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 얼굴에 검버섯같은 것이 생겨났다.

그것을 발견한 친구가 시술을 권한다. 그 정도는 시술도 아니라고, 70이 넘은 노인도 그 정도 검버섯 없애는 시술은 한다고. 자신이 다니는 직장 동료들은 때마다 보톡스를 맞는다, 필러를 맞는다 분주하다면서. 
하물며 저렇게 시술까지 하는 마당에 화장이야 더 말할 꺼리가 되지 않는 건 당연지사다. 그래서 요즘은 화장이라 하지 않고, 무대에 서지 않는 사람조차도 '분장'이란 말을 즐겨쓴다. 화장을 하지 않는 얼굴을 민낯이라 하며 차마 남에게 들키면 안되는 심각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취급한다.
이렇게 누구나 다 자신의 얼굴을 가장 그럴듯하게 만드는 '화장'의 담론이 시험대에 오른다. 바로 두번 째로 돌아온 <인간의 조건>이다.

2월 8일 방영된 <인간의 조건>은 다시 한 번 여성 멤버들을 불러 들였다. 김숙, 김신영, 김지민, 박소영 등의 기존의 멤버가 잔류한 가운데, 개그우먼 박지선과, 아나운서 박은영이 새로운 멤버로 합류했다.

지난 번 여성 멤버 버전 <인간의 조건>이 기존의 남성판 <인간의 조건>이 했던 쓰레기 없이 살기, 핸드폰, 텔레비젼, 컴퓨터 없이 살기 등 미션등을 반복하면서,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여성과 남성의 문화적 차별성에 방점을 맞추어 신선한 반응을 이끌어 냈다면, 이번 두 번째 미션은 '화약 약품 없이' 살기로 온전히 여성 멤버의 특성에 맞춘 미션이 등장했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사진; tv데일리)

남성 멤버들이 일정한 물의 양을 가지고도 쉽게 적응하며 일주일을 버텨냈던 것과 달리, 늘 자신의 얼굴에 화장을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돋보이는 자존감의 향상 요건이자, 시청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여성 멤버들에게 '화학 약품 없이 살기'는 그 심각성을 고민하기에 앞서, 샴푸, 화장품 등을 사용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상황은 '아노미'적이다. 
특히나 이쁜 개그우먼이라고 인정받는 김지민의 경우에는, 최근에 돋아난 얼굴의 뾰루지로 인해 그것을 가려야 하는 화장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했기에, 자신의 정체성의 혼돈조차 느낄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힘들어 한다. 
그런 김지민의 모습은 아마도 일상 생활에서 화장에 의존도가 높은 보통 여성의 반응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준 모습일 것이다. 트러블 때문에 애초에 화장을 하지 못하는 박지선이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이번 미션에서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멤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집을 떠날 때부터 '화약 약품 없이 살기'란 미션지가 주어지고 아지트에 모이자 마자 가지고 있는 화약적 처리가 된 모든 물품들을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넣어야 하는 미션에 여성 멤버들은 크게 당황한다. 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물어볼 만큼, 화학이란 단어가 막연했던 멤버들은 오히려 화학에 대해 알아가면 갈 수록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우리의 일상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화학의 힘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화학 약품 없이 살기 위해서는 샴푸, 화장품은 물론, 당장 입고 있는 옷부터 모두 벗어제껴야 하고, 비닐 포장지에 둘러싸인 먹거리 하나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차분히 화약 약품의 문제점을 들여다 볼 여유도 없이 각자의 방송들을 맞닥뜨린 멤버들은 당장 자신의 민낯을 가릴 화학 약품이 아닌 꺼리들을 찾느라 분주하다. 김신영은 눈썹 화장을 하기 위해 갈비집에서 숯을, 피부톤을 위해 방앗간에서 콩가루를, 그리고 입술 화장을 위해 체리를 구한다. 샴푸는 소금으로 대신하고 달걀과 식초로 유연 과정을 거친다. 당혹스러워 하던 김지민도 궁여지책 구해든 것이 밀가루와 꿀이다. 하지만 늘 그녀를 돋보이게 해주던 화약 약품 덩어리인 인조 속눈썹은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다.  궁여지책으로 넘겨는 보지만 누렇게 뜬 얼굴톤과 시큼한 냄새를 숨길 수는 없다. 

조금 시간적 여유가 있는 김숙와 박은영은 화학 약품이 들어 있지 않는 천연 화장품 만들기에 도전한다. 몇 가지의 천연 재료로 약간의 품만 들이면 만들어 지는 화장품을 보며, 수십만원을 투자했던 화장품에 저절로 욕이 튀어나오는 경험을 하면서. 쉽게 만들어 진 것에 비해 막상 사용해 보니 그간 화학 약품 덩어리인 화장품에 못지 않는, 아니 심지어 그와는 다른 차원의 만족도를 주는 천연 화장품, 천연 세제에 경이를 느껴간다. 

김숙, 박은영이 재빠르게 찾아 내었듯이, 우리가 주위에 눈을 돌리고 보면 화학 약품 처리가 되어 있지 않은 천연 세제, 천연 화장품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몇 시간을 투자해 서점에서 책을 독파했던 박지선의 깨달음처럼, 더께를 두르듯 일상을 겁박한 화학 약품의 세상이 몇몇 천연 제품을 찾아내고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실제 물만으로도 얼만든지 깨끗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며 실천하는 사람도 있듯, 결국은 이런 '화학 약품 없이 살기'란 미션을 통해 되돌아 보는 우리 삶의 담론이 문제이다. 

늘 몇 겹의 화장으로 짙게 자신을 치장하고, 매일매일 샴푸에, 린스에, 에센스까지 덧칠을 하며 머리를 감아야 하고, 때마다 유행에 맞춰 옷을 사입어야 하는 '소비'의 담론이, '화학 약품 없이 살기'의 일주일을 통해 그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풀어내는 것이 이번 <인간의 조건>의 미션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한 몸 깨끗이, 아름답게, 내 한 입 맛있게, 넉넉하게 만드는 그것들이, 결국은 내가 일부인 지구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 가를 반성하고, 돌아보게 하는 시간, 그래서 조금은 덜 아름답고, 덜 깨끗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게 되는 것, 그런 신선한 담론을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4. 2. 9. 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