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이켜 보면 <부활> 때도 그랬었다. 그리고 <마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른지도 모른다.

김지우, 박찬홍의 드라마들은, 조그만 구멍 하나가 결국엔 엄청난 봇물을 터지게 만들듯, 차곡차곡 쌓아져 가는 맛에 보는 드라마였다. 그래서, 이른바 그걸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환호작약한다는 '매니아' 드라마의 원조이기도 했고, 드라마가 종영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없는 난해한 드라마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른바 복수 시리즈의 완결판 <상어>를 만들려고 한 것이 무려 5년 전이었다고 한다. 5년이란 시간이 너무 긴 것이었나, 아니면, 겨우 5년이란 시간 동안, 세상이, 우리가 너무 많이 변해버린 것일까?

종종 <상어>를 보다보면 그 느린 호흡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사실 남여 주인공을 주구장창 풀샷과 클로즈 업으로 잡아대기론, 얼마전 종영한 <그 겨울 바람이 분다>도 만만치 않다. 오죽하면 <힐링 캠프>에 출연한 윤여정이 그러려면 뭐 하러 야외 촬영을 했냐고 힐문을 했을까? 그런데, <상어> 역시 만만치 않다. 남여 주인공, 김남길과 손예진이 등장하면, 카메라는 늘 과할 정도로 두 사람에게 들이댄다. 마치 '치명적 사랑이야, 치명적 사랑이지?' 라며 강요하듯이.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해우(손예진 분)의 첫사랑 한이수(김남길 분)가 교통사고 이후에 실종이 되었다는 건 알겠지만, 오히려 성인이 된 이후, 이미 결혼까지 하며 희희락락 살아가는 조해우와 그 앞에 자꾸 얼씬거리는 김준(한이수)이 그렇다고 해서, 치명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안타깝게도 그건, 작가와 감독이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갖은 공을 들였음에도, 그 사랑이 시청자의 마음에 깊게 아로새겨지지 않았다는 뜻이며, 또 한편에서 지금의 성인이 된 주인공들을 보며 첫사랑의 트라우마가 깊다는 게 공감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돌아온 김준은 해우를 만나기만 하면, 자신이 품고 있는 복수의 야망이 흔들릴 만큼, 그녀에게 다시 빠져든다. 앞서 걸어가는 그녀를 향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고, 비오는 거리에서 다짜고짜 입을 맞출 만큼. 물론 지나온 시간 동안 12년 전의 그 사건에 매여져 있는 김준이니깐 더욱 해우에게 얽매여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14년 만에 만난 그녀가 정말 그렇게 똑같을까? 어린 시절의 해우는 지금의 해우와 비슷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늘 우울하고 퉁명스러운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의 해우는 늘 방실방실 웃음이 넘치는 밝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었다. 물론 얼굴이나 표정이 친숙함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그 못지 않게 그 사람의 분위기도 중요한데, 심지어 한이수의 실종까지 겪은 해우는 종종 무표정일 때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밝게 자라지 않았나? 그런 그녀에게 다짜고짜 '치명적'으로 빠져들 수 있을까? 만약에 그 조차도 김준이 된 한이수의 계략이라면 몰라도, 지금까지 흔들리는 모습으로 보아선 그것만은 아니고, 오히려, 행복해 하고, 밝아진 그녀에게 이질감을 느끼는 게 먼저 보여질 반응이 아닐까?

 

김남길이 손예진에게 기습 키스하고 있다./KBS2 상어 방송 캡처

 

 

 

바로 이런 것들이다. <상어>가 어딘가 모르게 그 예전 드라마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돌아온 첫사랑, 그리고 한결같은 그의 감정, <상어>가 처음 시도된 그때로 부터 5년이 흐른, 그래서 가속도로 인간의 감정이 세속화된 5년의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은, 주인공의 지고지순함에 쉽게 동조하지 못한다. 첫사랑의 그녀 해우를 기억해 내고, 해우가 저렇게 달라졌는데, 어떻게 한결같이 사랑해?

그리고 사랑한다면서 검사가 된 그녀에게 사건의 열쇠를 맡기는 이유는 뭐야? 더구나 이미 결혼까지 한 유부녀를 어쩌라고? 이렇게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끌고 가려는 전제들에 대해 되바랄질 대로 되바라진 시청자들은 자꾸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한 술 더 떠서, 기억도 안나는 예전 드라마를 떠올리며, <부활>은 안그랬는데, <마왕>은 쩔었어. 하면서, 그 시간동안 자신의 눈이, 생각이 달라진 건 생각지도 않고.

<상어>의 사건 현장마다 그려진 붉은 원의 표식을 보면, 자꾸 미드 <멘탈리스트>가 떠오른다. 거기서 연쇄 살인범 레드 존은 사람을 죽이고 나면, 그 현장에 웃는 얼굴을 그려 놓는다. 이렇게 상어가 던지는 의문의 표시를 비롯해서 이른바 많은 '떡밥'들을 시청자들은 이미 어디선가 본 것 같다.

6회 무심히 자전거를 끌고 나타난 서점 아저씨, 그리고 그의 손에서 똑딱이는 그 무엇,( 그것은 바로 한이수의 아버지를 죽게 한 그것이었다! )

작가와 감독은 의미심장하게 서점 아저씨의 숨겨진 신분을 던졌다 생각했겠지만, 솔직히, 그런 류의 작품을 좀 본 눈치빠른 시청자라면 그 아저씨에게 이미 혐의를 두지 않았을까?

이렇게 작가와 감독은 야심차게 시청자들에게 무언가를 하나씩 던지는데, 그것이 '혹시나' 였던 거였다면, 그 추측이 맞아서 좋은 거 보다는, 오히려, 기대했던 <상어>가 알고보면 시시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것이다.

 

단순한 감정선에, 어디선가 본 듯한 사건의 실마리들을 가지고, <상어>는 그 마저도 아주 물 속을 유영하듯 유유히 끌고 나간다. 조해우 주변에서 사건이 터지거나,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려 하면, 늘 그와 대비되어, 김준의 의미심장한 표정이 등장하고, 그나마도 박진감있게 진행되어야 할 상황을 <상어>는 김준의 복수에 공감을 강요하며 한 템포 느리게 떨어뜨려 놓는다. 만화 책이나, 추리 소설이라면 후다닥 페이지 수를 넘겨 버리기라도 하지, 뭔가 이야기는 할 거 같은데, 막상 해버리면 좀 시시해 지는 <상어>, 안보자니 아쉽고, 보자니 답답하고, 그런 상황이다.

by meditator 2013. 6. 12. 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