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났다. 언제나 그랬듯이 변별력없는 수능이란 제도가 문제 되고, 그 속에서 제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처지가 논해지고, 새로운 제도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교육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논의되는 대학 입시 제도, 교육이 곧, 수능이요, 공부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대학이 보내는 것이 된 세상이다. 하지만, 수능이 바뀌면 바뀔 수록, 점점 더 '공교육'이 제대로 서기는 커녕, 더 이른 사교육을 받고, 재빨리 특목고로 갈아탄 아이들이 유리해질 뿐이다.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들, 심지어 학교 밖으로 튕겨져 나온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없다. '인문계' 고등학교 조차 낙오자들 취급하는 교육 현실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배려를 기대할 수는 없다. 


여기 한 편의 연극이 공연되었다. 지금부터 쓰는 '리뷰'는 그 연극 자체에 대한 리뷰가 아니다. 연극이 아니라, 그 한 편이 연극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과정을 보고 쓴 '감상문'이다. 12월 27일, 28일 양 일에 거쳐, kbs1tv를 통해 방영된 2부작 특집 다큐<우리는 두번 째 학교에 간다>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두번 째 학교에 간다>라는 연극을 공연할 주인공들은 학생들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 아이들을 학생들이라 말할 수 있을까? 

2014년 교육부가 조사한 초중고 학생 학업 중단 현황을 보면, 학교 밖을 튕겨져 나온 학생들이 6만 여명, 이는 전체 학생 중 1%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하지만 이들만이 아니다. 학교에 적을 두고 있다 해도 조퇴와 결석을 밥 먹듯이 하는 학생들, 그리고 쉬는 시간에 깨어 있다가 수업 시작 종과 함께 잠을 청하는 아이들, 이렇게 학교와 세상의 경계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끼어 있는 아이들의 숫자는 집계 조차 되지 않는다. 그저, 공부 못하는, 혹은 안하는 아이들일 뿐이다. 
<우리는 두 번 째 학교에 간다>는 이렇게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해 있는 아이들이나, 학교 밖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마포에 위치한 대안 교육 센터에서, 용인대학교 연극과 교수 박미리 교수의 지도 아래, 8명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연극을 공연하기 위해 모였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나레이터로,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아 주는 또 한 사람의 어른으로, 최불암 선생이 있다. 

8명의 아이들에게는 각각의 사연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일찌기 선생님의 폭력으로 인해 학교 생활을 접어버린 아이, 강남 학군으로 이사 온 후 성적으로 이한 부담 때문에 학교를 그만 둔 아이, 가출을 밥먹듯이 하는 아이, 중학교 시절 화장을 하다 선생님의 눈 밖에 난 아이, 일반고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미용학교로 옮긴 아이, 부모님이 안계셔서 이 쉼터, 저 쉼터를 전전하는 아이. 오토바이 사고로 보호관찰을 받는 중인 아이,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이 하는 아이, 이른바 '문제 학생'이라 칭할 수 있는 8인 8색의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 

연극은, 세상이 그저 '문제'라고 바라보는 이 아이들의 사연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문제에, 아니, 자기 자신을 올곧이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연극을 위한 모임 자체가 여덟 명의 아이들로 다 구성되기가 힘들다. 학교에서 쉬이 빠져나가던 아이들은, 규칙적인 연극을 준비하는 모임 자체에 성실한 것이 힘들다. 각자의 사연들도 그들로 하여금 연극에 집중하기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아버지와 따로 떨어져 배달 알바를 하는 형이랑 사는 아이의 생활도, 이 쉼터, 저 쉼터를 전전하는 아이의 생활도, 밤늦게 까지 미용실 알바를 하는 아이의 생활도, 학교가 끝나자 마자 pc방으로 직진하는 아이의 생활도. 

하지만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귀기울여 주지 않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 모임에 아이들은 열중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묵혀두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폭력, 그리고 폭력이 아니더라도 폭언, 무시 등, 학교라는 곳에서 아이들이 당했던 상처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고스란히 아이들의 속에 남겨져 있다. 학교만이 아니다. 아직 보호받아야 할 나이임에도 그 어느 곳에서도 보호받지 못한 처지도.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면서, 묻어 둔 자신의 상처를 비로소 제대로 들여다 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두 번 째 학교에 간다>라는 다큐가 가진 독특한 지점은 우리 사회가 제껴 놓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노회한 할아버지 최불암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철딱서니 없다 라는 어른들의 시선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가끔은 참다 못해 너희들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어떻게 그렇게 불성실하냐며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없이 아이들을 철없이만 보던 할아버지 최불암도,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며 변화한다. 그들을 문제아로 만든 것이, 그저 그 아이들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을, 2회의 다큐 동안, 변화된 최불암의 시선을 통해 '어른'인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공연 바로 전날 까지도 저 아이들이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란 의문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연으로 완성해 낸다. 그들이 가졌던 상처, 그리고 지금의 그들이 가진 두려움, 좌절, 그리고 혼란을 가감없이 자신들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그걸 주변의 어른, 친구들과 나눈다. 그들이 완성한 연극, 그것이 바로 그들의 두번 째 학교였다. 

기적처럼, 자신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 아들은, 정말 두번 째 학교를 졸업한 사람처럼 달라졌다. 자신들의 문제를 직시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선택에 자신감을 가지려 하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자 한다. 아이들만이 아니다. 아이들의 연극을 지켜보며 변화한 어르신 최불암처럼, 아이들의 연극을 지켜 본 어른 들도 감회가 남다르다. 부끄러움에서 부터, '모든 아이들을 몰아넣은 공교육'에 대한 새로운 책임감까지. 그저 '생각없는 아이'들이었던 아이들에게 진솔한 고민과 고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 자신도, 그들을 바라보던 어른들도 달라졌다. 진짜 '교육'이 무엇이고, 누구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그 진정한 질문이 던져진 시간이었다. 

by meditator 2014. 12. 28. 2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