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컴버베치가 셜록의 '잘생김'을 연기하고, 마틴 프리먼이 왓슨의 '어수룩한 똘망함'을 연기하는 bbc의 시리즈 <셜록>이 올해는 극장판으로 찾아왔다. 극장에서 만나는 셜록의 반가움도 잠시, 곰곰히 생각해 보면, 2010년 꼴랑 3부작짜리 시리즈 1로 전세계의 셜록매니아를 만들어 놓고, 셜록을 보기 위해서는 명이 길어야 한다는 농담이 생길 정도로, 그 다음 해는 거르고 2012년에야 다시 3부작 시리즈 2를 선보였던 셜록은, 팬들의 애타는 성화에 못이긴다는 듯 2014년에야 시즌3를 선보였다. 허긴 시즌2의 마지막 빌딩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날려 죽음을 택한 셜록을 다시 살아나게 했으니 어디 2년이 문제이겠는가? 시즌3의 화려한 극중 퍼포먼스와 달리, 팬들을 매료시켰던 바 '추리'의 엉성함에 대한 논란을 뒤로하고, 그저 '죽음'에서 셜록을 건져 시리즈를 건재시켰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시 1년, <셜록; 유령신부> 마지막 특별 상영 영상에서 마틴 프리먼이 '볼멘 소리'로 또 겨울이냐고 하듯, <셜록>은 모처럼 1년만에 돌아왔다. 그런데 웬걸, 3부작도 아까운 듯 115분 극장판이다. 하지만, 이 극장판 <유령신부>는 어쨋든 셜록매니아들에게, 다음 시리즈의 셜록을 기다릴 소중한 에너지원이 되었다.

 

이렇게, '포탈 사이트'에 올라온 앞선 셜록 시리즈를 보지 않고 개봉한 영화 <셜록;유령 신부>를 봐도 되겠냐는 질문이 무색하게, 영화 자체를 어떻게 보고 즐기느냐와 상관없이, 개봉한 <셜록;유령신부>는 이런 셜록 시리즈의 연장선상에서 제작된 작품이다. 또한, 전작을 보지 않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린 채 극장을 나서게 만드는 것은, <유령 신부>가 일관되게 이전 셜록 시리즈의 시선을 유지하며, 그것을 극대화시키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질펀한 농담처럼, 영화 내내 흐르는 '은유'와 '상징'들은, 이전 작품들을 보지 않아도 그 나름 묘미를 찾을 수는 있지만, 이미 전작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한층 풍성하게 <셜록;유령신부>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다.

 

 


거대한 농담, 셜록

더글라스 매키넌 감독의 <셜록> 시리즈는 아서 코난 도일 원작의 셜록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하지만, 가이 리치 감독이 만들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셜록을 연기한 액션 블록버스터 <셜록 홈즈> 시리즈와는 궤를 달리한다. 이름만 셜록 홈즈일 뿐 '추리'보다는 '액션'에 치중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과는 달리, 원작을 '리메이크' 했지만, 추리 소설인 원작의 맛을 살리는데 치중한다. 비록 시즌을 거듭할 수록 국회 의사당 폭발처럼 '추리'보다는 '사건'으로 인한 해프닝의 여파가 커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드라마 <셜록>의 매력은 셜록의 잘난 척이 하늘을 찌르는 '추리'에 있다.

 

하지만 더글라스 매키넌 감독의 <셜록>은 그저 '추리'를 잘했던 소설 속의 명탐정 셜록 홈즈를 현대로 불러온 것만이 아니다. 고전 추리 소설 속 인물 셜록을 오늘에 맞추어 재해석하고, 아서 코난 도일이 무덤에서 나오면 기함을 할 만큼 셜록을 '기만'하기도 한다. 그래서, 엄밀하게 시리즈 <셜록>은 '리메이크'보다는, '패러디'라 정의내리는게 어울리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꼬마들은 영국의 명탐정 셜록 홈즈와 프랑스의 괴도 루팡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었다. 똑같이 '추리'를 기반으로 한 작품임에도 전혀 다른 맛을 내는 두 작품이, 그래서 심지어 모리스 르불랑이 <기암성>이라는 작품을 통해 두 사람의 대결 구도를 설정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 두 인물은 대척점에 놓여있다. 굳이 <기암성>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명탐정 셜록 홈즈는 '추리'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무심한 '추리 기계'같은 인물이다. 여성을 배려하는 '신사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그것은 '영국 신사'로서의 '에티듀드'를 넘어서지 않고, 여성은 물론, 그저 가끔 바이얼린을 켜는 외에 '줄담배'을 피우며, 머릿속으로 '추리'에 '추리'만 거듭하는 재미없는 인물일 뿐이다.

 

이렇게 19세기의 무미건조한 인물 셜록을 21세기의 현대로 불러온 시리즈 <셜록>은 그에게 새로운 주석을 덧댄다. 범죄에만 '홀릭'하는 그의 성격에는 범죄에 희열을 느끼는 '소시오패스'라는 해석이 붙여졌고, 줄담배를 피우며 추리에 골몰하는 그의 취향은, 추리의 상상력을 위해 '마약'에 빠진 나약한 존재로 거듭난다. 심지어, 왓슨 말고는 그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았던 그에게 여자도 등장하고, 숙적인 모리아티와의 '애증'은 묘한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그런 21세기의 문제적 인물 '셜록'의 전제 하에, 빅토리아 시대 여성 참정권 운동에 거부감없이 뛰어드는 셜록이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영국의 국영 방송 bbc의 드라마는 <닥터 후>를 통해 대영제국의 여왕을 외계인으로 묘사하며 희롱한(?) 전력을 이어받아, 오랜 세월 대중들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해온 완벽한 인물이었던 셜록을 인간적인 약점의 결집체로 그려낸다. 그런 '인간적인' 약점을 지녔으면서, 동시에, 그 약점들을 가졌음에도 '추리'에 출중한 새로운 캐릭터 셜록이 21세기형 인간으로 21세기의 추리 매니아들을 신선하게 매료시킨다.

 

 


크리스마스 특별판, <유령신부>

그리고, 크리스마스 특별판으로 만들어진 <셜록;유령 신부>는 바로 이런 셜록의 아이러니한 지점을 극대화시킨 작품이며, 매니아들을 여러 선물적 장치가 마련된 작품이다. 영화는 더글러스 매키넌 감독이 등장하여, 지금까지 21세기를 배경으로 했던 셜록을 빅토리아 시대로 끌고 간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셜록>은 이것이, 셜록 이란 시리즈 위에 그려진 액자 소설 같은 형태의 작품이란 걸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런 전제는, 이후 영화의 전개 속에서 느닷없이 등장하는 현대씬들의 이물감을 자연스레 이해시킨다. 빅토리아 시대의 유령 신부 사건을 수사하던 셜록과 왓슨은, 아니 셜록은 사건의 클라이막스에서 느닷없이 현대로 돌아오며, 지금까지의 일련의 사건이 셜록의 마약으로 인한 '환각'상태였음을 알린다. 하지만, 그 '환각'이 그저 상상이 아니라, 역사 속 실제 사건임을 무덤을 파서 증명함으로써, 마치 장자가 꾼 나비의 꿈처럼, 내가 나인지, 나비인지, 헷갈리게 하며, 역사와 현실을 오가는 '혼돈'의 재미를 극대화한다. '혼돈'의 재미는 이것만이 아니다. <유령 신부>에서 왓슨의 작품 속 셜록과 실제 셜록 사이의 충돌 역시 빈번하게 등장한다. 즉, 관객이 마주하고 있는 셜록이 실제 셜록의 아이덴티인지, 아니면 왓슨이 그려낸 작품 속 완벽한 탐정 셜록인지의 낯섬이 영화 <유령 신부>의 노림수 중 하나이다.

 

하지만 영화 내내 빈번하게 등장하는 작품 속 셜록과 실제 셜록의 충돌, 그리고 현대의 셜록과 빅토리아 시대의 셜록의 헷갈림이 유령 신부 사건의 종착점에서, 느닷없이 모리아티로 변하는 이질감을 극복할 수 있다. 유령 신부 자체로만 보면, 여성 참정권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숨죽여 살던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스스로 미국의 kkk단을 모방하여 스스로 단죄에 나선다는 사건의 형식이지만, 결국은 숙적 셜록과 모리아티와 귀결되고 마는 셜록 시리즈의 구심력을 확인하는 허무한(?) 결론이 되고 마는 것이다. 즉, 빅토리아 시대가 되었건, 현대가 되었건, 여전히 셜록은 심지어 죽었다는 모리아티를 상대로 '고전(苦戰)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 기승전 모리아티의 숙명이란 것을 부연 설명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허무하고, 또 누군가는 흥미진진하게 다음 대결을 기다리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by meditator 2016. 1. 7. 1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