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처럼 이미 그 원작에서 부터 화제가 되었던 또 하나의 만화 작품이 드라마가 되었다. 10월 24일 jtbc를 통해 첫 선을 보인 최규석 작가의 <송곳>이 그것이다. 


영화 <스물>속 생생한 젊음의 원작인 만화 <울기엔 좀 애매한>의 원작자로 알려진 최규석 작가는 이미 만화를 통해 당대를 표현하는데 발군의 능력을 보인 작가이다. 과학책일까 하는 의심을 품게 하는 <습지 생태 보고서>를 통해 빗물이 새는 반지하 셋방에 모인 일군의 젊은 군상들의 리얼한 궁상을 기록하는가 하면, 작가 자신의 가족을 통해 성장주의 대한민국의 속살을 드러낸 <대한민국 원주민>은 역사가 외면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낱낱이 그린다. 일찌기 2003년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통해 아기 공룡 둘리가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았다면 노동자 둘리가 되어 손가락을 프레스 기계에 잃었을 것이란 작가의 냉철한 현실 인식은 2009년 <100도씨>를 통해 6월 민주 항쟁을 기록했고, 만화로 보는 노동법이란 평을 들은 <송곳>으로 귀결된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관통해 온 최규석 작가의 작품 세계는 현실을 다룬 다는 것에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오히려 그것보다는 그 속에서 살아내는 인간 군상의 민낯을 거침없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술 주정뱅이 아버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엄마, 그리고 가족의 기대를 등에 업고 성공하려 했지만 맘처럼 되지 않았던 형, 그리고 그런 가족을 보면서 일가를 이루는 것에 회의를 하는 자신을 '원주민'이라 지칭하고, 찌질한 젊은 군상들을 '울기에 좀 애매한' 존재로 그려내는 것처럼, 현실 인간의 '미시사'에 천착해 왔다. 그리고 그 최규석 작가의 최신작 <송곳>을 드라마환 <송곳> 역시 현실의 '인간'에 촛점을 맞춘다. 



갑갑한 현실 속 송곳같은 사람들
방영전부터 마트 노동자들의 정리 해고 투쟁을 다뤘다는 점에서 영화 <카트>와 소재 면에서 중복이 우려되었던 드라마 <송곳> 하지만, 첫 선을 보인 <송곳>의 시점은 마트가 아니라, 노숙자가 되어가는 짜장면집 배달원과 조우한 구고신으로 부터 시작된다. 6개월 동안 일한 짜장면 집에서 오토바이를 부쉈다는 이유만으로 돈 한 푼 못받고 쫓겨나 박스를 덮고 잠을 청하던 배달원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구고신은 대뜸 그의 손을 잡고 그가 일하던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법'으로 얼르고, 짜장면 집 단골 사업장으로 '뺨치며' 단번에 배달원의 밀린 봉급을 챙겨준다. 그리고 그에게 사례비를 건네는 건네는 배달원의 어깨를 치며 자신의 밥그릇이나 잘 챙기라는 말을 건네고 휭하니 사라지는 구고신의 모습에서, 이 드라마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 그를 통해 보여줄 '인간'에의 천착을 대번에 설명해 낸다. 

그렇게 구고신으로 부터 '해학적'으로 시작된 드라마는 극중 배경이 마트로 바뀌면서 진지해진다. 분주한 마트의 아침 개장 시간, 관례대로 일을 하려는 마트 직원들 사이에서 원칙을 강조하며 사서 미움을 받는 과장 이수인, 그 깐깐한 원칙으로 인해 외국인 지점장에게 총애를 받는 그는 하지만 부장이 지시로 자기밑의 직원들을 자르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협력업체 직원들을 마트 직원인 양 부리려는 마트 직원들을 저지하며 원칙을 강조하는 이수인의 캐릭터는 이어지는 부당 해고 지시에서 '거부'로 연결되며 그 일관성이 드러난다. 또한 부장 앞에서 부당한 지시에 놀란 그의 모습은 일찌기 어린 시절 '남성의 강고함'을 강조하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부터 유래된, 그리고 학창 시절과 육사 생도 시절을 경과하며 원치 않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송곳'같은 캐릭터의  존재감을 대번에 설득해 낸다. 



그렇게 드라마 <송곳>은 그 원작의 그것처럼, 현실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되, 상황의 불가역성을 강조하는 대신, 그 곳에서 결국 선택지가 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과, 그 곳에서 고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인간형을 그려냄으로서 삶의 투쟁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현실의 역동성에 발을 거는 단단한 돌부리같은 존재는 불편하게 현실에 길들여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마음에 돌을 던진다. 

그렇게 잊고 있던 당연함을 일깨우며 불편하게 시작된 <송곳>이 마트 직원들의 부당 해고과 그에 맞선 투쟁으로 어이질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그리고 그런 내용의 드라마가 무노조주의를 일관되게 관철시켜오는 삼성 계열 하의 jtbc에서 방영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그 아이러니를 조소하기 에 앞서, 삼포 세대의 비감한 현실을 다룬 <미생>조차 결국 환타지로 끝나고 마는 세상에 권력의 눈치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뉴스가 재벌의 시야 내에서 이듯이, 역시나 재벌의 품 안에서만이 이런 사회비판적 드라마가 만들어 질 수 있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감내해야 하는 것이 현재 미디어의 현실에의 직시가 우선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jtbc 뉴스의 건재를 감사하듯이, 그저 <송곳>이 원작의 주제 의식을 훼손하지 않고, 시청률에 휘둘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그 송곳같은 이야기를 잘 마무리 하길 바란다. 그리고 jtbc든 어디든, 부디 이런 현실적인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 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by meditator 2015. 10. 25. 1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