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파라고 하기가 무색하게 공중파 수목 드라마들이 10%도 못되는 시청률로 고만고만하게 선두 다툼을 하고 있는 가운데, 비록 수치상으로는 이들 드라마보다 못하다지만 케이블이라는 한정된 플랫폼을 통해 6%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달성하고 있는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기세는 놀랍다. (<이판사판> 8.2%, <흑기사> 9.3%, <로봇이 아니야> 3.1%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 <슬기로운 감빵 생활> 5.847 닐슨 코리아 유료 플랫폼 기준> 무엇보다 4%대로 시작한 시청률이 회마다 상승세에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이로써 '추억'을 팔아 가능했다는 <응답하라>의 신드롬을 그와 가장 반대의 상황, 감빵을 통해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다시 한번 '신원호'란 이름 석자의 가치를 증명하게 되었다. 또한 <슬기로운 감빵 생활>은 '이우정'이라는 보증 수표 대신 신인 작가 정보훈과 함께였기에 그 가치는 더욱 증폭된다.



닫혀진 공감 감빵이 열린 서사의 공간으로

한 골목, 혹은 한 하숙집, 혹은 한 동네의 친구들이란 지역적 공간을 배경으로 한 <응답하라> 시리즈는 물론 주인공이 설정되어 있지만, 그 '지리적 특성' 답게 주인공을 둘러싼 관계 전체가 시리즈의 주인공이 되어 각자의 삶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서사를 완성하여 갔다. 과연 그런 신원호의 특기가 감빵이라는 공간에서도 가능할 것인가? 어쩐지 어수선했던 첫 회,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하지만, 오히려 닫혀진 공간이라는 감빵은 신원호를 통해 오히려 <응답하라>보다 훨씬 열려진 서사의 가능성으로 풀려나간다.


형을 확정받지 않은 김제혁(박해수 분)가 구치소에서 형을 확정 받아 교도소로 이감되는 과정 자체가, 그 공간의 이동과 함께, 등장인물의 변화로 연결되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낸다. 또한 교도소라는 공간이 한 동네처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면서도, 법률적 제재로 인해 잠시(?) 머무르는 공간이기에 등장인물들의 변화를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만든다. 덕분에 이제 6회에 이른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는 구치소의 법자, 건달, 똘마니에서부터, 서부 교도소의 장발짱, 목공 반장 등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존재감을 뽐내며 명멸해 갔다.


하지만, 이런 여러 인물들의 등장만으로 이 드라마가 빛을 발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반전'들이 바로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매력이다. 구치소, 교도소라는 공간이 무엇인가. '나쁜 놈'이라는 말로 단정지어도 무리가 없는, '죄'를 지어, 그 죄의 대가로 공간적 제재를 당하는 곳이다. 바로 그런 사회적 단정이 이미 이루어진 곳에서, 드라마는 그 '단정'의 반전을 빚어내며 시청자들을 흡인한다.



반전의 인간 군상들

1,2회 구치소에서 가장 '반전'이었던 건, 바로 <응답하라> 시리즈의 산 증인과도 같은 딸들의 아버지 성동일의 반전이었다.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아버지'연하던 교도관 조주임(성동일 분)은 알고보니 죄수들에게 협박과 돈을 갈취하는 나쁜 사람이었다. 그런가 하면, 교도소로 와서 다수의 드라마에서 '악인'으로 등장했던 정웅인이 분한 팽부장은 그의 눈빛만으로 이미 나쁜 사람같았지만 알고보니 누구보다 재소자들의 입장을 배려하는 음악을 사랑하는 로맨티스트였다. 이런 식이다. 제 아무리 구치소고, 교도소고 인생의 막장인 곳 역시 '사람 사는 곳'이기에, 그곳에는 교도관과 재소자라는 이분법을 넘어선 저마다의 '인간의 향기'를 한껏 뿜어내도록 드라마는 그려진다. 매 회 자신의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던 범인을 트로피로 가격하여 교도소에 온 국민 투수 김제혁을 중심으로 그와 엇물리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뜻밖의 이야기들이 '만인보'처럼 감빵 생활을 채워간다.


5회에서 중심에 선 인물은 장발장(강승윤 분)이었다. 평소 장기수(최무성 분)를 아버지라 부르며 따랐던 갓 스물을 넘긴 청년, 하지만 그는 경상도 사투리의 서글서글한 태도와 달리, 외부 작업을 나간 곳에서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던 기사의 지갑을 슬쩍하는가 하면, 불시에 벌어진 방 점호 과정에서 들킨 개조한 시계를 아버지라 따르던 장기수의 것이라 밀어붙이며 무사히 만기 출소를 해 원성을 샀다. 겨우 스물 넘은 청년이 보인 철면피한 모습은 출소 임박의 절박감을 둘러대도 '인간적 회의'를 빚는다.


그런 인간적 회의 공간을 메꾸어 가는 건 김제혁이다. 구치소에서 부터 오랜 절친 준호(정경호 분)가 뜰어 말려도 늘 '인간적 호의'로 법자 등을 울려버리곤 하는 김제혁, 하지만 그런 영웅적 면모는 족구 시합에서 공을 손으로 잡는다던가, 미국의 수도를 뉴욕 양키스라고 답하는 어이없는 모습의 반전으로 인해, '인간적 훈기'로 내려앉는다. 김제혁만이 아니다. 사람을 죽인 죄로 무기 징역을 받은 장기수가 장발장에게 보인 선의 등 역시 사람사는 곳 교도소의 온기를 덥힌다.



그런가 하면 구치소에서 부터 줄곧 김제혁과 함께 하면서 '해롱'이란 별명을 얻었던 마약사범 한양의 반전은 이미 <비밀의 숲>에서 한 차례 반전을 선보인 그의 연기에 이어 또 한번 시청자들을 놀래키며 그의 이름 석자를 검색어에 올린다. 거의 두 시간에 가까운 <슬기로운 감빵 생활>의 시청 시간을 시간 가는 줄 모르로 채널을 돌리지 않도록 만든 건, 선과 악으로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인간사의 군상들이지만, 그 진지한 틈을 채워가는 건 해롱이나, 문래동 카이스트의 맛깔스러운 해프닝들이다. 카이스트와 늘상 아웅다웅하며  극중 '웃음'을 담당했던 한 축이었던 '해롱'이 알고보니 '뽕'을 하면 멀쩡해진다는 내용은 극적이다.


하지만, 이런 재소자의 인간적인 면은 사회적으로 이미 고정된 교도소에 대한 인식과 상충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알고보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은 장기수 등의 캐릭터에 비해, 보신과 안위에 눈을 밝히는 교도소장을 비롯한 일부 교도관의 캐릭터는 교도소 혹은 범죄자 '미화'의 우려를 낳는다. 하지만, 비록 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갔지만, 교도소 내에서는 권력의 향배가 달라지며 갑을 관계가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권력을 가진 이들의 냉정한 잣대나, 때론 편협한 잣대는 '미화'라기보다는 '현실적'이라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오히려 그런 '현실적'인 관료로서의 교도관보다는, 6회에서 아쉬운 점은 김제혁의 재기 해프닝이다. 5회와 6회에 걸쳐 다루어 지고 있는 건 왼쪽 팔과 손에 마비가 온 김제혁의 에피소드이다. 팔에 무리가 온 김제혁, 이미 한 차례 왼쪽 어깨 수술을 받은 바 있어, 담당 의사조차도 회의적인 상황, 하지만 이미 한 차례 불굴의 의지로 왼쪽 어깨 부상을 극복한 바있는 김제혁이었기에 모두들 그를 응원한다. 하지만 이런 응원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 김제혁은 은퇴를 선언한다.



간과된 도덕적 딜레마

이젠 야구가 지겹다고 하는 그에게 그럴 수록 전국민적 서명 운동을 벌이고 서로 동참하며 그의 재기를 응원하고, 심지어 교도소장은 그의 전용 연습장까지 만들어 주는데, 그 전용 연습장 개장 날 그에게 자신이 트로피로 가격한 범인의 죽음이 전해진다. 그리고 김제혁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지지리도 없는 놈인가를 사람들 앞에서 한껏 토로하고, 다시는 야구를 안한다며 그 자리를 떠난다. 이후 6회는 야구를 그만둔 김제혁에게 담배를 드여오기 위해 문래동 카이스트가 이것 저것 다른 운동 등을 시키는 해프닝을 그려낸다. 도대체 야구 말고는 쓸데가 없어보이는 김제혁, 결국 수면제까지 먹이며 꿈을 빙자해 다시 야구를 할 것을 종용하고, 김제혁은 어리숙하게 그걸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프닝은 끝이나는데.


정작 '인간적'인 반전을 그려내기에 골몰한 드라마는 김제혁의 상황을 두고, 야구를 하느냐 마느냐에 더 집중한다. 동생을 범하려던 나쁜 놈이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고야 만, 그 '도덕적 딜레마'는 가볍게 그의 재기 해프닝 속에 잠겨 버린다. 즉, <슬기로운 감빵 생활>은 '인간의 이면'을 다루고자 하지만, 그 '이면'의 지점이 '반전'과 '숨겨진 사연'을 넘어서지 못한다. 알고보니 좋은 놈은 있지만, 나쁜 놈이면 그냥 나쁜 놈이다. 묘하게 인간의 스펙트럼이 넓은 듯하면서도 상투적이며 이분법적이다. 만약 우리 사회에서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던 스포츠 선수가 사람을 '과실'로 죽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어떻게 '언플'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슬기로운 감빵 생활>도 그와 같다. 김제혁이 겪어야 할 도덕적 딜레마 대신, 그의 재기 여부가 수면 위로 올라와 시청자들은 그에 골몰하며 짚어봐야 할 지점을 건너뛴다.


by meditator 2017. 12. 8. 1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