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과장되게 말해서 나영석 피디, 아니 나영석 피디로 상징되는 제작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듯 싶다.

나영석 피디와 그의 제작진이 연예인들과 함께 '꽃보다' 시리즈를 제작한 이후, 공중파를 비롯한 국내 유수 방송사의 여러 제작진들이 연예인들과 함께 해외로 떠났다. 하지만, 꽃보다 시리즈 보다 뒤늦게 시작한 <7인의 식객>도, <sns원정대 일단 뛰어>도 이제 방송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꽃보다 시리즈만이 버전을 달리하며 생존 아니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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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 세끼>도 마찬가지다.

새로울 것이 없다. 이미 <남자의 자격>에서 농촌 집을 빌어 사계절을 나보겠다는 시도를 일찌기 했었으며, 같은 방송국 tvn에서 <삼村 로망스>라며 양상국, 양준혁, 강레오를 시골에 보내 생활하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똑같이 시골에 가서, 시골 집 빌어 생활하는 건데, 심지어, <삼시 세끼>는 한 술 더 떠서, 삼시 세떄 밥만 먹겠다는 건데도, <삼시 세끼>에는 <남자의 자격>이나, <삼村 로망스>에선 없던 웃음의 질감이 느껴진다. 그냥 별거 안하는데 웃긴다. 묘하다.

 

아마도 나영석 피디와 그 제작진의 신의 한수는 늘 가장 적절한 출연진의 섭외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이미 <꽃보다 할배>를 통해, 투덜거리면서도, 늘 제 몫을 해내고야 마는, 심지어는 집에서는 밥 한 끼 안해 먹으면서도, 할배들을 위해 얼큰한 찌개를 대령해 올리는 이서진의 기막힌 캐릭터를 또 한 사람의 '매의 눈' 나영석 피디는 놓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연예인들의 농촌 생활을 다룬 거의 모든 예능에서 출연진들은, 흔쾌히 농촌에서 삶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농촌에서의 삶을 꿈에도 그렸다던가, 혹은, 귀농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던가, 혹은 건강한 삶을 해보고 싶다던가 하는 식으로, 농촌에서의 생활을 유토피아처럼 받아들일 자세를 가지고 있다.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를 비롯한 출연진이 그랬고, <삼촌 로망스>의 강레오는 쉐프로서의 직업적 관점에서 농장을 가지고자 하는 야심을 내비치기도 했었다. 물론, 그런 환상이 현실에 맞부닥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 그런 프로그램들의 재미의 발생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삼시 세끼>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집에 있으면 밥도 해먹지 않는다는 이서진은, 심지어, 농촌에서의 삶을 부정한다. 도시가 좋단다. 유기농이 싫단다. msg가 좋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좋은 환경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먹는 것이 환타지가 되는, 이 시대의 트렌드를 그는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런 그가, 농촌에 던져졌다. 바로 이 지점, 농촌에서의 삶에 대해 그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는 도시인의 농촌 라이프가 가진, 새로운 질감이, 기존에 시도되었던 농촌 라이프 프로그램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재미를 선사한다. 물론, 농촌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하루, 아니 반 나절만에, 농촌에서의 삶을 불편하게 느낄 그 현실감을, <삼시 세끼>는 이서진을 통해 충분히 구현해 낸다.

 

그런 이서진이 <꽃보다 할배>에서 처럼 궁시렁거리면서도 시키면 또 꾸역꾸역 다 해낸다  '망했어요'라는 당당하게 말하는 첫 방의 <삼시 세끼>에서 정작 많은 일을 실제로 해낸 것은 화분에 뿌린 씨앗을 정성스레 키워오며 열의을 보인 택연이 아니라, 이서진이었다. 첫 선을 보인 <삼시 세끼>에서도 그렇다. 대충 하는 듯하지만, 택연이 불을 피우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궁시렁 대며 몇 번을 오가며 벽돌을 날라 무쇠솥을 걸 아궁이를 만드는 식이다. 이렇게, <삼시 세끼>는 <꽃보다 할배>가 첫 방의 이서진 몰래 카메라를 통해 프로그램의 재미 요소를 각인했듯이, 이미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그래서 재미가 기대가 되는 이서진이란 캐릭터에 온전히 의존해 가며 첫 회를 채워간다.

 

거기에 이서진과 대비되는 택연의 캐릭터도 양념과도 같은 요소다. 택연이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 처음은 아니다. 가장 가깝게는 2013년 12월 <인간의 조건>에서 '스트레스 없이 살기'편에 합류한 적도 있다. 하지만 함께 한 <인간의 조건> 멤버들이 시키는 대로 가로수 길 한 가운데에서 춤을 추는 등 열의를 보였지만, 그의 예능 출연이 화제를 일으키진 못했다. 연예인이라기엔 평범한, 그래서 심심한 청년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함께 출연했던 드라마에서 형,동생으로 출연했던 이서진과 함께, <삼시 세끼>에 등장하자, 그의 캐릭터가 달라진다. 제작진은, 평범해서 심심한 그의 모습을, 멀쩡하고 아는 것도 좀 있고, 열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실속은 없는, '빙구' 캐릭터로 구상하여, 궁시렁대는데도 실속은 있는 이서진과 대비시킨다. 멀쩡한 외모의, 대비되는 캐릭터의 두 인물,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누구도 시골 생활에서 실속이 없는 두 사람의 존재가, 첫 선을 보인 <삼시 세끼>의 웃음 포인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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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를 가지고 요리할 줄 몰라서 달래 뿌리는 놔둔채 줄기만 떼어 오고, 수수를 타작할 줄 몰라 딱딱한 수수밥을 만들고, 무밥에 무채 대신 깍뚝 썰기한 무를 넣고, 파전에 실파를 넣는 것은, 사실 어설픈 농촌 생활에서 그리 낯선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농촌에서의 삶의 이유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서진과, 열심히는 해보려고 하지만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택연이 하기 시작하니, 그저 밥만 해먹는데도 웃긴다.

도대체 삼시 세끼 해먹으면서 무슨 웃음을 만들까 싶었는데, 매회 게스트를 초대해서 밥을 먹이며 새로운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 갈 태세다. 심지어, 게스트를 초대해 그들에게 밥 한끼를 먹일 때마다, 대접하는 고기로 인해, 두 출연자의 무지막지한 수수 추수 노동이 기다리고 있으니, 왜 아니 기대가 되지 않겠는가. 고기와 수수 농삿일의 딜, 역시나, '사기꾼' 나영석 피디다운 발상이다.

by meditator 2014. 10. 18. 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