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일(이주승 분) 일당에게 납치된 강권주, 그 강권주를 구하기 위해 겨울 저수지 숲을 헤치고 조금씩 다가가는 무진혁(장혁 분),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다음 시간에'라는 무지막지한 협박을 남기며 사라진 4회의 <보이스>.  매회 범인과의 일전을 눈 앞에 둔 순간 끝나버리는 드라마에 '내가 범인도 못잡고, 아니 안잡고 끝내버리는 이런 드라마를 보려고 '닥본사'를 했나'하는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마 <보이스>를 시청했던 대다수 시청자들은 다음 시간 '또 오늘도 그러면 안본다!'이런 부질없는 협박을 날리며 리모컨을 <보이스>에 고정하고야 만다. 무엇때문에?




강권주의 납치, 김홍선 표 연출의 전화위복
아마도 매회 범인을 코 앞에 놔두고 시청자를 회롱하듯이 끝내버리는 이 야속한 드라마에도 불구하고 다음 회를 기약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범인'이 누군인가? 혹은 '범임'이 잡히는가라는 '범죄 스릴러' 장르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때문일 듯하다. 하지만 그런 기본 요건에 덧붙여 5%를 가뿐히 넘긴 <보이스>(닐슨 유료 플랫폼 가구 기준 평균 5.5%)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박진감넘치는 장르물에 독보적인 김홍선 감독의 연출력에 있지 않을까? 첫 회 맨 발로 쫓기던 장혁의 아내와 그 무기력한 아내를 쫓던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아내가 한숨을 돌리던 그 순간 울리는 벨소리로 결국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고 마는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대립각을 김홍선 감독은 대중적으로 장르물을 각인한 <시그널>의 속편인 양 재현한다. 

김은희 작가와 김원석 피디의 <시그널>이 그런 쫓고 쫓기는 범죄 현장을 둘러싼 드라마틱한 인물들간의 얽힘과 그 배경이 되는 사회악에 집중한다면, 김홍선 표 장르물의 방점은 바로 그 '쫓고 쫓기는 자의 숨막히는 추격전'에 찍혀있다. 첫 회 결국 희생자가 되고 만 무진혁의 아내의 도망씬에 이어, 바로 뒤이어 그 시간 형사 반장으로 큰 수확을 거둔 무진혁의 범죄 현장 추격씬은 바로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김홍선 표 범죄 스릴러가 112 신고 센터를 중심으로 한 범죄 골든 타임을 내걸고 등장한 것은 수학 특기자가 '수학 경시 대회'에 나간 모양새라고나 할까? 하지만, 뜻밖의 복병이 있었다. 바로 여주인공인 112 신고 센터장이라는 내근직의 한계였다. 어릴 적 사고로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청취해내는 탁월한 '보이스 프로파일러'의 능력을 지녔지만, 바로 그 능력치가 김홍선 표 스릴러의 박진감에는 딜레마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 딜레마를 <보이스>는 4,5회 강권주 팀장의 납치 사건을 통해 갇혀있는 보이스 프로파일러의 영향력을 확장시킨다. 

 

무리한 1인 행동이라 했지만 신고 센터 직원의 뜻밖의 친절한 안내로 자신이 들통난 황경일의 도발로 안타깝게도 골든 타임을 지휘해야 할 강권주는 납치를 당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드라마는 늘 신고 센터 안에서 전화선을 통해 그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강권주의 능력을 밖으로 뻗어나가도록 한다. 자신을 구하러 온 무진혁의 발소리부터 폐교에서 무진혁과 함께, 그리고 심지어 무진혁보다 먼저 그녀의 능력를 활용해야 피해자를 구해내는 강권주의 활약상은 그간 우려했던 112 신고 센터 골든 타임 팀의 활약에 기대를 더하게 한다. 

이렇게 밖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 보이스 프로파일러 강권주와 함께, 김홍선 표 연출은 숨막히는 긴장감의 연속으로 드라마를 몰아간다. 스산한 갈대밭의 추격씬, 그리고 '호러물' 못지 않은 공포심을 자아내는 공간감, 그리고 암흑의 페교 교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소리 추격은 <보이스>라는 드라마의 매력을 한껏 살려낸다. 

<시그널>의 차수현과는 또 다른 매력의 강권주 
이렇게 <보이스>가 자신의 장르적 매력을 살려가는 것과 더불어 커져가는 건 강권주 팀장의 캐릭터다. 이미 김혜수가 <시그널>을 통해 장기미제 전담팀 팀장으로 그리고 이재한 형사의 '쩜오' 후배로 양수겹장의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해석해 내며 늘 범죄 수사물에서 피해자이거나, 주변 보조자로서의 역할에 그쳤던 여성 캐릭터의 발전에 한 획을 그었다. 거기에 이제 <보이스>의 이하나에 의해 풀어지고 있는 강권주 팀장은 또 다른 영역을 펼쳐낸다. 112 신고 센터의 초짜 직원 시절 벌어진 연쇄 살인으로 아버지까지 잃은 강권주, 하지만 그녀에게는 어릴 적 사고로 인해 얻어진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은 <보이스>란 드라마의 중요한 동력이다. 그런 능력치 외에, 첫 회부터 요동치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피해자를 인도해가던 그녀의 캐릭터는 이제 4,5회 현장을 통해 활동의 폭을 넓히며 생동감있게 살아난다. 

<시그널>조차 여성 캐릭터의 '감성'에 강조를 둔 것과 달리, <보이스>의 강권주는 오히려 상황에 휘둘리는 남성 캐릭터들과 달리, 가장 이성적으로 사건에 접근하는 존재로 지금까지의 문화 컨텐츠 속의 여성들과는 다른 면모을 보인다. 황경일이 그녀를 묻으려 하는 순간에도 자신대신 은별을 살려달라 말하는 책임감, 그리고 폐교를 폭파하겠다며 마지막 발악을 하는 황경일 앞에서도 프로파일러로서의 분석력을 놓치지 않는 강권주는 요즘 '걸 크러쉬'라는 유행어에 가둬두기에도 아쉬울 만큼 신선한 여성상이다.

강권주만이 아니다. 황경일의 도발 앞에 쓰러진 강권주를 구하기 위해 납치당해 부상을 입었음에도 용감하게 황경일을 덥친다던가, 어머니의 외도을 자신의 범죄의 핑계로 삼은 황경일에게 자신 역시 피해자라며 강력하게 어필하는 박한별의 캐릭터 역시 1회의 복님과 함께 피해자의 한계에 갇히지 않은 여성상을 구현한다. 



하지만 이렇게 여성 캐릭터의 선전과 달리, 무진혁 등 남성 캐릭터들은 아쉬움을 남는다. 결정적 위기의 순간이 되면 <추노>의 대길이가 되고 마는 거야 장혁의 트레이드 마크다 싶어 한 수 접는다 하더라도, 매번 여성 캐릭터들에게 '반말'을 툭툭 던지는 그의 '어티튜드'는 투박한 무진혁의 캐릭터라 접어주기엔 무례함의 여운을 남긴다. 뿐만 아니라, 왜 매번 그의 총구는 엉뚱한 곳을 맞추는지, 그의 맨몸 활약을 위해서라기엔 형사 반장 무진혁의 사격 실력이 아쉬운 건 사족일까. 

폐교에 불이 날 상황 앞에서도 굳이 언니와의 눈물어린 전화 상봉을 하고야 마는 등 아쉬운 감정씬의 늘어짐을 차치하고, 늘 결말이라기보다는 다음 회의 떡밥이 더 큰 '자괴감'을 견뎌낼 만큼 <보이스>의 약진은 매력적이다. '대길'이 대신 무진혁으로 기억될 수 있는 장혁의 개과천선과 강권주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7. 2. 5. 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