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kbs연예 대상에서 <인간의 조건> 팀은 '실험 정신상'를 수상했다. '아나로그 정신'의 발현이라며 화제를 끌며 첫 화두를 뗀 것에 비하면 조촐한 결과였다. 그를 두고 '시상식이 학예회냐, 그러려면, 시청률은 안나오지만, 네 마음은 다 알아' 상을 주지 그러냐'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jtbc <썰전> 허지웅) 시청률도 마찬가지다. 1회, '쓰레기없이 살기'에서는 10%를 넘으며 관심을 끌었고, 그 이후에도 그 언저리를 오가며, 동시간대 경쟁작인 <세바퀴>를 눌렀지만, 이제는 <세바퀴>를 이기기는 커녕, 특집으로 한번 방영한 여성판 <인간의 조건>보다도 못한 시청률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결과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1월4일 설 특집 편 <인간의 조건>에서는 시청자들과 함께, 자신들을 지지하는 층을 '매니아'라고 칭하는 애잔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시청률이라는 가시적 결과와 상관없이, 그들이 받은 상이 '실험 정신'상이듯, 그리고 지난 1년간 <인간의 조건> 팀이 환경부 등에서 받은 여러 수상 실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조건>은 공중파 예능으로서는 보기 드문, 우리의 문명적 삶을 되돌아 보는 건강한 화두를 프로그램을 통해 발현한 좋은 예이다. 1월 4일 방영된 송참봉네 농장 MT를 통해 되돌아본 1년을 보면, 핸드폰, 컴퓨터, 텔레비젼 없이 살기를 필두로, 쓰레기없이 살기, 원산지 알고 먹기, 자동차 없이 살기 등, 현대인이 자신의 삶에서 반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화두들이 총망라되었음을, 그리고 그것을 고스란히 온몸을 굴려 <인간의 조건> 여섯 멤버들이 실천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그들의 지난한 고생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1년만에 주어진 상이 겨우, '실험 정신상'이라는 구차한 명색에, 이제는 설마 없어지진 않겠지라며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어요 를 읍소하는 처지라는 건 안쓰럽기만 하다. 

그렇다면 <인간의 조건>이 지향하는 다양한 문명적 삶에 대한 반성이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한계를 지니기 때문인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지난 여성판 <인간의 조건>이 이슈가 되며 화제를 끌고 남성판에 비해 좋은 시청률을 나타낸 것을 보면, 프로그램의 성격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처음 텔레비젼, 컴퓨터, 핸드폰 없이 살기의 파일럿 프로그램 때, 그리고 1회 쓰레기 없이 살기의 화제성을 떠올리면 얼마든지 사람들은 이런 아날로그한 시도에 관심을 가질 자세가 되어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겨우 1년의 문턱을 힘겹게 넘어서고, 그럼에도 이 좋은 프로그램이 항구적으로 순항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인간의 조건>의 위치는 애매하다. 관찰 예능이 대중적 관심의 중심이 되는 트렌드에서, <인간의 조건>은 관찰 예능적 성격과, 리얼 버라이어티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과도기적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1박2일>이라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만들던 나영석 피디가 <꽃보다 할배>라는 관찰 예능으로 넘어가기 전 런칭했었다는 점에서, <인간의 조건>의 위치가 설정되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조건>이 가지는 관찰 예능이기도 하고, 리얼 버라이어티 이기도 하는 복합적 성격은, 양날의 칼로써 프로그램에 작용한다. 양자가 적절히 잘 조화되었을 때는, 금상첨화요, 그렇지 않았을 때는 말 그대로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프로그램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매니아 층의 지지를 호소하는 처지에 이른 <인간의 조건>은 전자 보다는 후자에 가까운 처지라 해도 큰 손색이 없을 듯하다. 양 자의 재미를 다 가지면 좋은데, 관찰 예능도 아니고, 리얼 버라이어티로서의 재미도 어정쩡한 그런 위치라는 것이다. 

(사진; TV리포트)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그 답을 '역지사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찾아보자. 나영석 피디가 새롭게 만들어 케이블임에도 전국민적 화제를 끌고 있는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시리즈, 그리고 나영석의 후계자임을 내세우며 시즌 3를 역시나 화제의 중심을 올려놓는데 성공한 <1박2일>을 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프로그램이 시작하자 마자, 제작진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건, 바로 등장하는 멤버들의 캐릭터를 잡는 것이다. <꽃보다 할배>의 짐꾼 이서진, 그리고 <꽃보다 누나>의 짐 이승기가 바로 그것이다. 가장 손에 잡히는 명확한 캐릭터를 잡고, 이어서, 회를 거듭할 수록, 다른 캐릭터의 맛을 더해간다. 그래서 처음엔 이서진과 이승기가 궁금해서 보는데, 회를 거듭하면서 다른 할배들의 매력에, 다른 누나들의 새로운 면에 끌리면서 채널을 고정하게 되는 것이다. <1박2일>도 마찬가지다. 당장 프로그램을 할 때마다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김주혁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자신이 토로하듯, 6개월 이상을 드라마를 해도 몰라보던 사람들이 단 몇 주만에 김주혁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인간의 조건> 여섯 멤버들이 <개그 콘서트>를 통해 이미 사람들에게 친숙한 개그맨들이긴 하지만, 과연 지난 1년 <인간의 조건>을 통해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되돌아 보
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첫 회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텔레비젼, 컴퓨터, 핸드폰 없이 살기에서만 해도 아날로그적인인 삶에 힘들어 하다가 슬슬 그 맛에 새롭게 눈을 뜨고 행복해 하는 김준현 등의 새로운 모습이 관심을 끌었다. 쓰레기 없이 살기에서는 지렁이까지 키우며 애를 쓰는 양상국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그후로는, 딱히 화제의 중심에 오르내리는 멤버라 없다. 늘 여섯 멤버는,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별 다른 캐릭터로서의 성장이 없다. 그들을 늘 형제 같고, 모이면 게임을 하고, 즐겁다. 그뿐이다. 희로애락이 없는 캐릭터는 밋밋하다. 그냥 오늘 보아도, 다음 주에 보아도 늘 똑같다면 무슨 꼭 보아야 할 의무감이 들까. 그렇게 캐릭터 변주에 실패한 제작진은 외부의 사람를 게스트로 들이는 것으로 프로그램의 활기를 부여하려고 한다. 하지만, 기껏 제작진이 불러모은 게스트는 대부분 아이돌이며, 그들과 멤버들과의 시너지는 아이돌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편차를 보일 수 밖에 없다. 아이돌이라서 장땡인 시대는 지난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 안타까운 이유는 정작 좋은 게스트의 문제가 아니다. 여섯 멤버라는 충분히 인간적 냄새가 풀풀 풍기는 자원을 가지고도, 여전히 납작한 캐릭터의 변주 밖에 해내지 못하는 프로그램의 한계이다. 1월4일 방영분에서, 마지막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한 마디씩 하는데, 정태호는 말한다. 차를 타고 오면서 김준현과 집도 생기고, 차도 생기고, 결혼도 하고 그러니까 꿈이 옅어지는 거 같다고, 어떻게 그런 감동적 이야기를 평면적 멘트로 나열하게 할까. 그렇게 말로 때우는 게 아니라, 차를 타고 오면서 김준현과, 정태호가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그 이야기가 감회어린 대화로 나왔다면 훨씬 더 감동적이었을 텐데, 그 두 사람이 말하는 늘 화이팅 넘치지만, 그래서 자신을 돌보지 않는 김준호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조건>에서 김준호는 그저 늘 짖궃은 철딱서니 없는 큰 형이다. 그들이 말하는 바 자신을 돌보지 않고, 화이팅 넘치는 큰 형의 이미지는 지난 1년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 OSEN)

반면 그 시간에, <꽃보다 누나>는 무얼 보여주었는지 보면 <인간의 조건>의 패착을 더욱 더 잘 알 수 있다. 촬영 6일차 늘 스태프들과 함께 해야 하는 김희애는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리고 그런 김희애의 심정을 윤여정의 첨언으로 공감을 끌어낸다. 이제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에 자연스레 녹아들 무렵, 그래서 슬슬 권태로울 시점에, 새로운 갈등거리를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에는 그게 없다. 늘 그들은 모이면 좋고, 희희낙락하고, 흥겹다. 미션을 통해 겪는 괴로움은 외면적이다. 그들이 토로하는 고통은 몇 마디의 단어로 마감한다. 가족을 보여주고, 집을 공개하는 것이 성장은 아니다. 성장하지 않는 캐릭터, 인간적 맛의 변주가 이루어지지 않는 멤버들이 보여주는 미션의 마력으로 시청자를 사로 잡기에 시청자들은 쉽게 변심하는 애인과도 같다. 정이 들지 않는 캐릭터를 지켜봐야할 의무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 지난 1년간 해온 미션들은 다종다양했고, 미션을 수행하는 강도가 결코 낮다고 말할 수 없다. 정말 '실험 정신상'을 받을 만큼 충분히 고생했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면 할수록, 처음엔 미션만 주어지면 당황하고 어쩔 줄 모르는 멤버들이 이젠 어떤 미션이 주어져도 크게 당황치 않고 딱딱 해내듯이, 제법 능수능란해 졌다. 그들의 당혹스러움을 메꾸어 가는 건, <개그콘서트>를 재연한 듯한 그들의 번다한 게임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프로그램을 채워가기엔 역부족이다. 게스트가 그걸 해줄 수 없듯이 말이다. 

정태호가 집안 일을 하기 싫다며 버둥거리고, 착한 사람 컴플렉스에 시달리는 모습도 그저 미션의 일부로 흘려 버린다. 그가 4시간을 걸어서 미션 장소에 오는 것도 뒷모습 몇 번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때운다. 그 시간에 대신 양상국의 데이트와, 시끌벅적한 MT 장소의 게임이 화면을 채운다. 아직도 사람들이, 시청자들이 무엇에 약한지, 무엇에 흐물흐물 무너지는지 모르는 구성이다. <인간의 조건> 1년, 여전히 여섯 멤버의 인간적 매력에 갈증이 난다. 부디 2014년에는 이 멤버들 각자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를. 그래서 인간적 매력마저 만점인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를 끌고, 2014년 말에는 '매니아 층의 지지'를 호소하는 애잔한 모습 대신, 스스로 1년간 수고했다고 자부하는 모습이 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4. 1. 5. 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