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주말 드라마 <옥중화>의 시작은 화려했다. 사극 명장 이병훈 감독과 최완규 작가의 만남, 거기에 창사 55주년 기념 50부작이라는 거대한 장정의 시작은, 조선시대 감옥 '전옥소'라는 신선한 배경과, 그곳에서 비운의 운명을 안고 태어난 한 소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제 50부작의 2/5라는 반환점을 앞둔 <옥중화>의 존재는 그 화려한 서막에 비해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주목받았던 사극, 거기에 mbc주말 드라마라는 시청률이 보장된 안정된 편성에도 불구하고, 20%를 넘지 못하는 시청률은 물론, 화제성 면에서도 세간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흥미로운 구도
<옥중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것은 조선 명종 시대, 역사적 오명을 길이 남긴, 윤원형과 정난정이 세도를 떨치고, 그들의 뒷배를 봐주었던 문정 왕후가 섭정을 펼치던 시기이다. 윤원형 일가의 악행은 이미 여러 사극을 통해 자주 등장했을 만큼 새로울 것이 없는 '클리셰'의 악들이다. 하지만, <옥중화>가 신선한 지점은, 그런 '클리셰'였던 윤원형 일가의 시대를 좀 더 세밀하게 추적해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언제나 역사 속에서 한 편이었던 문정왕후와 윤원형, 정난정, 하지만 <옥중화> 속 이들은 그간 다른 사극과 달리, 그 '악의 축' 자체 내의 분란과 갈등을 주요 동인으로 삼는다. 

즉 아직 그 실마리만 보이고 있지만, 흔히 역사를 통해 문정왕후(김미숙 분)의 허수아비 같던 아들 명종(서하준 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선의 '서태후'라 칭해지며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어머니 문정왕후의 섭정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인물로 등장하고, 그의 궁밖 미행을 둘러싼 문정왕후의 단식 투쟁 에피소드처럼 갈등을 만들어 낸다. 그런가 하면, 굳건한 절대 악의 무리였던 윤원형 일가의 내분도 새롭다. 기녀를 통해 태어난 서자에게 마음이 가는 윤원형(정준호 분)과, 그런 윤원형마저 쥐락펴락하며, 문정왕후의 경제적 뒷받침을 하는 상단까지 이끄는 실질적 능력자 정난정(박주미 분)의 갈등도 신선하다. 또한 문정왕후와 윤원형 일가의 권세를 그간 사극들이 '정치'에 방점을 찍어왔던 것과 달리, 정치자금을 손에 틀어 쥔 문정왕후와, 그런 문정왕후의 경제권의 뒷배로서 자금 동원에 골몰하는 정난정이라는 정치 권력의 경제적 해석은 사극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그로 인해 <옥중화>는 문정왕후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극중 권력의 한 축인 명종은 극중 10여회를 지나서야 모습을 보이고, 실제 이야기는 정난정이 꾸리는 상단과 갈등을 일으키는 공재명(이희도 분) 상단과, 또한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윤원형 일가, 그리고 문정왕후와 운명적으로 얽힌 소녀 옥녀(진세연 분)의 탄생지 전옥소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거기에, 명종 당시의 역사적, 혹은 전설적 인물인 토정 이지함(주진모 분)과 전우치(이세창 분)이 얽혀든다. 즉 이야기의 기본 역학 관계는 '권력'의 내부로 부터 기인하지만, 이야기가 굴러가는 방향은, 이병훈 감독이 지향하는 '민중 사극'의 형태로 발현된다. 바로 이 지점이 이병훈이라는 명장의 장기이고, 그래서 <옥중화>를 신선하게 만드는 요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현재 <옥중화>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먼치킨의 주인공, 그에 못지않은 악의 축 여걸 정난정, 그들의 딜레마 
이렇게 흥미진진한 구도지만, 정작 서사가 풀려가는 것은 이 권력 관계의 외곽 전옥소를 중심으로 풀려간다. 일찌기 이병훈 감독의 히트작 <대장금>이 그러했듯이 비운의 운명을 타고난 한 여주인공의 활약이 제목에서 부터 알 수 있듯이 <옥중화>의 주된 동력이다. 만삭에 칼을 맞고 피를 흘리며 전옥소로 들어온 옥녀의 어미, 하지만 어미는 옥녀를 낳고, 옥녀가 누군지조차 밝히지도 못한 채 죽어간다. 감옥에서 태어난 슬픈 운명의 아이, 하지만 그 슬픈 운명은 역설적으로 그 아이에게 '능력'이 된다. 어린 시절 죄수들 사이에서 소매치기 기술을 먼저 읽힌 아이는 그렇게 감옥에 들어온 토정 이지함을 통해 역법과 글을 깨우쳤고, 지하 감옥에 있는 박태수(전광렬 분)을 통해 무술을 익히며 '먼치킨'의 능력자로 거듭난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운명을 알기 위해 혹은 운명에 휩쓸려 가는 과정에서 '정난정'이라는 또 다른 여성을 만나게 되며 갈등하고 대립하게 되는 것이 <옥중화>의 커다란 갈등의 축이다. 

물론 <옥중화>에 남자들도 등장한다. 감옥에 들어와 옥녀와 만나 이후, 채탐인으로 중국에 가는 여정에서 조우하여 그녀의 '키다리 아저씨'같은 존재로 그녀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윤원형의 서자이자 공재명 상단의 행수 윤태원(고수 분)과, 그녀를 추포하던 역할에서 이제 그녀의 보호자가 되어가는 포도청 종사관 성지헌(최태준 분), 그리고 이제 가장 뒤늦게 등장하지만 그 누구보다 옥녀의 강력한 후원자가 될 명종이 그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극중에서 하는 역할은 토종 이지함이란 위인이 늘 옥녀의 후원자 그 이상의 존재로 씌여지지 않듯, 딱 옥녀라는 캐릭터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키다리 아저씨' 1,2,3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는 정난정도 마찬가지다. 당대 권력을 틀어 쥔 윤원형도 그저 정난정 앞에서는 쩔쩔 매는 공처가 남편이요, 그녀와 누님인 문정왕후의 권력과 경제권 앞에, 자신의 서자조차도 내쳐야 하는 궁색한 아버지일 뿐이다. 윤원형부터, 상단의 행수, 포도청 종사관, 무려 임금까지 등장하는 남자들의 면면은 화려하지만, 안타깝게도 <옥중화>에서 이들의 존재는 소매치기 천둥(쇼리 분)보다도 매력적이지 않다. 저마다 사연은 있지만, 정작 그들이 하는 일은 그저 언제나 옥녀와 정난정의 에스맨들일 뿐. 



그러니 결국 <옥중화>라는 드라마의 성패는 가장 결정적 갈등의 두 주인공 옥녀와 정난정에 달려있다. 하지만 이제 20회에 도달한 옥중화에서 이 두 여주인공의 존재는 매우 아쉽다. <대장금>이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를 넘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이영애라는 배우의 아우라에 힘입은 바 크다. 거기에 '먹거리'라는 당대의 트렌드에 헌신하는 주인공이라는 요소가 동시대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무엇보다 <옥중화>에서 솔직히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진세연이 이영애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니 이영애가 아니라도, 적어도 50부작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으로서의 장악력이 있어야 하는데, 아역 옥녀였던 정다빈만큼도 극의 장악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거기에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정난정의 박주미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물론 두 여주인공 탓만 할 일은 아니다. 20부작에 이르는 동안 옥녀는 전옥소 다모에서 채탐인, 그리고 전옥소의 죄인에서 다시 다모로, 이제 다시 관비가 될 위기에 놓였지만, 과연 <옥중화>를 통해 이병훈과 최완규가 그거 굴곡진 삶을 사는 여주인공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치 않다. 그저 그들이 지난 사극에서 해왔던 대로, 능력있는 민초들, 그리고 그들의 합치된 힘이 결집된 주인공을 통해 무언가를 하려 하지만, 어쩐지 그건 시늉일 뿐, 정작 주인공과 그 집단의 정의로운 성격조차 애매하다. 당위성은 있지만, 그 당위성을 뒷받침할 시대적 개연성도, 공감도 부족하다. 마찬가지로 정난정의 횡포 역시 즉자적이며 단선적이다. 자신의 딸과 파혼을 선언한 포도청 종사관 성지헌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펄펄 뛰는 그 이상의 아우라가 없다. 굴곡진 운명을 지닌 전옥소 다모와, 그녀가 상대하는 당대 최고 여성 권력자 정난정의 대립은 흥미로운 소재이지만, 정작 그 소재를 다난한 사건을 통해 단선적으로 끌고가는 지점에선 여주인공의 연기 탓만 할 일은 아닌 것이다. 

구도와 벌여놓은 관계는 흥미롭지만, 정작 그걸 풀어내는 능력은 최완규, 이병훈이라는 이름값에 아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반도 오지 않은 이야기를 포기하기엔 이르다. <옥중화>라 했지만, 굳이 장악력을 보이지 않는 두 여배우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진을 빼는 대신, 연기가 가능한 다른 배우들, 그리고 충분히 매력적인 권력 구도를 통해 이야기의 줄기를 변화시킨다면, 신선한 소재의 사극으로 남을 가능성은 남는다. 최완규 작가도, 이병훈 감독도, 자신이 했던 흥행의 공식을 내던져 버리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by meditator 2016. 7. 10. 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