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히 다시 되새겨 보면 12월 6일 방영된 <응답하라 1994>에는 많은 내용들이 다뤄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애를 하는 쓰레기와 나정의 알콩달콩한 이야기에, 그런 나정이를 바라보며 쓸쓸히 눈물 지으며 일본으로 떠나야 하는 칠봉이, 그리고 군 생활하는 해태에,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수술을 바로 마친 상황에서도 의대생 아들을 걱정하는 부모로 인해 복학을 결심하게 되는 빙그레에, 다음 회의 내용이 될 윤진이의 서태지바라기까지. 적어놓고 보니 서너줄이 되는 장황한 내용들이 다뤄졌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보는 내내 14회는 지금까지 <응답하라 1994> 중 가장 지루하고 장황하기만 했던 회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중간에 딴 채널에서는 뭘 할까 확인하게 될 만큼. 


6일 오후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나정(고아라 분)은 쓰레기(정우 분)의 키스를 받고 그간 맘 고생을 했던 것이 생각나 눈물을 보였다./tvN 응답하라 1994방송 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아마도 <응답하라 1994>의 활기찬 동력을 빼앗은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쓰레기-나정- 칠봉이 로 팽팽하게 줄다리기 하던 긴장감이 쓰레기의 나정에 대한 마음 고백으로 느슨해 졌기 때문 일 것이다. 여전히 칠봉이는 나정이를 두고 만약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 네 옆에 아무도 없다면 나랑 사귀자 할 만큼 나정바라기이지만, 그 말은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나정-쓰레기 커플이 조만간 헤어질 지도 모른다는 쓰레기 이종 사촌의 말만큼 복선을 위한 복선처럼 느껴진다. 즉, 가장 속된 말로, 사람 일이란게 어찌될 지 모르니, 지금 나정이랑 쓰레기가 사귀게 된 들 앞으로의 일은 장담못한다는 평범한 속설에 기대어 진행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쓰레기 나정 커플을 그들을 질시하는 운명의 여신이 호시탐탐 지켜보는 느낌? 

하지만, 14회에 오는 동안, <응답하라 1994>가 드라마의 너무나 많은 부분을 나정이의 남편은 누구인가에 의존하여 오다보니, 결혼식날 입장해 봐야 나정이의 남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정이와 쓰레기가 막상 사귀게 되니, 맥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심지어 여전히 나정이바라기인 칠봉이의 마음이 어쩔 수 없다 해도, 쿨하지 못해 보이기 까지 한다. <응답하라 1997>에서는 형제가 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극적 장치라도 있었지. 별다른 사건 없이 삼각관계 만으로 14회를 끌고 온 레이스도 길다 싶었는데, 이제 다시 무언가 새로운 레이스를 시작해야 하는 느낌은 버겁기까지 한다. 1회 연장까지 얹어, 21회로 종료되는 나정이의 남편 찾기 게임이 길고 지루하단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14회를 가득 채운 해태의 군생활 이야기는 양념을 넘어 이게 <푸른 거탑>이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만큼 장황했다. 더구나 맨날 후임 괴롭히는 재미로 시간을 때우던 선임이 알고보니 능력자였다는 이야기는 상투적이어도 너~무 상투적이었다. 물론 마지막에 병장의 가방을 채운 신문지라는 '깨는'요소가 있었음에도, 군대에서 계급은 날로 먹는게 아니라는 정설은 마치 공부를 열심힌 한 아이가 대학에 잘 간다는 논리처럼 원론적이어도 지나치게 원론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이 원론은 정작 군대 다녀온 사람들에게 그다지 공감을 얻지 못할 요소가 크다. 일 못하는 병장이 어디 한 둘인가 말이다. 그리고 그 일못하는 병장을 커버하느라 고생하는 상병의 고생담이 군대 이야기의 주류라는 점에서 엄밀히 그저 한 속설에 불과할 뿐이다. 

6일 오후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유연석 분)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 성나정(고아라 분)과 오붓하게 술을 마셨다./tvN 응답하라 1994방송 캡처
(사진;스포츠 서울)

이런 해태의 이야기는 함께 등장하는 빙그레의 복학 결심과 함께 <응답하라 1994>를 뻔한 스토리로 만든다. 심장 수술을 앞둔 아버지가 환자복을 입고서도 은행에 가서 송금을 했다는 빙그레의 등록금, 싫어하던, 말이 통하지 않는다던 아버지였지만, 채 마취가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의대생인 아들의 공부 걱정을 하는 아버지로 인해 빙그레는 오랜 아르바이트 생활을 접는다. 하지만 이런 감동적 상황에 이은 빙그레의 결심은, 그것을 설명하는 장황한 나레이션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해가 몇 번이 바뀔 동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빙그레라는 인물의 속내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아르바이트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그 무엇을 찾았지만, 그것이 무언인가 분명치도 않고, 거기에 가닿지도 않는 막막함이 그간 조금이라도 비춰졌었다면, 이제 와 복학을 결심하는 빙그레의 결정이 좀 더 공감이 갔을 것이다. 하지만,빙그레의 방황은 그저 방황이요, 이제 방황을 할 만큼 했으니 복학을 한다는 설정처럼 보이는 14회의 결론은 어쩐지 허무하다. 

<응답하라 1994>가 중반에 들어서서 어쩐지 조금씩 드라마를 보다 시계를 바라보게 되는 이유는 전작에 비해 행간의 여백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나정이를 비롯한 대학 새내기들의 대학 생활 초반만 해도 1994년이란 동시대성을 느끼게 만드는 장치에 기반한 젊음의 생기가 느껴졌다면, 이제 중반에 들어선 드라마는 몇몇 당대의 소재를 채용하는 것 외에, 대학 1년생, 2년생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현장성을 상실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점점 더 궁색하게 사랑 이야기에 의존하게 되고, 이제는 진부하다 느껴지는 상투적 감동 스토리를 채용해 오게 된다. 남편 찾기의 낚시밥이 아닌, 1990년대 중반의 시대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쫀득한 이야기로 남은 회차를 채워주면 안될까?


by meditator 2013. 12. 7. 1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