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하게 바람, '욕망'의 사전적 정의다. 그런데 이 '간절함'에 대해 사회와 역사는 늘 '양 극단'의 입장을 취해 왔다. 그 중 하나는 심리적 쾌락주의자인 '홉스(Thomas Hobbes)'의 주장으로, 모든 인간의 자발적인 행동은 자기 쾌락과 자기 보존의 목적을 지향하며, 인간의 심리적 동인은 '쾌락에의 욕망'이며, 그 대상이 곧 인간에게는 '선'이라 정의한다. 그러기엔 그런 인간의 욕망에 대한 긍정을 기초로 모든 사회적, 정치적 체제가 형성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주장한다. 그에 반해, 스피노자(Benedict de Spinoza)는 불교에서처럼 인간의 욕망은 '굴레(bondage)'로 보았다. 그러기에 인간의 행복은 이 굴레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 통제하여 '체제 내적' 혹은 '사회 내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욕망'은 이 두 가지 의견 중 어느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의 욕망에 대해. 


공교롭게도 시기적으로는 순차가 있지만, 네 명의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욕망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드라마들이 있다. 바로, 5월 12일 시작한 sbs의 <시크릿 마더>와 이제 6회차에 접어든 <미스트리스>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비록 연배는 조금 다르지만 30대, 40대 우리 시대를 사는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욕망'을 드라마적 갈등의 계기로 삼는다. 과연, 이들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여성의 욕망'은 '홉스'적일까? 아니면 '스피노자' 적일까? 이들을 통해 우리 시대가 바라보고 있는 여성, 그리고 욕망은 또 어떤 것일까? 



엄마들의 욕망; <시크릿 마더> 
sbs 주말극으로 첫 선을 보인 <시크릿 마더>, 그 시작은 '강남', 그곳에서 '아이'의 교육을 통해 자신의 열정을 풀어가는 네 명의 엄마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42세의 전직 의사인 김윤진(송윤아 분), 40세 강혜경(서영희 분), 42세 명화숙(김재화 분), 36세 송지애(오연아 분)가 그들이다. 같은 명문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를 둔 '강남'엄마인 이들의 하루 스케줄을 아이를 따라 움직이며, 아이들의 보다 좋은 교육 정보와 그 실천이 이들 네 엄마 모임의 근간을 이룬다. 

이렇게 네 명의 열혈 교육 맘을 앞세운 <시크릿 마더>를 보고 있자면, 2013년 방영된 kbs드라마 스페셜 연작 시리즈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4부작)이 연상된다. 당시는 초등학교가 아닌 명문 유치원을 배경으로 모여든 역시나 네 명의 교육 맘들의 '욕망'에 집중했던 이 드라마는 하지만, 가장 '명문'이라는 이 '유치원'에 모여든 '명문'이지 않은 엄마들의 비밀이 폭로되며, 아이를 통해 계층 상승의 대리전을 치루는 여성들의 '욕망'을 낱낱이 해부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첫 회 연방으로 4부작을 방영한 드라마는 같은 그룹이지만 성적에서 늘 뒤처지는 아이를 위해, 솔선수범하던 엄마 김윤진이, 더 나은 성적을 위해 '입시 대리모'라는 신종 직종의 여성을 들이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여, 이혼, 별거, 그리고 과거까지, 그럴듯한 강남 엄마의 속살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포문'을 연다. 남 보기엔 '현모양처'이지만, 그들 각자의 속내로 들어가면, 아이를 위해 직장까지 그만두었지만 딸을 잃어버린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전직 정신과 의사에서부터, 지방대 출신이라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위장 이혼까지 감행하고, 남들의 이목때문에 별거 중인 남편을 출퇴근시키는 등, 차마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 '각자의 문제'를 '아이의 교육'을 통해 해소하고, 자신을 증명해 내고자 한다. 결국 그들 각자의 욕망이 또 다른 '문제'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30대 여성들의 욕망; <미스트리스> 
<시크릿 마더>가 40대 여성의 욕망을 '엄마'라는 사회적 존재를 통해 풀어가고자 한다면, 미드 원작이 있는 <미스트리스>는 여성 그 '욕망'을 보다 직접적으로 건드린다. 30대 중반, 그 연배의 여성은 '무엇을 욕망하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드라마는 '그녀들의 욕망'을 전면에 드러내는데 꺼리낌이 없다. 그리고 드라마는 마치 30대 여성의 '욕망'에 있어 '관건'이 '성'이라는 듯이, 그녀들의 '성', 혹은 남녀 관계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고자 한다. 극의 중심에 놓여 있는 건 한가인이 분한 장세연이지만, 정작 <미스트리스>란 드라마의 '농염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건, 김은수(신현빈 분), 한정원(최희서 분), 도화영(구재이 분)의 성적 욕망이다. 

'성적 욕망'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미혹'에 빠진다는 점에서는 장세연도 그리 다르지 않다. 2년전 바다에서 실종된 남편, 그러나 뜬금없이 걸려온 남편으로 연상되는 전화, 그런 혼란스러운 가운데 아이의 유치원 학부형으로 한상훈(이희준 분)이 접근해 오며 그녀를 흔든다. 30대 그녀들이 흔들리는 건, 남편의 유무, 결혼의 유무와 관련이 없다. 아이를 낳기 위한 섹스에 골몰하는 한정원 부부의 관계는 외려, 이 시대의 결혼이라는게 얼마나 위태로운 관계인가를 방증할 뿐이다. 선생님과의 불륜에 빠졌던 김은수나, 결혼한 전남친과의 묘한 비지니스적 관계에 흘러들어가는 도화영이라고 다르지 않다. 결혼이란 제도의 안에 있건, 바깥에 있건 그녀들은 우리 사회를 공고하게 지탱하고 있는 이 제도와 얽혀들며 그녀들의 욕망을 복잡하게 만든다. 




<시크릿 마더>나, <미스트리스>를 통해 전면에 내세운 여성들의 욕망은 극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즉, 욕망은 그녀들로 하여금 위태로운 갈등으로 그녀들을 유도하는 '유인제'의 역할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드라마는 욕망을 다루지만, 즉 언뜻 보면 '욕망'에 대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듯하지만, 그로 인한 '갈등'에 천착하여 드라마를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통제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욕망'을 대상으로 한다. 또한 40대 여성은 '모성'의 존재이며, 30 여성이 '결혼'이라는 제도와 피치 못하게 엮인다는 점에서 '당대'적인 한계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또한 '강남'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더하여, 엄마가 된 여성들의 '아이를 통한 대리 성취욕' 역시 긍정적이진 않다. 그렇다고 <미스트리스> 속 여성들의 사회적 성취 역시 불온하거나 불안하다. 

또한, 이들 드라마는 이런 그녀들의 '욕망'이 한편에서 그녀들을 '갈등'으로 이끌어가는 유도제로 작동하는 동시에, 또한 시청자들을 손쉽게 흡인시키는 '도구'로도 작동한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미스트리스>는 극 초반 끊임없어 남녀의 정사 장면을 내세우며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자 한다. 하지만, 그렇게 '눈요기' 혹은 '선정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미스트리스>가 1%에도 못미치는 시청률로 고전하고 있는 점은, 이 시대의 시청자들이 내용성없는 눈요기에 냉정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며, '내용성'없는 욕망의 전시 역시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욕망'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시크릿 마더>나, <미스트리스>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다른 이야기'이다. 강남 엄마들의 지칠줄 모르는 교육열을 내세운 <시크릿 마더>는 김윤진의 집에 들인 입시 대리모를 통해, 김윤진의 숨겨진 과거와 트라우마를 드러내며 '미스터리'한 장르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친다. 매회 이렇다할 내용보다 여주인공들의 '욕망'에 집중했던 <미스트리스>도 이제 6회에 들어서며 보험조사원이었던 한상훈의 실체가 드러나고, 김은수, 한정원, 도화영 역시 미스터리한 사건의 중심에 놓여지며 극의 전개가 본격화 되었다. 결국 드러난 욕망을 통해, 그 속에 숨겨진 그녀들의 진짜 사연, 혹은 진솔한 '욕망'에 접근하고자 한다. 과연 이 욕망이라는 '통과 의례'를 통해 우리 시대 3,40대 여주인공이 도달할 곳은 어딘지, 그들 통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이 시대 여성들의 속내는 무엇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by meditator 2018. 5. 13. 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