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시작되자 마자 동화의 세계가 열린다.

하지만 드라마 속 동화는 결코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동화 속 죽음의 신에게 아이를 잃은 엄마는 아이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아이가 간 곳을 알기 위해 엄마는 자신의 머리를 기꺼이 자르고, 가시 나무를 자신의 따스한 품으로 안아준다. 그래서 드디어 만나게 된 죽음의 신, 하지만 죽음의 신이 있는 곳은 강과 숲이 막고 있다. 죽음의 신은 엄마에게 말한다. 그 강을 건너고 싶으면 두 눈을 강에 던지라고. 엄마는 주저없이 자신의 두 눈을 강에 던진다. 아이를 위해 그 무엇도 마다하지 않는 모성의 댓가는 잔혹하다. 
그리고 엄마는 아이를 구했냐는 아이의 목소리와 함께 동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드라마가 비로소 시작된다. 

(사진; 헤럴드 경제)

드라마의 서두에 짤막하게 보여진 동화의 내용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에서 엄마인 수현(이보영 분)이 자신의 아이 샛별을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덕분에 1회 내내, 아직은 엄마와 함께 사는 샛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시청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샛별의 엄마 수현은 실시간으로 범인을 현상 수배하고, 범인을 찾아내는 시사 프로그램의 작가이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자 샛별의 아버지인 한지훈(김태우 분)은 대통령 후보를 상대로 자신의 소신을 펼 정도로 정평이 난 인권 변호사이다. 수위 아저씨가 홀대하는 장애인에게 동정을 보이고, 잔혹하게 여자를 살해한 살인범에게 분노를 느끼며 저돌적으로 반응하는 수현도, 피해자 가족에게 오물 세례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기훈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양심적인 사람들로 자부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사회적 의식과 달리, 현실의 수현은 지극히 보통의 엄마일 뿐이다. 일하느라 돌보지 못하는 아이를 가정부 아주머니에게 맡긴 채, 영어 학원이다, 수학 과외다 하며 뺑뺑이 돌리고, 그런 아이가 잠시 일탈을 위해 찾아간 장애인에게 당장 싸다귀를 날릴 만큼 속물적인 엄마일 뿐이요, 의식있는 변호사인 아빠는 그런 엄마를 방관하며 육아에는 오로지 엄마의 몫으로 돌리며 바쁜 사람일 뿐이다. 

그런 이율배반적인 부모 아래에서 학습 부진을 겪으면서도 티없이 순수한 딸 샛별은 아이다운 호기심으로, 착한 심성으로 자꾸만 엄마와 비끄러져 나가며, 다가올 비극의 징조를 보인다. 굳이 우연히 들른 까페 여인의 의미 심장한 예언이 아니더라도, 이미 동화의 학습 효과를 겪은 시청자들은 그 짧은 1회 동안, 엄마의 품에서 자꾸만 벗어나 튕겨나가는 샛별이의 행보에 번번히 가슴을 쓸어내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돌발적으로 사건을 만들던 샛별이 정작 사라지게 된 계기는, 마치 백화점에서 잠깐 아이의 손을 놓았던 그 찰라로 인해 아이를 잃게 되듯이, 10년 전 사랑하던 사람을 만나 잠깐 차를 마시는 그 되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틈바구니에서 우연히 벌어진다. 그것도 하필 수현이 내용까지 바꿔가며 수배를 하려던 했던 그 연쇄 살인범의 손아귀에 아이를 놓친다. 

뿐만 아니라, 번잡스럽게 벌려진 1회의 여러 사건들 속에서 등장하는 그 누구도 다 의심스러울 뿐이다. 뻔히 교도소에 갇혀진 사형수에서 부터, 그의 어머니가 불현듯 수현의 빌라 앞에 등장하는 것이며, 그의 아들로 추정되는 지적 장애아가 샛별이의 주변에 어른거리는 것까지. 뜬금없이 수현의 집으로 쳐들어 온 사형수의 동생 기동찬(조승우 분)까지 의심의 촉은 끝이 없이 번져간다. 도대체 10년 전 벌어졌던 그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기에 그 사건의 인물들이 촘촘히 수현과 수현의 딸 샛별의 주변에 포진되어 있는 걸까. 과거의 사건까지 시선이 간다. 친절하게 샛별이 친구의 강아지를 맡아준 문방구 주인에서, 수현과 부딪쳤던 택배 기사는 당연히 의심의 대상이고,심지어 이유없이 등장하고 말기엔 비중있는 조연인 기동규 장애 학교 교사조차 의구심이 든다. 당연히 한기훈에게 피해자의 가족의 심정으로 악다구니를 하던 방청객 역시 피해갈 수 없으며, 하다하다 아빠가 친아빠일까 생각해 보게도 된다. 아니 한기훈을 정적으로 여기는 대통령은 어떨까?


(사진; osen)

<신의 선물>은 이렇게 단 1회 만에 마치 추리 소설의 첫 장 인물 소개난처럼 이 드라마의 등장 인물과 함께, 그들의 혐의에 대한 의심을 풀어 놓는다. 덕분에 극은 마치 잔뜩 쌀겨를 쑤셔넣은 오즈의 마법사 속 허수아비처럼 삐죽거리고, 시청자들은 마치 자신이 오즈의 브레인인 양 허세를 부리던 허수아비라도 되버린 듯, 사건이 벌어지기도 전에, 사건의 실체를 그려내느라 골머리가 아프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신의 선물>이라는 드라마의 호불호가 갈릴 듯 하다. 번다한 전개를 실마리라 생각하고 도전 의식을 가진 그 누구라면, 2회를 이어 보며 모처럼 흥미진진하게 사건을 펼칠 장르물을 만났다 여길 것이요, 도무지 이리저리 복잡한 관계의 실타래가 그저 잔뜩 엉킨 것 이상으로 보여지지 않은 그 누군가는 두 손을 들고 채널을 돌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마지막 복병이 있다. 생방송 순간에 들려오던 납치범의 다그치는 목소리 다음에 이어지던 딸 아이의 익숙한 흐느낌에 스튜디오로 달려가 전화를 부여잡고 울부짖는 엄마 수현의 모습은, 장르극을 넘어, 처음 아이를 찾아 자신의 눈조차 서슴없이 던져주던 엄마의 처절한 모정을 다시 연상케 한다. 그래서, 장르를 넘어선 모성애의 서사라는, 보편적 공감대로서의 여지를 남기며 시청자들을 끌어 앉힌다. 

<신의 선물>이 그 부제처럼, 14일 이라는 기간을 빌미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아직 열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단 1회 만에도, 엄마인 수현도, 그리고 등장한 그 누구도, 단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 인물들로 드러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현의 주변에서 촘촘하게 배치된 기동찬의 식구들에게서도 알 수 있듯이, 단지 이 드라마가 샛별의 납치 사건 이상의 그 무엇을, 그저 한 가족의 상실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지닐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전작이었던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부부 사이의 불륜과 이혼 문제를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재해석해냈듯이, <신의 선물> 역시 유괴 사건이라는 외피를 넘어 또 다른 문제 제기를 할 것처럼 보인다. 또한 <내딸 서영이>와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통해, 그녀가 선택한 작품이라면 대중성은 물론, 작품성에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는 믿고 보는 배우가 된 이보영이 선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기대가 된다.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이어 역시나 만만찮은, 하지만 기대해 봄직한 sbs의 월화 드라마 라인이다. 


by meditator 2014. 3. 4. 0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