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을 지키다 고종의 부름을 받고, 왕의 최측근인 무위소 별장이 된 박윤강(이준기 분)의 아버지 박윤한(최재성 분)은 조선 제일의 검객이었다. 조선 최고의 칼잡이답게, 개화파들을 저격하는 총잡이들에게 칼로 맞서던 그는 결국 총에 의해 쓰러졌다. 그리고 그의 아들 박윤강 역시 총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일본인 거상이 되어 나타난 일본인 하세가와 한조, 그는 아비의 복수를 하기 위해, 아비의 무기 칼 대신, 총을 들었다. 


<조선 총잡이>라는 제목부터 아이러니다. 500여년을 이어 온 전통의 나라와, 가장 근대적인 무기인 총이라니, 당연히 내용도 그러하다. 조선 최고의 검객 아들이 아비의 복수를 위해 든 총!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보면, 제목이나, 드라마가 보여주는 내용만이 아니라,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조선 개화기의 상황 자체가, '조선 총잡이'이와 같은 '모순' 그 자체다.

7월 10일 고종(이민우 분)은 역관 정회령(엄효섭 분)을 만난 자리에서,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권신들에 대적하기 위해, 즉 지금의 조정 안에서 왕의 권한을 늘릴 수 없기에, 대신 새로운 기관, '아문'을 만들 것을 다짐한다. 보수적인 권신들은 '수구'적인 입장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않기에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개화적 내용을 적극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고종의 구상, 혹은 개화파 정회령의 제안은 결국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실현된다. 
드라마 상 고종은 많은 비중은 아니지만, 등장할 때마다, 척신들이 전횡을 일삼는 닫힌 조선에서,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나라를 근대화하고, 권신들을 제압하고자 하는 '의식있는' 군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고종이 손을 내민 것이, 내재적으로 형성된 '개화파'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갑오개혁'의 실체는 어떨까? 
1차 갑오개혁의 주체는 아이러니하게도 고종이 아니었다. 청일 전쟁 과정에서 청나라 쪽으로 기운 고종과 명성황후에 대해, 일본은 궁궐에 난입하여 명성황후 세력을 몰아내고 대원군을 옹립한 후, 김홍집 등 개혁 세력을 중심으로 갑오개혁을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왕이었던 고종은 배제되고, 일본의 영향력 하의 김홍집 등의 17명의 의원들이 만든 군국기무처 등을 통해 기존 6조를 대신할 8아문 등이 만들어진다. 

즉, 고종은 새로운 나라, 왕권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꿈꾸었지만, 더 이상 왕권이 중심이 되는 시대가 아니었고,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조선은 강력한 친정을 꿈꾸던 고종의 희망을 품어줄 수도 없었다. 또한 개화를 통해 강력한 근대 국가를 꿈꾸던 개화 세력 역시, 섣부르게 의탁한 일본에 의해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된다. 결국 나라 안의 적을 제거하기 위해, 불러들인 세력이 보다 강한 적이 되어, 고종도, 개화파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이제이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건은 고종 만이 아니다. 
보부상단의 수장 최원신(유오성 분)의 총을 맞고 죽은 것으로 되버린 박윤강도 마찬가지다. 천재일우로 죽어가던 그를 살린 것은 바로 훗날 갑신정변을 시도한 급진 개화파 김옥균(윤희석 분)이다. 그의 구명 덕분에 일본으로 건너간 박윤강은 복수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일본인 하세가와 한조로 거듭난다. 그리고 조선 제일 검객이던 아버지 덕분에 남못지 않게 다루던 칼을 버리고 아버지를 죽인 총을 택한다. 


아버지를 죽인 복수를 하기 위해, 바로 아버지의 무기를 택한 박윤강의 딜레마는, 그저 한 개인의 딜레마이기 보다, 어쩌면 조선 말기, 외세와 외국의 문물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역사적 존재가 택할 수 있는 불가피한 선택의 길을 상징한 듯이 보인다. 
아버지를 죽인 총잡이, 보부상단의 수장 최원신, 그리고 그 배후가 되는 척신 세력, 그들을 없애기 위해, 가장 강력한 그들의 상대가 되는 일본과 손을 잡은 박윤강, 그는 그의 희망대로, 이제 최원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본인 거상 하세가와 한조가 되었다. 그런 그의 앞에 보부상단 수장 최원신은 한없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를 거상으로 만들어준, 일본이, 과연 그에게 아무런 댓가를 요구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그의 복수를 위한, '이이제이(以夷制夷)'는 모든 개화파들이 그러했듯, '매국(賣國)'의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눈 앞의 적을 없애기 위해 손을 잡은 세력이, 어쩌면 더 큰 적이 되는 운명에 처한 사람들, 그리고 바로 그런 개항기 조선의 딜레마가, <조선 총잡이>의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이다. 


by meditator 2014. 7. 11. 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