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최근 빈번하게 제작되고, 흥행에 있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과연 '과거'를 보는 '시각'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즉, '역사'란 과거의 사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그 '과거'의 알려진 일부 사실을 '현재'의 잣대로 '편집'할 수 밖에 없는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왜곡' 혹은 '오역'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줄리언 반스의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e.h. 카의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란 명제에 대해 주인공 에드워드가 '역사란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란 해석을 내놓듯이 말이다. 무엇보다 최근 개봉되는 대부분의 영화들이 '과거'를 빌미로 '민족'이라는 감성에 호소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과연 근대적 산물인 '민족'이라는 개념을 그것이 탄생하기도 전인 '조선'이나,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논'하는 것이 옳은 가의 문제이다. 즉, 현재의 '민족적 감성을 부추키기 위해 '과거'를 이용하지 않았는가란 질문에서 최근 한국 영화들은 그다지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역시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우문에 대해 <임진왜란 1592>는 현답을 제시한다. 




조선의 바다를 지킨 사람들
1회에서 선조는 도읍 한양을 버리고 '곧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평양성을 향했다. 하지만 파죽지세로 몰려드는 왜군에, 2회 선조는 다시 평양성을 버리고 정처없는 길을 떠난다. 이미 유성룡의 <징비록>을 통해 이미 알려졌듯이, 조선의 임금 선조는 서슴없이 자신의 나라 조선을 버리고 강을 건너 중국으로 망명하려 했다. 망한 조선의 왕족들처럼 그래도 자신은 강국의 그늘에서 거둬질 수 있으니 라며. 그렇게 임금조차 떨어진 짚신 짝처럼 버리는 나라, 과연 그 나라를 지켰던 사람들은 누구였으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왜군에 의해 도륙당하는 조선의 바다에, 단 한 사람 아직 지지않는 장수가 한 사람 있었다. <임진왜란 1592>는 그 한 사람의 장수 이순신에 대해 굳이 설명을 덧대지 않는다. 그가 남긴 징한 기록 <난중일기> 속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적었을 뿐인데, 구구절절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도, 1회 이순신의 몇 마디 말로, 그가 조선의 바다를 지키려는 그 심정과 마음에 가닿을 수 있다. 그리고 2회, 그런 이순신을 따라, 바다로 나간 사람들을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는 그려낸다. 

2회에 '그들'을 설명하기 위해, 1회 도륙당하는 경상도에서 왜군의 칼에 맞아 죽어가는 아들을 짊어진 채 이순신의 군영을 찾은 막둥이 아빠(조재완 분)를 등장시킨다. '군영'이니 당연히 '민간인'을 들일 수 없는 형편, 하지만 죽어가는 아들을 등에 짊어 진 아버지는 읍소한다. 자신의 아들을 살려달라고, 그런 그를 막아서는 병졸들, 하지만 이순신의 수하 이기남(이철민 분)이 호통을 친다. 죽어가는 아이를 데리고 경상도에서 전라도 좌수영까지 그 먼 길을 찾아온 백성을 여기서 내치면 죽으라는 얘기밖에 더 되냐며. 그리고 그런 이기남의 '군율'에 어긋난 행동을 이순신은 모른 척한다. 하지만 이미 이기남이 보기에도 죽어가던 아이는 좌수영에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귀선(鬼船), 즉 거북선의 첫 출정, 이순신과 좌수영의 야심작이지만, 검증되지 않은 배는 홀로 전장의 선봉에 서야만 했다. 죽음을 각오한 이기남이 귀선의 격군들에게 이 출정이 '죽을 자리'일 수도 있음을 알리고 살 길을 터놓는다. 그때 격군이 아닌 막둥이 아빠가 귀선을 뛰어 들어와 노를 잡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이미 아이는 죽어버린 상황, 아내 역시 일찌기 왜군의 손에 죽임을 당한 그에게 귀선에 노를 젖는 일은 곧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죽인 왜군과 싸우는 일이었다. 막둥이 아빠가 그러자, 또 다른 격군이 말한다. 나는 어머니가 죽었다고, 그러자 또 다른 격군이 받는다. 나는 동생이, 그렇게 귀선의 격군들은, 자신의 가족을 죽인 왜군을 향한 '복수'의 마음으로 한 마음이 되어 노에 자신의 손을 묶는다. 

'민족'의 어설픈 이데올로기 대신, '민초'들이 지켜낸 나라 
바로 이 지점이다. 어설픈 민족주의 사관은 이순신을 '민족'의 영웅이라 칭송하고, 그와 그를 따라 전장으로 나갔던 이들을 '민족'이란 테두리로 묶어 세우려 하지만, <임진왜란 1592>가 그려낸 그날 전장의 그들을 묶어낸 것은 다름아닌 내 사람들을 잃은 그 '울분'이며, '통한'이다. 그리고, 임금조차 버린 나라에서, 군복을 벗지 않아 쉬이 낫지 않은 상처를 무릎쓰고 지지않고 싸우려는 이순신은 바로 그들이 '조선'이라 일갈한다. 그들이 죽지 않아야, 죽지 않고 이겨 살아돌아와야 조선이 살 수 있다고 덧붙인다. 

나랏님이 버린 조선에서 바다에서 이순신과 그의 군사들이 7년동안 단 한번도 지지않는 가운데, 도륙된 육토를 지키려고 나섰던 사람들은 바로 '의병'들이다. 신분제 사회 조선, 늘 양반에게 빼앗기기 바빴던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땅과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떨쳐일어선 것이 '의병'이다. 역사는 그들의 지도자중 일부였던 '양반'을 중심으로 '의병'을 기록하지만, 그 지도자들을 따라 목숨을 바쳤던 다수의 '의지'들은 바로 자신의 터전을 지키려는 <임진왜란 1592> 2회가 그리고 있는 '그들'이다. 그 '의병'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던 그 마음을 드라마는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1회에 제 아무리 망해가는 나라라도 제대로 된 '지도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상황이 어떻게 역전될 수 있는가를 이순신을 통해 보여주었다면, 2회에는 그 한 사람의 지도자를 뒷받침해주는 '그들'의 헌신을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애쓴다. 이순신의 전과가 커져갈 수록, 그를 상대하고자 하는 왜군의 규모도 나날이 커져만 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곱 장수 중 한 사람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111척의 배을 이끌고 이순신을 향해 온다. 그런 왜군에 대항해 싸울 이순신의 배는 불과 26척. 

1회에서도 양 측의 전술과 무기 배치를 통해 이순신의 승전을 재해석해냈던 <임진왜란 1592>는 2회에서도 그 '사실'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기습, 아직 전열이 채 다듬어 지지 않은 조선 수군, 선봉장인 귀선과 이기남을 비롯한 귀선의 군사, 격군들은 이 선봉에서 자신들의 귀환이 여의치 않음을 직감한다. 하지만 주먹질을 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였던 이기남 장군의 저돌성은 군사들을 독려하여, 홀로 79척의 적진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제 아무리 철심과 단단한 송판으로 무장을 했다해도 왜군들이 쏘아대는 조총의 물량 공세에 결국 귀선의 이기남을 비롯한 다수는 목숨을 잃고만다. 



그렇게 귀선이 목숨을 던져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그 뒤를 이순신이 뒤따르고, 26척의 불리한 조건을 이겨내기 위해, 이순신의 대장선은 불과 50보의 사이를 두고 첫 포성을 울린다. 하지만 그도 잠깐,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다시 한번 포를 장전하는 사이, 왜군의 전략 '키리코미' (배에 올라타 칼로 사람을 베어 죽이는 전술)명령을 내린다. 이미 사전 함포 사격 연습에서 일본의 키리코미에 장전이 이겨낼 수 없음이 드러난 상황, 바로 그때 이순신은 배를 돌리고, 반대편에 장전되어 있던 함포를 포격한다. 불과 26척의 배로 학익진을 만들어 낸 그 전략이 가장 절묘하게 진가를 발휘하는 그 지점, 그 결과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59척을 배을 잃고 대패하고 만다. 

그리고 드라마는 승전보의 팡파레 대신, 이순신이 그의 난중일기에 남긴 귀선에 탄, 그리고 죽어간 병사들의 모습과 그 이름을 차례로 보여준다. 이 승전이 바로 순천에서 온 이기남을 비롯하여 막둥이 아빠, 박개춘, 조언부 등 그리고 노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출전 전의 잠시나마 흥겨웠던 그 순간들을. 이순신이 장궤에 자신의 이름을 뺀 채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승전이 그들로 인해 가능했음을 조정에 올리고, 난중일기에 남겼듯 드라마도 이 장면을 통해 조선의 바다에 있던 '그들'을 증명해 낸다. 나랏님도 버린 나라를 지킨 '민초'들을. 나라의 진짜 주인들을. 시대를 구한 영웅 이순신의 필요충분 조건이 된 사람들을. 

by meditator 2016. 9. 9. 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