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임진왜란'이 터지고야 말았다. 풍전등화 앞의 조선, 하지만, 나라의 흥망이 눈 앞에서 오고가는데도, 그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 자신의 입장을 놓을 수 없다. 그렇게 왜적이 침입한 상황에서도 저마다 다른 속내를 펼치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왕의 얼굴>은 갈리는 운명으로 풀어낸다.

 

왜적이 '파죽지세'로 북상하여 수도 한양을 위협하는 상황이 다가오자, 선조(이성재 분)는 파천을 결정한다. 대신들에게 내건 명목이야, 좀 더 명에 가까운 곳으로 옮겨, 명에게 원병을 청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왕의 파천 행렬을 막아선 백성들의 분노에서 알 수 있듯이, 결국 자기 한 몸 살겠다고 도망가는 거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우리의 역사 속에서 도망가는 위정자의 모습은 너무도 익숙하다. 6.25 전쟁이 나고, 수도 서울을 버리고 한강 다리까지 폭파해버린 채 도망가던 이승만 대통령은 도망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수도 서울의 사수를 내세웠다. 심지어, 후에 서울이 수복된 후 자신들이 다리를 끊어버리는 바람에 공산치하에 내던져졌던 사람들을, '사상검증'의 잔인한 '인민 재판'앞에 던져 버린다.

 

왕의 얼굴

tv데일리

 

그렇게 도망가는 선조가 자기 대신 왜적의 총알받이로 내세운 것은 다름아닌 '광해'였다. 명목이야, 맏아들 임해가 왕재가 아니요, 신성군은 너무 어린 탓이요, 왕자 들 중 가장 왕의 재목에 어울리는 현명함을 가졌다지만, 결국 왜적들의 손에 잡혀 목숨을 잃어도 어쩌지 못할 만만한 대상이었음을 드라마 <왕의 얼굴>은 밝힌다.

하지만 그런 선조의 '응큼한' 속내에 아랑곳없이,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는데도, 큰 아들 임해군과 신성군은 자신들이 세자가 되지 못함이 먼저이다. 왜적이 들이닥치건 말건, 나라가 없어지건 말건, 자신들의 '자리'가 먼저인 그들은 어떤 면에서 가장 아비를 닮은 아들들이다.

그런 형, 동생들과 달리, 드라마 속 현명한 왕재 광해는, 그런 자신의 운명을 익히 알고 있으며서도 기꺼이 아비를 대신해 수도 한양에 남겠다고 말한다. 그의 얼굴에 드리운 '왕재'가 그저 헛운명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 내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임란 속에서 위기에 빠진 왕가의 궁여지책으로 세자가 된 광해와 달리, 스스로 '왕의 길'을 가겠다고 나선 또 한 사람의 인물이 있다. 바로 김도치(신성록 분)다. 대동계의 수장으로, 평등 세상을 꿈꾸는 그들의 앞에 나선 모든 일들을 진두 지휘하던 김도치, 하지만 정작 선조를 암살하려던 대동계의 일원을 스스로 죽여버리면서까지 선조의 총애를 얻으려 했던 그의 속내가, 13회에 분명해졌다. 자신의 부모 형제가 억울하게 죽어갔던 분노를 '대동 세상'을 만드는 것을 통해 '승화'하는 대신, 그 자신이, 왕이 될 '역심'을 품는다. 왕의 재목이 별거냐며, 도망간 왕이 비운 자리에 자신을 앉혀본다.

 

국난의 시기에도 나라를 지키기보다는 일신의 안녕을 우선하여, 발빠르게 도망했던 왕, 스스로 국경을 넘어 명으로 건너가려 했으나, 신하들의 만류로 겨우 국경 근처에 머물렀던 왕, 비겁한 왕 선조와, 그런 아비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세자가 되었던 광해, 그리고 결국 궁여지책이 그를 왕으로까지 만들었던 운명의 이야기를 <왕의 얼굴>은 '관상'이란 운명론적 서사를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그래서 파천을 앞둔 전날 선조는 용상에 앉아 눈물을 흘린다. 왕이 되어 나라를 버리고 도망가는 자신의 처지가 아니라, 자신의 얼굴이 왕의 재목이 아니라, 결국 왜적들에게 나라를 내주게 되었다며.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관상을 통탄하고 있는 선조의 운명론의 맞은 편에 한양에 남아 광해를 돕겠다는 가희(조윤희 분)의 운명론이 있다. 왕의 후궁이 되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그녀, 하지만, 그녀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다 운명을 맞이하겠다며 광해를 돕기 위해, 남장을 하고 활과 목검을 챙긴다. 그런 그녀에게 당대의 최고 관상가 백경은 타고난 '관상'을 이겨내는 것이 '심상'이라며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 준다.

 

하지만 백경이 존중해 주지 않는 '심상'도 있다.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는 도치에게 백경은 그에게 독초를 먹여 죽이려다 차마 죽이지 못했던 과거 자신의 우유부단을 후회한다.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려는 도치의 결단은, 그저 왕재로 타고나지 못한 운명론을 넘어선 의지론이라기 보다는, 자신과 함께 했던 대동계의 동지들마저 자신의 의도에 따라 희생시키는 선조와 다르지 않는 '일신의 안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고난 운명을 거스르는 도치의 야욕 앞에 자신의 관상에 따라 진정한 왕의 재목으로 거듭나는 광해가 있다.

 

<왕의 얼굴>은 전란에 빠진 조선,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운명적 선택을 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를 '관상'을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서사의 방식이, <왕의 얼굴>의 매력이자, 또한 한계가 된다.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인물들은, 결국 그로 인해, 다른 역사적 결과물을 낳지만, 드라마는, 그걸 원심력있는 역사로 풀어내는 대신,'관상'이라는 운명론으로 귀결시켜 버린다.

그래서 왕은, 나라를 버리고 달아나는 전날, 결국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나라를 이 지경에 빠진 자신을 반성하는 대신, 자신의 관상탓이나 하고 있다.

 

bnt뉴스

 

그런 왕을 대신하여, 졸지에 나라를 떠맡은 광해의 운명은 애처롭고, 그 상황에서 의연한 모습은 대단해 보이지만, 어쩐지, 그런 그의 모습은, 또 다른 운명론적 영웅을 보는 듯, 단선적이다. 비록 최근 들어 광해군에 대한 역사적 조명을 새롭게 하여, 그가 우리가 알고 있는 '폭군'이 아니었음이 새롭게 부각되어지고 있지만, 정말, 적군의 총발받이로 남겨진 세자가 된 그가, 한번도 자신의 애꿎은 운명을 탓하지 않은 채, 그토록 애닮게 '백성'만을 생각하는 성군이었을까? 도망가는 아버지를 걱정하고, 자신을 음해하고, 죽이려고 드는 형과 동생을 대신하여 화살을 받고, 총알을 기꺼이 받는 광해는 '순교자'적이긴 하지만, 매력적인 역사적 인물은 아니다. 광야에서 악마에 시달리며 자신의 운명을 놓고 울부짖던 시간이 있어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더 숭고하듯이, 인간적 고뇌조차 제껴두고, 오로지 백성만을 걱정하는 광해는, 안쓰럽기는 하지만, 그럴 수록 생동감있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현실감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광해에 비하면, 오히려, 타고난 운명을 거슬러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나선, 김도치란 인물이 드라마적 흥미를 일으킨다. 하지만, 일찌감치 대동계의 인물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희생시킴으로써, 드라마는 하늘이 내려준 운명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으려 한다. 신분제 사회 조선을 넘어서려는 김도치란 인물을 그저 결국 나쁜 놈으로 그려냄으로써, 그리고 '왕재'의 관상을 타고난 광해를 지고지순한 영웅으로 그려냄으로써, 운명론적 역사관에 스스로 갇혀 버리게 된 것이다.

 

by meditator 2015. 1. 2. 1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