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없다>는 호불호가 갈렸다. 평단의 일부에서는 역시 이경미라 극찬을 했지만, 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말하면, <전체관람가- 아랫집>을 보고 난 정윤철 감독의 느낌에 가까웠다. 이른바 '괴랄하다(괴이하다)'로 표현되는 이경미 감독의 세계를 존중한다 해도, 한 사람이 만든 거라기엔 영화의 톤은 울퉁불퉁했고, 말하고자 하는 바의 정체는 모호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 홍당무>의 양미숙 못지않게 연홍으로 고군분투한 손예진은 빛났다. 그 해의 여우주연상을 손예진에게 준다면, <덕혜옹주>보다 <비밀은 없다>의 연홍이 더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017년 춘사영화제는 <비밀은 없다>의 손예진에게 수상을 했다. 그렇게 이른바 이경미월드가 칭해지는 감독의 독보적인 세계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여배우의 캐릭터를 통해 빛을 발한다. 그리고 단편 영화 <아랫집>에서도 마찬가지다. 12년만에 돌아온 이영애가 분한 희지 역시 괴랄하다. 





히로인을 통해 빛나는 이경미월드 
사전에는 없는 이 신조어, '괴랄하다', 괴상하다와 지랄맞다가 합성되었다 추측되는 이 단어로 응축되는 이경미 감독 영화를 대변하는 이들은 주인공인 여배우들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장면이 연출되면 자신도 모르게 흐뭇하다 못해 흡족한 '아하하하하' 고성의 웃음이 삐져나오고 마는 감독의 취향때문일까? 물론 그 취향에 기반을 두었겠지만, 하지만, 그저 어떤 색채의 프리즘같은 취향이라는 정의 이전에, 이경미 감독이 포착한 지점은, '정상'의 세상에 '정상'처럼 살아갈 수 없는 인간들이다. 

양미숙의 짝사랑 수난사를 그린 <미스 홍당무> 속 여주인공은 비인기종목 러시아어 교사에, 안면 홍조에 거기다 비호감의 언어를 툭툭 내뱉는 '사랑스럽지않은' 여주인공이다.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의 '사랑'을 내세워, '사랑지상주의'의 시대에 역설을 도모한 이 작품은 그래서, 다수의 사랑으로 상처받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비밀은 없다>의 연홍은 또 어떤가, 전라도 출신의 여성으로 경상도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시집와서, 현모양처연하며 정치인의 아내를 자처한 '딜레마'의 응집체이다. 딸을 잃고 무당 앞에서 접신을 하는 듯 자신을 드러낸 그녀의 모습은 자신의 고향말을 묻고 타지역에서 이방인으로 묻어가야 했던 그 수난의 시절을 잘 보여준다. 거기에 자신이 희생을 하여 꾸린 가정이란 신기루마저 사라지고, 그 '아노미'의 상태를 '미친년'같은 연홍을 통해 이경미 감독은 적나라하게 연출해 낸다. 

그렇게, 사회가 제시하는 '그러해야 한다'라는 고정 관념 속에서 살아가지만 거기에 끝내 맞출 수 없는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몸짓을 포착하는데 이경미 감독은 탁월하다. 그래서 이경미 감독의 작품 속 여성들은 거개가 '제 정신이 아닌'듯하지만 그래서 공감이 가고, 그래서 마음을 울린다. 겨우 15분 여의 단편이지만, <아랫집>에서 이영애가 분한 희지 역시 다르지 않다. 11년만에 돌아온 tv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속 신사임당 역 이영애는 이뻤지만 어쩐지 박물관의 박제된 인물을 본듯했다면, <아랫집> 속 희지가 된 이영애는 표정 하나 없는 무표정으로 일관하지만 훨씬 생동감있다. 그리고 그 생동감의 원천은 바로, 아파트 담배 연기에 하소연하지만, 그 이면에 상실의 노이로제로 어찌할 줄 모르는 위기의 여성 희지가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담배 연기 층간 갈등에서 아파트 공동체에 대한 화두까지
'미세 먼지'의 주제를 선택한 이경미 감독은 그 '미세먼지'를 아파트 담배 연기로 인한 층간 갈등으로 풀어가고자 한다. 말이 서로 다른 독립 세대지, 화장실과 하수구 등을 통해 서로가 연결된 공동체 아파트. 그 406호에 사는 희지는 아랫집 306호에서 올라오는 담배 연기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한 화답으로 그녀는 매일 아침 청소기를 들고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고, 그걸로도 풀리지 않은 마음을 결국 편지에 담는다. 

영화는 담배 연기로 인한 층간 갈등을 주제로 삼았지만, 그 갈등의 주체가 되는 인물의 내면과, 그 인물이 부닥치는 또 다른 인물들을 통해 아파트란 공동체가 가지는 다양한 층간 갈등의 유형을 드러내고자 한다. 영화는 마치 '너구리잡기' 게임처럼 그 짧은 시간에, 희지라는 인물의 사실은 애닮은 상처와, 그 상처입은 인물이 마주한 세상의 잔인함, 그리고 그것의 역설까지 두루두루 섭렵하고자 애쓴다. 윗집에서 보내는 편지를 보내는 장면에서 그 평범한 장면에서도 ng가 날 편지지가 순조롭게 들어가지 않아 쩔쩔매는 그 씬에 ok컷을 외치듯, 그리고 정작 윗집에 담배 연기 고통을 호소하는 희지가 흡연자였다는 반전처럼 이경미 감독은 평범한 일상의 틈을 비집고 나오는 일탈의 기운을 곳곳에서 포착해 내고자 한다. 덕분에 영화는 '괴랄한' 아파트 공동체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가 하면, 동시에 더 '괴랄할 수 밖에 없는' 희지의 개인사에 대해 깊은 스펙트럼까지 더한다. 

앞서 이명세 감독이 데이트 폭력을 다룬 <그대 없이는 못살아>가 우연히 기차 역에서 마주친 두 남녀를 통해, 그들의 현재와 과거, 이상과 현실을 조명하며, 그것을 이미지화시켜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기에 '이미지'로 전달된 느낌은 분명하지만, '이성'으로 독해하기엔 난해한 실험적인 영화가 되었다. 그에 이어 이경미 감독 역시 아파트 공동체 사는 다층의 층간 갈등의 요인들을 설명하며, 그것들은 '이영애'가 분한 '희지'란 대표적 인물과 '개구리'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역시나 실험적인 묘사의 계보를 잇는다. 메이킹 영상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이해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이경미 월드! 하지만 그 '영상'의 실험은 이미 '이명세' 감독 편에서 제시된 바 '머리'로 이해하는, '사실'로써 받아들이는 영화적 방식에 대한 질문의 연속이다. 아마도, 이명세 감독의 실험, 그리고 이경미 감독의 괴랄함은 이경미 감독이 그 어느 때보다도 편하게 작업했다는 소감에서도 느껴지듯이 '상업 영화'라는 궤도에서는 궤도 순항이 어려운 시도들이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빛이난 이명세 감독에 이어, 이경미 감독의 작업이, <전체 관람가>의 의의를 빛낸다. 



by meditator 2017. 12. 18. 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