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자님의 말씀에서 시작해야겠다. 공자님은 말씀하셨다. 마흔은 불혹(不惑)이라고, 공자님이 말씀하신 불혹의 마흔은 더 이상 흔들릴 수 없는 나이이다. 세상을 살 만큼 살아 세상 일에 이치를 터득한 나이, 그래서 더 이상 흔들릴 필요가 없는 나이였다. 

하지만, 중년들 사이에 우스개 소리로 요즘의 나이는 예전 세대의 나이에서 한 십 여년은 빼야 현실감이 있다는 말처럼, 이제 우리 시대의 마흔은 더 이상 세상 이치에 흔들리지 않는 중후한 나이가 아니다. 그리고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는 바로 그런 전혀 중후하지 않은, 그래서 하염없이 세상에 흔들리고 그래서 더 살아볼만한 마흔먹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11일 종영된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여주인공들은 마흔 무렵의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답게 저마다의 행복을 얻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혼 후 생활고와 작가를 향한 꿈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던 정완(유진 분)은 시나리오 작가를 거쳐 드라마 작가의 꿈을 이루게 되었고, 기꺼이 그녀를 위해 결혼도 미루며 외조를 해주는 든든한 애인도 얻었다. 혹독한 시집살이와 가부장적인 남편 그늘에서 숨막혀 하던 지현(최정윤 분)은 잠시 첫사랑에게서 혼란을 느꼈지만 결국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정을 되찾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셋 중에서 가장 사회적으로 성공을 이루었지만 친구 정완이 사랑하는 사람을 낚아채려 할 만큼 결혼에 맹목적이었던 선미(김유미 분)도 결혼할 사람을 찾게 되었다. 대부분 환타지로 마무리되는 우리나라 드라마답게 세 주인공은 한껏 행복에 겨워 드라마를 마무리한다. 굳이 그녀들의 환타지적 행복에 발을 걸기에는 그간 마흔에도 여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바가 너무도 분명했었다. 

(사진; 서울 경제)

결국은 어쩔 수 없는 환타지적 결말보다는, 그간 이 드라마가 과정 중에서 보여주고 노력했던 마흔 무렵의 삶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꿈을 위해 이혼도 불사했지만 아직은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 채 여전히 작가 지망생에, 현실은 마트 아르바이트 사원인 정완, 친구들이 보기에는 부잣집에 시집 가서 치맛바람 날리며 자식들 공부 시키느라 여념이 없는 이른바 '강남 엄마'지만, 그 그늘에선 학대에 가까운 시집 살이에, 첫사랑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조차 숨기며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해야 했던 과거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지현, 그리고 세 사람 중 가장 사회적으로 성공한 커리어우먼이지만, 자기 중심적인 스타일로 인해, 사업적으로도, 우정면에서도, 연애면에서도 자기 사람을 얻지 못한 채 나이들어 가는 선미의 삶이 그것이다. 

결혼을 해도, 혹은 이혼을 해도, 홀로 살아도, 드라마가 그려낸 마흔 무렵의 삶은 '불혹'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안정'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이기에, 그녀들의 삶은 불완전했고, 그 불완전함을 수긍하기엔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그녀들은 젊었다. 이제는 그만하면 살만큼 살았다며 세상에서 물러나기엔 그녀들의 꿈은 여전히 팔팔하고, 사랑은 나비처럼 주변에서 팔랑거리며 그녀들을 유혹한다. 뿐만 아니라, 안정된 삶을 살기에 그녀들이 처한 조건은 너무도 불안정적이다. 사업적으로 성공한 듯 보이던 선미의 인테이러 사무실도, 안정적으로 보이던 지현의 결혼도 그 어느 것도 그들 삶의 안정성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라마는 몸소 보여준다. 

그래서 그 불안정한 흐름에 휘말린 그녀들은 자신의 삶을 새로이 선택하고 도전할 수 밖에 없다. 작가라는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고, 어쩌면 불가능할 지도 모를 결혼에 도전하고, 가혹한 시어머니와 근엄한 남편이 만든 세계에 도전한다. 

하지만 그 도전이 스무 살의 도전과는 같지 않다. 이제 막 드라마 작가의 꿈이 도래해도, 첫사랑이 눈 앞에 나타나 유혹해도 그녀들을 흔들지 않는 또 다른 좌표가 있다. 결국 지현을 가정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그것, 정완이 흔들리면서도 그 중심을 잡게 만드는 그것, 그리고 결국 선미의 외로움을 보상해 주는, 그녀들의 피붙이이다. 

마흔 무렵의 그녀들은 이혼한 싱글맘으로써 딸린 혹같은 아이 때문에 더 힘들어지고, 젊은 날 자신처럼 원치않는 임신을 하게 된 사춘기 딸 때문에 좌절하고, 예상치도 못하게 들어선 아이때문에 혼돈스러워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에게 딸린 혹들을 거부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더 아름답고 풍성한 마흔을 가꿀 수 있게 된다고 드라마는 말하고 싶은 듯하다. 그것이 스무살, 서른 살 무렵의 풋내기 여성들과는 다른, 마흔 무렵의 여성들이 사는 또 다른 맛이라고. 

덕분에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정완은 아들과 함께,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남자와 결혼을 약속하고, 지현은 자신이 속해야 하는 곳이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선미는 아이와 함께 느긋하게 연하남을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불안정하고 혼돈스러웠던 그들은 성숙한 엄마로써 행복을 쟁취한다. 그리고 이제 진짜 불혹(不惑)의 삶을 즐기게 된다. 

이런 <우리가 사랑할 수 있으까>의 세계관은 jtbc라는 종편 방송국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사회 중산층의 고뇌와 로망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흔들리고 헤매여도 결국은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다시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환타지, 그것의 충실한 실현이다. 


by meditator 2014. 3. 12. 0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