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치부심 3년 만에 5집 '모노크롬'을 내놓은 이효리가 홍보차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순회 중이다.

그리고 '예능불패'라는 수식어처럼 이효리를 맞이한 예능들은 <땡큐> 자체 최고 1위, <라디오 스타> 역시 시청률 상승에 동시간대 1위라는 흡족한 성적표를 거둬들였다.

단지, 피디가 이효리네 집 앞에서 한 달동안 머물며 읍소했다는 <맨발의 친구들>만이 기대와 다르게 별다른 효과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천하의 이효리라도 안되는 건 안되는가 보다.

 

<맨발의 친구들>에서 피디를 한 달이나 기다리게 했다는 이효리의 말을 듣고 강호동이 왜 그랬냐고 질문을 한다. 그러자 이효리는 1초도 쉬지 않고, 강호동과 자신이 맞지 않아서 그런다고 대답을 한다.

아마도 그간 이효리가 나온 예능들이 좋은 성과를 얻은 것은, 그 프로그램에서 이효리가 잘 했기 때무이기도 하지만 이효리가 자신을 잘 살려낼 프로그램만 잘 골라서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피디의 인간적 부탁을 받고 나온 <맨발의 친구들>에서 이효리로 인한 기사들은 대부분 강호동과 이효리의 기싸움을 들먹이며, 강호동을 이기는 이효리라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간곡한 부탁을 해서 불러다 놓고 메인 mc랑 기싸움이나 시키다니!

 

(맨발의 친구들에 출연한 이효리, 뉴스엔)

 

 

이효리가 나와서 잘된 <라디오 스타>, <땡큐>와 <맨발의 친구들>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토크 내용의 진정성이나 솔직함 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예능 쫌 하는 언니'가 마음껏 놀 수 있는 판을 벌려 준 게 아닐까.

<라디오 스타>에 등장한 이효리는 처음부터 기세등등했다. 누군가와는 동갑, 누군가보다는 한 살이 어리지만, 그 누구라도 그녀에게 쉽게 말을 놓기 힘들만큼 당당한 기세로 프로그램을 제압해 갔다. 그리고 그 힘은 바로 그 누구도 감히 하기 힘든 솔직함이었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지만 지금 사귀는 그 사람에 대해 마지막의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당당함, 핑클 초창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과오를 가감없이 밝히는 담백함, 그 어떤 질문이나, 태클에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는 떳떳함이 '예능 불패'라는 것이 그저 시간이 쌓여서 이루어진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땡큐>와의 시간도 역시나 이효리가 프로그램의 중심에 서있다는 것에선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라디오 스타>의 이효리가 '다 덤벼!'하는 'Bad Girl'의 거침없음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땡큐>의 그녀는 선배 가수 이지연의 팬이자, 그녀와 같은 길을 이제는 그녀보다도 더 오래 걸은, 그리고 후배 가수 예은의 선배인 여자 가수 이효리였다.

밭에 난 채소들을 툭툭 털고 입에 넣어 맛을 보듯, <땡큐>엣 이효리는 십오년을 지켜온 여가수의 삶을 가공하지 않고 보여주는 날 것의 대담함으로 프로그램을 장악해 갔다. 선배 이지연도 사랑에 대해서는 수줍어 하고, 후배 예은은 그저 여미기에 바쁜데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한 이효리는, 그것이 사랑이든, 광고이든, 먹거리이든 동일한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진정성을 얻어갔고, 마치 욕을 들어먹으려고 욕쟁이 할머니를 찾아가듯 색다른 공감의 결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하는 이야기, 캐릭터들은 전혀 달랐지만, <땡큐>이든, <라디오 스타>이든, 이효리에 의한, 이효리를 위한, 이효리의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 주었다.

 

(땡큐에 출연한 이효리, 파이넨셜 뉴스)

 

하지만 <맨발의 친구들>은 달랐다.

도대체 '도와달라'는 피디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해외 맨발의 친구들 포맷을 하다가 그걸 접고 국내로 들어온 첫 회, 멤버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포맷조차 딱히 새로운 포맷을 결정된 바 없는 상황에서 대뜸 이효리만 불러다 놓으면 그녀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 이효리도 처음엔 다 알아서 해보려고도 했던 거 같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자기(?) 프로그램의 주도권을 남에게 넘기는데 익숙치 않은 강호동은 이효리가 나타가 판을 이끌어 가는 걸 참아내지 못했다.

웃자고 쓴 기사 강호동 vs. 이효리는 내내 강호동식 진행과 이효리식 진행의 불협화음이었고, 이효릭 이 프로그램의 고정이 되지 않는 이상, 결국은 강호동에 의한 프로그램으로 남아야 할 <맨발의 친구들>에서 깜짝쇼 이효리는 그다지 도움이라기 보다는 강호동식 진행의 피로감만 확인 시켜준 결과가 되었을 뿐이다.

더구나 이효리가 휘젖는 판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판에 즐겨이 휘둘려지는 대신에 삐진 아이 컨셉으로 호시탐탐 자신을 돋보일 기회만 노리는 강호동은 피곤하다. 이효리 조차 그걸 깨달았는지 어느 틈에 조금씩 물러서기 시작하니, 천하의 이효리를 데려다 놓은 들, 강호동의 예능은 달라지지 않았다. 도움을 받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는데 어떻게 도와주겠는가.


 

물론 이효리까지 가세한 <맨발의 친구들>은 다른 때보다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 재미는 아빠와 아들들의 가족애와, 군발이들의 전우애를 넘길 만큼 재밌지는 않았다. 연예인의 집을 찾아가는게 이제는 그다지 신기한 일도 아니요, 유이 엄마의 남편감 고르기는 더더욱 흥미롭지 않다. 심지어 길고 지루한 동물 이름 알아맞히기 게임이라니!! 누구네 집이라는 장소의 특성은 하나도 살려내지 못한 채 악기를 다루고, 게임을 하는 방식은 이미 '패밀리가 갔다'시즌 1,2를 통해 흘러간 컨셉이다.

엉뚱한 김현중도, 한결같은 강호동도 재미가 없진 않지만, 그렇게 예능을 통해 이미 이미지가 소모된 사람들보다 유일하게 새로운 인물, 드러나지 않은 윤시윤의 열의가 신선한데도, <맨발의 친구들>은 새로운 캐릭터를 발굴하는 대신여전히 강호동의 뻔한 진행과 새롭지 않은 한류 스타 놀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외국인 샘 해밍턴이 군대에 가는 세상에, 이 뻔한 사람들이, 뻔한 캐릭터로 해외를 가든, 누구네 집을 찾아가든 관심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너무 안일한 판단이다.

by meditator 2013. 6. 3.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