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깨진다'

아제 막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천재지변, 호환마마보다 더 두려운 것은 바로, 이 금기의 '속설'이었다. 하지만, 이제 2014년에 이르러서는 이 속설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할 듯하다. 그건 바로 첫사랑을 다룬 드라마들이 하나같이, 소중한 첫사랑의 성공으로 드라마를 완결지었기 때문이다. 
2013년의 대미를 장식하며, 그리고 2014년 초입에 조용히 종영을 한 <응답하라 1994>와 <예쁜 남자>는 동일하게 여주인공이 첫사랑의 그 오빠를 자신의 것으로 쟁취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동일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응답하라 1994>가 지겹워하면서도 또 낚여서 볼 수 밖에 없는 나정이 남편 신드롬을 만들어 낸 반면, <예쁜 남자>는 첫 방 시청률이 최고 시청률이 되는 불운을 겪으며 3%대의 낮은 시청률로 막을 내리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무엇이 동일하게 첫사랑 사수하기를 그린 두 드라마의 궤를 달리하게 만들었을까?

(사진; osen)

무엇보다, 첫사랑의 대상, 그 오빠의 캐릭터에서 두 드라마는 확연한 차이를 내보인다. <예쁜 남자>는 드라마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구나 그의 모습을 보고는 눈을 돌릴 수 없는 천하 제일 꽃미남 오빠를 등장시킨다. 버스에 올라타면서 긴 머리를 휘날리는 꽃미남 오 마테(장근석 분)에게 한 눈에 반한 소녀 보통이(아이유 분)가 여주인공인 것이다. <예쁜 남자>의 주인공 마테는 그의 잘생김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는 사람이다. 그의 안하무인 태도도, 이 여자 저 여자를 건너뛰며 그녀들의 도움 덕에 살아가는 백수의 삶도. 하지만, 드라마는, 그리고 여주인공은 그래도 그 오빠를 일편단심 사랑하지만, 시청자들은 외면을 했다. 드라마는 <꽃보다 남자>처럼 만화 주인공처럼 아름답게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지만, 그동안 수많은 꽃미남에 단련된 시청자들에게 그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더구나 그 꽃미남으로 등장한 주인공을 연기한 장근석이, 이미 그의 전작들에서 그의 꽃미남 캐릭터를 질리게 써먹은 한에서, 더더욱 그의 꽃미남 연기는 진부한 요소로 작동할 뿐이었다. 

반면, <응답하라 1994>는 <예쁜 남자>와 반대의 전략을 쓴다.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 명도 쓰레기(정우 분)다. 그리고 쓰레기답게 그는 옷도 안갈아 입어 여주인공이 그의 옷을 벗겨 가고, 상한 음식을 먹고, 음식을 앞에 놓고 여주인공과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우기 십상이다. 그의 허술한 모습에 시청자들이 허리띠 풀고 넉넉하게 웃어제낄 때 쯤, 드라마는 반전을 시작한다. 아픈 여동생에게 '이노무 가시나야~'하고 욕을 한바탕 해제끼더니, 그녀가 원하던 과자를 잔뜩 사다 던져놓고 사라진다. 병원에 입원해서 아퍼서 잠못드는 그녀를 위해 그녀가 원하는 온도로 덥힌 우유를 가져와주고, 그녀의 베게를 높여주더니, 머리를 쓰다듬어 잠재워 준다. 심지어 알고보니 이 쓰레기가 의사란다. 게다가 정말 오빠인 줄 알았는데, 죽은 오빠를 대신해 이집의 아들 노릇을 한 거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쓰레기를 나정이의 남편으로 기대한 이유 중 상당 부분은 이미 드라마 초반, 이 집의 아들 노릇을 천연덕스럽게 한 쓰레기의 캐릭터에 있다. <응답하라 1994>는 멋진 남자를 그려내기에 앞서, 가장 친근한 남자 캐릭터를 먼저 그려 냄으로써 인간적으로 시청자들을 공략한다. 

당연히 '위로'와 '힐링'이 대세가 되었던 2013년의 시청자들이 그저 눈에 아름다운 꽃미남과, 마음을 푸근하게 녹여주는 쓰레기 중 누구를 선택했는가는 두 드라마의 성패로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이 두 캐릭터들은 여주인공을 대하는 남자들의 태도조차 천양지차다. 

<예쁜 남자>는 말 그대로 예쁜 독고 마테의 성장기이다. 그저 자기 자신이 이쁘고 그 이쁜 것을 이용해 세상을 농락하기 바뻤던 한 남자가, 자신이 만났던 여자들을 통해 세상을 알아아고 성장해서 진정한 사랑에 도달한다는 이야기이다. 말 그대로, 나쁜 남자 개과천선기이다. 당연히, 첫 눈에 반해, 처음부터 자기 집 돼지 갈비를 통으로 들어다 줄 정도로 그에게 정신이 빠진 보통이의 수난기이기도 했다. <꽃보다 남자>가 성공한 이유는, 보통이만큼이나 평범하고 못난 소녀 금잔디가 꽃같은 남자들, 그것도 무려 네 명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는 환타지를 실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쁜 남자>는 그 반대다. 결국 마테는 첫사랑 보통이와 사랑의 결실을 맺지만, 그 과정에서 보통이는 숱한 눈물을 흘리고, 다른 여자들은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테 성장기의 도구로 작동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여전히 리모컨의 향배를 쥐고 있는 여성들이, 자신들이 구박당하고, 수단으로 사용되는 이 드라마를 참고 보아 줄 인내를 지닐 만큼 마테 역을 하는 장근석이 매력적이어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 이유는 장근석이 매력적이지 않거나, 아름답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 눈에 안경이라고 <꽃보다 남자>에서도 네 명의 남자들을 놓고, 얘가 낳느니, 쟤가 낳느니 하며 이전투구했던 취향의 다양함이, 마테 한 사람으로 만족하기엔, 선택의 폭이 좁았다. 최다비드(이장우 분)가 있었지만, 마테 중심의 이야기는 한계가 분명했다. 

반면,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는 알고보니 쓰레기가 아니라 연애의 고수였다. 수많은 여성들의 탄성을 자아냈듯이 쓰레기는 늘 나정이 일편단심이었다. 운동장에서 자신의 체취가 밴 옷을 벗어서 굳이 긴 걸음을 마다하지 않고 나정이를 찾아 던져주었으며, 연인이 되고 싶은 동료에게 이 사람이 그 사람좋은 쓰레기인가 싶게 냉정하게 선을 긋는다. 나정이가 추울까바 저만치 차를 몰고가다 다시 돌아와 자신의 옷을 벗어주고, 나정이가 원하는 책과 나정이를 위로하는 인형을 가장 잘 알아챈다. 쓰레기처럼 무심하고, 말은 거칠지만, 언제나 여주인공을 위해 그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가 어렵게 얻은 직장을 위해 결혼을 취소해줄 만큼. 그런 남자에게 어떤 여자가 마음을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천하의 쓰레기라도 마다치 않는게 당연하다. 게다가 쓰레기만 있는 게 아니다. 쓰레기를 위협할 만한 일편단신 칠봉이도 만만치 않다. 

(사진; 뉴스엔)

물론 두 드라마의 성패를 꼭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로만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응답하라 1994>가 매력적인 주인공들을 뒷받침한 90년대의 향수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면, <예쁜 남자>는 결국에는 가장 평범한 사랑 이야기와 진부한 출생의 비밀이 남은 그저 그런 이야기들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결국 스타를 앞세운다 한들, 허술한 전략과 스토리텔링을 가진 드라마는 존중받을 수 없다는 진실을 입증한 셈이다. 

일렉 선녀의 키치스러운 방을 등장시킬 때만 해도, 꽃미남이지만 먹을 거 앞에서는 자존심이고 뭐고 무너지는 마테를 그려낼 때만 해도, 드라마는 만화가 가지는 묘미를 살리려 애를 쓰는 듯했다. 애초에 여성들을 통해 성장한다는 상식적으로 풀어내기 힘든 제재를 용감하게 다룰 때만 해도, 그 과정을 만화적 상상력으로 대신하는가 싶었지만, 결국은, 만화가 다루었던 19금의 상상력도 공중파의 제동에 걸린 채 이도 저도 아니게 되었고, 이건 애인인지 멘토인지 헷갈리는 어정쩡한 이야기에, 통통 튀는 보통이의 연애 이야기도 눈물 콧물짜는 순애보로 둔갑시켜 버렸다. 차라리 어차피 시청률이 안나올 바에야 애초에 야심차게 시도했던 키치스러운 매력에 집중했다면 독특한 드라마로 기억될 가능성이라도 있었겠다 싶다. 

<예쁜 남자>가 차라리 케이블이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공중파의 어중간한 도덕적 잣대에서 자유로이 좀 더 성인 만화로서의 상상력을 키워냈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애초에 특정한 장르에 치중한 만화를 어설프게 대중적 코드로 바꾸는 과정에서의 오류는 치명적이었다. 

종방연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해외에 나가야 할 만큼, 그런 그를 공항을 꽉 메운 채 기다려 주는 해외팬들만큼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장근석은, 국내 활동에서는 <사랑비>에 이어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좋은 수출 상품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건, 한류 드라마에 의존하는 드라마 시장이나, 장근석이라는 배우에게나 지대한 부담으로 남을 듯하다. 


by meditator 2014. 1. 10. 1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