들의 움직임에 불안을 감지한 국왕이, 그런 제도의 도입을 통해,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고자 한 타협의 결과물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징후는 스와질랜드와 부탄과 함께 조명된 브루나이 왕국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강고한 왕권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브로나이는, 왕의 재산으로 된 오일머니를 국민 복지에 쏟아부음으로써, 서유럽 어느 국가 못지않은 복지국가의 면모를 보인다. 자식이 열 댓 명이 넘어도 브로나이 사람들은 걱정이 없다. 나라에서 다 해결해 주니까. 반면, 가난에 시달리고 에이즈에 시달리는 스와질랜드와, 행복하다고는 하지만 가난은 구제하지 못하는 부탄은 왕이 앞장서 근대적 정치 제도와의 제휴를 실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진; 브루나이 술탄 하사날 볼키아; 스포츠월드)

하지만, 그것마저도 인터뷰에 등장한 스와질랜드 국회의장이 국왕 형이라는 사실로 볼 때, 과연 왕에 의한 근대적 정치 제도가 프로그램 중에 등장한 스와질랜드 국민들의 희망처럼 제대로 된 정치를 구현해 낼까 역시 미지수다. 

즉 21세기로 오면서, 세상의 권력은 그 주체가 왕의 권력의 유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듯이, 1인 왕권에서, 다수의 '백성'의 품으로 그 주체가 바뀌어 갔던 것이다. 그런 역사적 흐름을 브로나이는 오일 머니를 통한 복지를 통해 변형시켜 가지만, 그것마저 할 수 없는 스와질랜드와 부탄은 왕이 앞서, 근대적 형태의 민주주의를 이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결코 왕의 '은덕'이나,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역사는 없다. 

현대에 있어서도 여전한 '왕권'이라는 권력 형태를 조명해 보고자 하는 시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 관점이 '왕'에 머물러서는, 또 다른 나라의 '용비어천가'가 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3. 11. 25. 0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