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아니 기적은 없었다. 심지어, 13회 시청률은 2.8%(닐슨 코리아 기준)로 떨어졌다. 마지막 회, <닥터스>의 수도권 시청률이 시청률 표의 '지붕을 뚫는' 그 순간, 그나마 종영의 미덕으로 3.2%로 면피했을 뿐이다. 13회의 2% 남짓 시청률, 보는 사람조차도 보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왜? 그걸 답해주는 건, 올림픽을 핑계로 결정된 '조기 종영'이다. 지난 몇 회간 <뷰티플 마인드>가 보여준 '질주'는 조기종영이 드라마에 미치는 악영향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차라리, 애초에 ocn이나 tvn처럼 시청률을 담보로 조기 종영이 없는 케이블로 갔더라면, 이런 무리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뷰티플 마인드>는 비록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오래도록 두고두고 회자될 '명작'으로 기록될 것이었다. 하지만, '조기 종영'이라는 결정으로, 드라마는 그저 불친절한 괴작으로 남고 말았다. 


중층적 갈등구조, 불친절한 서사 
14회를 시작하는 건,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를 진찰해야 하는 의사, 이영오(장혁 분)가 반대로 환자복을 입은 채 수술실로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법적으로 금지된 '폐이식' 수술, 심지어 생체 이식의 위험성으로 말미암아 두 사람의 공여자가 한 사람에게 폐를 이식하도록 되어있는 수술, 하지만 급격하게 나빠진 계진성(박소담 분)의 폐는 이식의 순번은 물론 또 한 사람의 공여자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이영오는 그의 불법적 시술로 인해 두 사람의 말기 뇌종양 환자를 살렸던 그 때처럼 서슴없이, 환자를 살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다. 단지 이번엔 그가 의사의 입장인 대신, 폐 이식 공여자로. 



하지만, 이전의 불법 시술과, 계진성의 불법 폐 생체 공여가 같은 불법이라 하더라도, 그에 주도하고, 가담한 이영오는 달라져 있다. 스스로 보석상을 털며, 감옥행을 감행하며 자신의 삶을 땅바닥에 후려쳤던 뇌종양 환자의 이율배반적인 삶의 의지를 읽어냈던 공감 장애 사이코패스 이영오는, 이제 공감의 문제를 넘어,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살아있고 싶다던 말기 암 환자의 죽음 앞에서, '의사로서의 최선'을 고민한다. 스스로를 '모탈리티 컨퍼런스(motality conference; 환자의 사망 과정과 원인을 살펴 재발을 방지하려는 회의)'에 세우며, 의사로서의 본분을 의심했던 이영오, 그런 이영오의 모탈리티를 주도한 아버지이자 병원장인 이건명(허준호 분)은 비록 환자는 고통 속에서 죽어갔지만, 의사로서 이영오는 최선을 다했다며 면죄부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면죄부'에 대한 이영오의 대답은 뜻밖에도 '최선에 대한 거부'. 

아버진 이건명은 아들의 의료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했지만, 이는 곧 십여년 전 자신이 했던 아들 이영오에 대한 수술에 대한 '최선'이었다는 자신의 의료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하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최선'을 통해 그리고 이어진 '최선'의 교육을 통해 사실은 사이코패스가 아니었던 이영오가 사이코패스 이영오가 되었듯, 이영오는 말한다. 환자가 죽어버린 의사에게 '최선'이란 말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이런 아버지 이건명과 아들 이영오 사이의 의사로서의,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관계와 존재론은, 아들 이영오로 하여금 스스로를 이식 공여자로 수술대에 오르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른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십 여년 전에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했던 수술에서 당시의 의료 기술 미비로 말미암아, 의료 사고가 되었던 이영오, 그런 자신의 실수를 용서할 수 없다는 아들 이영오에게 아버지 이건명은 모탈리티 컨퍼런스에 스스로를 세운 아들에게 '최선'이란 말로, 아들과 자신을 구원하려 한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탈리티 컨퍼런스, 하지만 거기서 이야기 되는 것들은 과거 이건명의 의료 행위로부터, 아버지 이건명과 아들 이영오의 관계까지, 중층적이고, 중의적인 관계와 서사들이다. 드라마는 이를 통해, 의사로서의 존재론과, 나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론까지, 복잡한 사회적, 가족적 의미를 헤아려 보고자 한다. 

조기 종영의 참사 
하지만, 졸지에 '조기 조영'이 선포된 드라마는 이 복잡다단한 서사를 '사건' 위주로 짚고 넘어갈 수 밖에 없다. <뷰티플 마인드>처럼 중층적 구조와 갈등 구조를 가진 드라마는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역학 관계와 심리가 전제 되어야 하는데, 시간에 쫓긴 드라마는 그런 갈등을 풀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을 채 달구지 않은 채, 사건 위주로 극을 이끌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드라마는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처럼, 한 회에 갈등을 벌였던 아버지와 아들이, 다음 회에선 아버지가 나서서 아들을 변호하고, 그런 아버지를 아들이 이해하고, 해고 위기에 처한 아들을 아버지가 구해내는 미담으로 급마무리된다. 사건들은 이어지지만, 그 사건의 토대가 되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고민이 부족하다 보니, 각 인물들이 결정에 시청자들이 쫓아가기에도 급급한 모양새가 되었다. 심지어, 마지막 회, 마지막 장면 즈음, 이건명을 찾은 현석주가 이건명에게 진통제 운운하는 대사를 통해 이건명의 몸에 어디 이상이 생겼음을 알 수 있지만 시간에 쫓긴 드라마는 그걸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 한 장면이 조기 종영으로 말미암마 <뷰티플 마인드>에게 벌어진 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저 시청자들이 헤아려 짐작해서 이해해야 하는 드라마. 



그뿐만이 아니다. 이렇게 주제 의식조차도 사건을 통해 선언하듯 허겁지겁 그려낸 드라마가 주변 인물들에겐 오죽했으랴. <뷰티플 마인드>가 꽤 괜찮았던 드라마인 이유에는 등장했던 인물들이 허투루 쓰인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레지던트 동하(양성은 분)에서, 장문경 간호사(하재숙 분)까지 에피소드를 통해 생생하게 살려내려 했던 드라마, 하지만 조기 종영 결정이 내려진 후 드라마에서 등장하지만 사라진 인물들이 여럿 있다. 무엇보다, 7년간의 고시 공부 끝에 순경이 되어 그 순수한 열정이 방송 초반 민폐로 묘사되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던 박소담이 분한 계진성은 정작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강력반으로 전보된 이후, 직업적으로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드라마 속 계진성은 여느 드라마에서 처럼 그저 이영오의 와이파이로서만 그 역할을 다한다. 현석주(윤현민 분) 역시 마찬가지다. 계진성의 짝사랑 상대로 등장하여, 이영오란 공감 장애 의사와 대비되는 도덕적이고 모범적인 의사였던 그가, 자신과 동료들이 헌신했던 줄기 세포 치료제의 성공을 위해 도덕적 신념조차 저버리게 되는 파격적인 행보를 드라마는 설득할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주인공 이영오의 주변 가장 중요한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가 단선화되고, 갈등자로서의 풍부함이 사라지며, 드라마는 오로지 공감 장애 사이코패스 이영오만이 독주하는 단조로운 드라마로 귀결된다. 

아마도 이렇게 인물간의 심리 묘사에 대한 곡진한 설득이 필요한 드라마를 '조기 종영'이란 결정으로 그저 사건 나열의 불친절한 드라마로 만들어 버린 그 이면에는, 개연성도 없고, 앞뒤가 맞지 않아도, 그저 시청률만 보장된다면 좋은 드라마가 되었던 한국 드라마의 관행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 깔려있다. 무엇보다, 하나의 드라마를 시청률을 담보로 한 '장사' 이상으로 생각지 않는, '작품'으로서의 드라마에 대한 무지와 천박한 속내 역시 드러나 보인다. 차라리 이 드라마가 장르물에게 너그러운 혹은 장르물 전용의 케이블로 갔었더라면 어땠을까? 성급하게 계진성과 이영오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는 대신, 다음 시즌을 기약하는 사이코패스 의사 시리즈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시청률 안 나오는 드라마의 조기 종영으로 하나의 드라마가 묻혀 가는 것이 아니라, <뱀파이어 검사>나, <특수 사건 전담반 ten>처럼 괜찮은 의학 스릴러 시리즈 콘텐츠를 상실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애초에 깜냥이 안되면 편성을 하지 말던가, 병원에서 연애하는 드라마를 상대로 진지한 심리 의학 스릴러를 배짱으로 편성할 때는 언제고, 시청률이 안나오자, 후다닥 '조기 종영'이란 카드로 드라마의 완성도조차 무너뜨려 버린 이 결정의 댓가는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하는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작품의 완성도를 훼손하지 않으려 애쓴 김태희 작가와,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쫓김이 드러나지 않는 화면을 그려낸 모완일, 이재훈 피디, 그리고 그의 또 한번의 인생 캐릭터가 된 이영오를 연기한 장혁에서 부터, 초반의 고전을 딛고 와이파이로서의 존재감을 상큼하게 보여준 박소담, 그의 모처럼의 복귀가 반가웠던 이건명의 허준호, 그리고 독수리 5형제까지 그 누구하나 허투루 연기하지 않았던 출연진의 열연에 경의를 표한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마무리가 아쉬웠음에도 불구하고 <뷰티플 마인드>는 오래오래 좋은 드라마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by meditator 2016. 8. 3. 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