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남편찾기'로 다시 한번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며 19회 케이블 드라마로 17%가 넘는(19회, 19.597% 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하며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 공중파 드라마가 10%만 넘어도 중박이라 치는 세상에서 놀라운 성과다. 


그 보다 놀라운 것은 이제는 확연히 세대별 시청 프로그램이 갈리는 tv 콘텐츠에서, 10대에서 50대까지 거의 전세대를 아우르며 '인기'를 구가했다는 점이 시청률을 넘어서는 성과이다. 무엇보다 이런 성과를 거둔 가장 큰 요인은 50대의 세대가 20대의 삶을 살았던 1988년이라는 '추억'과, 시대적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두 가지 화두가 절묘하고도 적절하게 버무려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엄마와 딸이 휴지로 흐르는 눈물을 닦고, 혹은 엄마와 딸이 '덕선이의 남편감'을 두고 격의없는 설전을 벌이는 '세대간 화해'를 이루는 성취를 보였다. 그렇지만 결국은 응팔이라는 세대 공감의 드라마의 비등점을 끓게 만든 것은, 두 말 할 것이 없이 '덕선의 남편찾기'이다. 극이 중반에 들어서며 현격하게 떨어지는 서사의 빈 공간을 가족 에피소드와, 제작진이 매회 던지는 남편 찾기의 떡밥으로 채워져 갔던 것은 <응답하라 1994>에서도, <응답하라 1997>에서도, 그리고 이제 <응답하라 1988>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이어진 '화두'로, 제작진의 초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응답하라> 시리즈를 관통하는 강력한 '클리셰'가 되었다. 

그래서 제작진은 이 진부한 '남편찾기'라는 그래서 극 초반, 전작을 '독파한' 시청자들이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라는 정의를 지레 내리는 불상사에 대처하고자, 전작과는 상이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응팔>은 '남편찾기'라는 <응답하라>의 고전적 클리셰를, 전작과는 다른 결론으로 '진부함'을 피해가고자 했다. 그런데, 이런 제작진의 선택은, '어남류'라 철썩같이 믿었던 시청자들을 '멘붕'에 빠지게 하는 것은 물론, 안타깝게도 <응답하라>시리즈가 가진 고유성마저 흔들어 버리고 말았다. 



제작진의 새로운 전략, 어남택? 
2012년 개봉한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라는 작품이 있다. <응팔>처럼 고등학교 시절 풋풋한 소년소녀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커징텅(가진동 분)을 비롯한 같은 반 남학생들은, 쌍문동 골목길의 소년들처럼 같은 반의 여주인공 션자이(진연희 분)를 좋아한다. 그리고 서로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경쟁하기 까지 한다. 그러나 남자 주인공 커징텅은 <응팔>의 정팔(정환, 류준열 분)처럼 마음과 달리 자꾸 그녀와 어긋나기만 한다. 두 사람은 잠시 사귀기도 하지만 결국 헤어지고 만다. <응팔처럼>. 아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남녀 주인공의 만남과 헤어짐은 말 그대로 그들의 십대 시절의 풋풋함과, 그 시절과 상황이 달라진 나이 먹어감을 두 소년소녀의 사랑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응팔>의 정환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가징텅처럼 그 시절의 대표적인 남학생인 듯 하다, 어느 순간 심지어 20회에 들어서는 존재조차 없는 존재로 <응팔>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저 '타이밍'을 놓친 죄로, 자신을 찾아온 택에게 '덕선을 사귀라는' 잔인한 덕담이나 하는 존재로 소모된다. 

물론 덕선의 남편이 택이로 정해진 후, 그리고 시리즈의 후반 제작진이 확고하게 택이로 방향을 선회한 이후, 드라마는 노골적으로 덕선과 택이의 관계에 집중한다. 그리고 눈밝은 시청자들은 거기서 부터 유추해 들어가, 덕선과 택이의 '사랑'이 어느날 갑자기 결정된 제작진의 결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차곡차곡 쌓아진 '세월'이라고 확인사살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간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덕선의 '관점'에 대한 해석이 덧대어지며 '택이'만이 덕선을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처럼 결론이 지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어남류'라 믿었던, 혹은 정팔의 관점에 집중하여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은 그저 정환을 연기하는 류준열의 연기가 너무도 극진하여, 그게 아니면 류준열이란 배우의 매력에 빠져 '착각'을 한 것이었을까?
아니다. 극 초반부터 등장했던, '어남류'는 그저 '남편찾기'의 바램이 아니었다. 그간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아왔던 시청자들이 터득한 나름의 <응답하라>의 정서이자, 과도하게는 '주제'였던 것이다. 



그저 '어남류'가 아니라, <응답하라> 당대성의 표현이었던 정환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자 주인공들은 <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의 17살 그들처럼, 94년에, 97년에, 그리고 88년에 살았을 '평범한' 녀석들이다. 비록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정우 분)나, <응답하라 1997>의 윤제(서인국 분)가 대한민국 상위 계층에 해당하는 '의사'가 되었어도, 그들은 말 그대로 '쓰레기'같은, 싸가지 없는 평범한 그 시대의 녀석들일 뿐이다. 그에 비해, 그들의 연적이 되었던 <응사>의 칠봉이(유연석 분)나, 윤태웅(송종호 분)는 당대의 영웅이었다. <응답하라 1988>의 이창호가 연상되는 최택처럼. 그래서 그들은 <포레스트 검프>에 등장하는 실존인물들처럼 잠시 <응답하라> 시리즈에 등장해서, 한껏 여주인공의 러브 환타지를 자극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다가, 어느덧 그들의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그들의 몫이었다. 제 아무리 잔인한 이별을 고해도, 그들에게는 당대의 영웅으로 거듭날 그들만의 서사가 남아있으니까. 그들에게 몰입했던 시청자들은 위로받을 수 있었다. 평범한 아이들은 '사랑'으로 '가정'을 꾸리고, 잠시 그녀를 사랑했던 영웅은, 그들답게 그들의 '마이웨이'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응팔>은 이미 시청자들이 익숙해져 버려서, '어남류'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이 시리즈의 클리셰를 극복하기 위해 전작이 하고자 했던 '당대성'을 파괴한다. 즉, 당대의 가장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가, 최택이라는 당대의 영웅같은, 심지어 잘 생기기까지 한 인물이 등장하여 여주인공과 맺어짐으로써, 그 시대 보통 소년이었던 정환의 존재가 공중으로 붕 뜬 것이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이 시리즈가 가져왔던 '당대성'도 함께 공중으로 붕 뜨게 된 것이다. 그저 당시의 시대상이나 소품으로만 채워지지 않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청춘'의 당대성'이 소실되어 버린 것이다. 

여주인공인 덕선이가 사랑을 찾았으니까 된 거 아니냐고? 안타깝게도 제작진이 남편찾기에 대한 시청자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트릭이었던 것인지, 드라마는 거의 16부의 지점에 이르기까지 '정환'의 사랑 이야기에 치중했다. 언제나 카메라의 시선을 정환을 향해 있었고, 택이와 덕선의 이야기는 그런 정환의 시선 속에서, 그리고 정환에 중심을 맞춘 카메라의 외곽에 에피소드처럼 다루어 졌다. 그러니 드라마에 골몰한 시청자들은 정해진 미로를 탐구하는 모르모트처럼 제작진이 프레임 안에 가두어 둔 정환의 풋사랑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덕선은 모르지만, 시청자들은 정환의 마지막 고백 장면에 등장했던 '정환'의 순애보의 전사를 덕선보다도 잘 안다. 거기다, <응답하라> 시리즈 전작의 남자 주인공들처럼, 정환은 '가족애'의 현현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무뚝뚝하지만, 라미란 여사네 아들로써 그 누구보다 속깊은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 심장병에 걸린 형 대신 공사까지 가는 '가족애'의 주인공이다. 가족뿐인가, 그가 첫 번째 존재감을 드러낸 선우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주먹이 먼저 나가는 그 씬 이래 정환은 좋은 친구 이기도 했다. 이전의 작품들은 이런 '공동체'를 봉합하려 종종 자신마저 희생하는 남자 주인공에게 그 보상으로 '사랑'을 선사했는데, 이번 시리즈에선, 그런 정환에게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고백'조차 거짓으로 하게 만드는 '진따'로 만들어 버렸으니, <응답하라>에 '모범생'처럼 제작진이 주는 받아먹는 충성을 바쳤던 시청자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배신이 된 것이다. 착한 아들, 착한 동생은 심지어 착한 친구로 남게 되어 버린 것이다. 정환만이 아니다. 그만큼 평범했던 동룡이마저 실종되었다. 어느 시리즈보다 가장 혈육같았던 친구들은 그저, 덕선과 택이의 러브 메신저로만 소비되었다. 

그런데 이제 원래 '어남택'이었다니, 이것을 <응답하라>의 변경된 전략을 그저 이전과는 다른 '남편찾기'로의 재미로 해석할지, 그게 아니면 덕선이에 대한 일편단심 택이의 순애보로 받아들일지, 그도 아니면 남편찾기에 골몰하다 스스로 궤도 이탈해 버린 시리즈의 궤멸로 받아들일지조차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제작진은 이번에도 역시 '남편찾기' 흥행을 대성황이라며 삼페인을 터트리는데, 제작진에 순종했던 시청자들은 '분노'하거나, '허무'한 마음을 스스로 달래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도 분명 다음에 또 <응답하라>가 만들어 지면 볼테니,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 
by meditator 2016. 1. 17. 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