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라, 조선이 건국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나라가 건설되자,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도전이 명나라에 다녀오는 사이 왕이된 이성계는 도읍을 옮기고자 했고, 대소 신료들은 그런 이성계에게 반발한다. 그런 신료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라고 명을 한 이성계, 그런 이성계 앞에 정도전이 돌아와 달랜다. 도읍을 옮기는 문제는 명나라에 맞서 나라힘을 키운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정도전의 설득으로 마음을 돌린 이성계, 정도전에게 묻는다. 과연 조선의 왕은 무엇이냐고. 정도전은 답한다. 왕은 이해하고, 품고, 안는 것이라고. 그런 정도전의 답에 이성계는 씁쓸해 한다. 자신이 생각하던 왕이랑 다르다고. 자신이 왕이 되면, 신하들과 함께 많은 것을 이룰 줄 알았는데, 막상 왕이 되니 할 일이 없다고. 동상이몽이다. 

여진족과 힘을 합쳐 명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정도전의 건의에 이성계는 군권을 정도전에게 쥐어준다. 마음껏 해보라고. 하지만 그렇게 군권마저 쥔 정도전에게, 이성계의 다섯 째 아들이자, 차기 왕위에 마음을 둔 이방원은 탐탁지 않다. 그에게 정도전의 모습은 '전횡'으로 비취질뿐이다. 

43회를 마친 <정도전>이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의 갈등은, 조선 왕조 500년을 두고 내내 조선이란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했던 왕권과 신권 헤게모니 싸움의 시작을 알린다. 

이미 <정도전>을 통해서 보여지듯이 조선이란 나라는 정도전의 나라이다. 하지만, 정도전의 나라는 정도전이란 한 사람의 나라가 아니다. '민본'을 내세웠던, 정도전과, 정도전과 뜻을 함께 했던 개혁적 신진 사대부들의 뜻을 기반으로 세워진 나라이다. 43회, 자신을 찾아온 아들에게 정도전은 '조선 경국대전'을 만들 뜻을 비춘다. 누구 한 사람 실권자의 의지가 아니라, 법에 의해 제도적으로 정비되고, 돌아가는 나라로서의 조선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런 정도전에게, 왕은, 그저 신하들의 의해 움직이는 나라 위에 존재하는 상징적 존재일 뿐이다. 이른바, '짐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는 근대적 의회 민주주의의 조선판이다. 정몽주의 좋은 군주를 만나 뜻을 펴면 된다던 의지을 꺽으며, 스스로 괴물이 되면서도,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했던 이유이다. 군주가 누구이던 상관없이, '유학'이라는 사상적 토대에 근거한 '시스템'과 제도로 움직이는 나라, 현대의 민주주의 제도에 버금가는 선구적 시각이다. 

(사진; 뉴스엔)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그의 의지는, 함께 나라를 세운 동반자이자, 새로운 군주, 이성계에게 조차 올곧이 이해받지 못한다. 여전히 이성계도, 그리고 야심을 가진 그의 아들 이방원에게도, 조선은, 이씨, 자신들의 나라이다. 자신들의 힘으로 만들었기에, 자신들 마음대로 다스리고 싶은 욕망을 그들 이씨들은 감추지 못한다. 당연히 그런 그들에게, 정도전이 만든, 만들고자 하는 나라는 얼토당토치 않다. 나라를 만들어 놓고, 뒷짐지고 구경을 하라니!

물론, 정도전의 민본이라는 것이, 이미 고려 말, 그들의 개혁적인 토지 제도 정전법이, 신료들의 거센 저항에 밀려, 한 발 뒤로 물러선 것처럼, 시대적, 신분적  한계를 지니게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나라가, 한 임금의 개인적 권력이 아니라, 사상적 자각을 한 신하들의 집단 지도 체제라는 틀은 당시로서는, 아니 지금의 시각에서도 시대를 앞서나간 진보적 선구안이었다. 

그러난 그런 정도전과 그를 따르던 조선을 만든 중심 세력의 입장은, 새로운 나라 조선이 건국되자 마자, 바로 갈등의 씨앗이 된다. 자신의 나라라 생각한 왕과 그런 왕을 중심으로 왕권 중심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세력과, 그에 반하는 세력간의 500년간의 피튀기는 혈투의 시작이다. 

결국 역사적으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정도전의 선구적 시도는 이방원이 도모한 왕자의 난으로 실패로 마무리지어진다. 하지만, 정도전이 만든 조선 경국대전을 비롯하여, 삼정승 제도의 합의에 기초한 의정부 제도와, 상소 등을 통해 왕권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간원 등이 500년 동안 끊임없이 왕권 중심으로 가려는 조선을 흔든다. 훗날 태종이 된 이방원을 비롯하여, 조선의 역사 속 걸출하게 이름을 남긴 대부분의 왕들은 신하들과의 정쟁에서의 승리를 전리품으로 챙긴 경우가 많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당쟁과 사화는 그런 전쟁의 또 다른 표식일 뿐이다. 끊임없이 조선의 신하들은, 사실은 자신들의 나라인 조선을 자신들의 수중으로 되찾기 위해, 왕권을 향해 도전하고, 의정부 중심제의 국가, 사간원 등을 통해 왕을 교육하고, 통제하고, 조련하는 국가를 만들고자 애써간다. 

<정도전>에서 이미 보여지듯이, 왕자의 스승이 된 정도전은 어린 왕자에게 자신의 사상을 설파한다. 정도전이 능력있는 이방원이 아니라, 어린 왕자를 차기 대권 주자로 선택한 이유이다. 정도전의 세력에게 왕은 능력있는 지도자일 필요가 없다. 그저 신하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왕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벌써 새로운 나라만 세우면, '모든 것을 다 맡기겠다'던 이성계부터, 정도전이 만들어 놓은 왕이라는 틀에 회의를 느낀다. 그의 아들 이방원은, 분노를 넘어 적대감을 표명한다. 만들어지자 마자, 조선은 위기에 빠진다. 그런데, 그 위기는 단지 헤게모니의 싸움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 정통성의 위기이다. 조선이 조선다울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이  싸움은 500년을 가고, 왕의 성격에 따라, 신하들의 성격과 포진에 따라, 조선의 정통성은 파고를 넘나든다. 


by meditator 2014. 6. 8. 1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