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8시 50분 kbs2tv를 통해 또 하나의 파일럿 프로그램이 찾아왔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예능이 아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예능 못지 않게, 아니 종종 예능이 아냐? 할 정도로 재미지다. 바로 <발칙한 사물 이야기, 다빈치 노트>이다.

 

<발칙한 사물이야기, 다빈치 노트>는 인문학 토크쇼이다.

그런데 kbs의 인문학 토크쇼는 <발칙한 사물이야기, 다빈치 노트(이하 다빈치 노트)>가 처음이 아니다.

2011년 1월부터, 2012년 5월까지 방영되었던 <명작 스캔들>은 당시 인기있었던 문화 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와 조영남이라는 두 문화계 거두를 필두로 하여, 미술의 명작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문학적 이야기를 풀어냈었다.

또한 , 김정운 교수는 같은 해 소설가 이외수씨와 함께, <두 남자의 수상한 쇼, 야동>이라는 야릇한 제목으로, 우리 시대의 다양한 화두를 '삐딱하고 독특한 시선으로' 풀어내고자 한 바 있다.

이렇게 '인문학적 토크쇼'에 나름 전통을 가진 kbs가 이번엔 '사물'을 토크쇼의 주제로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 '사물'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람들로, 역시나 요즘 트렌드가 되고 있는 인문학계의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그 첫 번 째 인물은,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책은 도끼다' 등을 통해, 광고에 인문학적 사고를 부여한 것으로 화제가 되고, 그의 책을 통해 젊은이들의 당대 멘토로 등장한 광고기획자 박웅현씨다.

그에 이어, 두번 째 인물은, 요즘 한참 인기를 끌고 있는 '진화론'을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 과학 철학 교수 장대익씨다. 10 여년에 걸쳐 침팬지 언어를 터득한 그는, 다짜고짜 mc인 김민정 아나운서에게 침팬지의 언어로 인사하며 딱딱할 것이라는 학자의 선입관을 넘어선다.

다음의 인물은 그의 독특한 이름보다, 그의 일러스트가 더 우리에게 익숙한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밥장이다.

마지막 인물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의 성적 취향을 넘어서, 종횡무진 <마녀 사냥>을 비롯한 각종 토크쇼의 양념으로 그 입지를 톡톡히 다지고 있는 홍석천이다.

이렇게 광고, 학계, 미술, 그리고 연예계 까지 다양한 분야의 '핫'한 인물들을 모아, 하나의 사물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가고자 한다.

 

그런데 어쩐다. 네 명의 패널이 다 아저씨들인데, 파일럿으로 방영된 방송의 첫 번째 주제가 립스틱이다.

레드와 핑크 말고는 립스틱 색깔도 구분할 줄 모르는 네 명의 '아저씨'들이 '멘붕' 에 빠졌음은 두 말할 나위없다.

그래서 <다빈치 노트>가 준비한 것은, 이렇게 인문학적 식견은 가졌지만, '남성'적 한계에 갇힌 패널들을 보충하기 위해, 모델 송해나, 방송인 김정민, 메이크업 아티스트 한우리, 뷰티 에디터 피현정이 등장했다.

이들은 때로는 '아저씨'들의 편협한 식견을 위협하고, 때로는 '인문학적'교감을 나누며, <다빈치 노트>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평균 길이 7cm, 필요에 따라 길어지며'라고 선정적인 소개로 시작한 립스틱에 대한 이야기는, 프랑스 루이 15세의 애첩 퐁피두르 부인에서 부터, 세계 제 2차 대전까지 종횡무진 역사를 다루는가 하면, 카이스트 학생들을 상대로 립스틱을 바르기 전, 후의 여자에 대한 심리 실험을 진행하고, 남미의 연지 벌레 등 성분 분석까지, 립스틱을 매개로 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는 듯했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에서 개발된 립스틱이,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대중들의 전유물이 되었으며, 전쟁 통의 립스틱은, 남성들에게는 사기 진작의 효과로, 여성들에게는 남성들을 대신한 노동 인력으로서의 고됨을 달래주는 진정제라는 양면의 효과를 가졌었으며,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자부심과, 위로의 효과를 주는 제일의 화장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립스틱이라는 사물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사회를 짚어보게 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은, 주제가 립스틱이었던 관계로, 때로는 방송인 김정민이 진행했던 '겟잇뷰티'같기도 했고, 홍석천의 진한 농담이 흥건해지면, 졸지에 '마녀사냥'이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박웅현씨의 해박한 지식이 등장하면 'sbs지식나눔 콘서트 아이러브 人'이었다가, 장대익 교수의 진화론적 해석이 등장하면 흥미진진한 강의실이 되기도 하였다.

딱히 어느 한 성격을 고집한다기 보다는, '립스틱'이라는 주제로, 때로는 질펀한 농담이 오고가다, 진지하게 학문적인 분석을 해보고, 그런가 하면, 제시된 다큐 속의 진실을 파헤치기도 한다. 퐁피두르 부인의 립스틱을 가져다 달라는 유언을 단지 '미'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당대 최고의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자기 존재 확인이라는 면을 짚어 보듯이, 재미와, 그 재미를 넘어선 촌철살인의 묘미를 놓치지 않는다.

 

 

덕분에, 어설픈 그 어떤 예능보다도 <다빈치 노트>는 재밌었고, 재미를 넘어선 지식을 선사한다. 그 지식이 물론, '수능'시험에 필요한 그 어떤 것은 아니지만, 웃고 떠들고 그만인 것을 넘어, 우리 주변의 사물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혜안을 선사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이른바 '에듀테인먼트'의 전형적인 사례이자, 최근 다시 각광받고 있는 '스튜디오 토크쇼'와 '인문학'의 바람직한 결합이라 보여진다. 시청률과 상관없이, kbs2의 인문학적 토크쇼의 전통을 잘 이어가는 프로그램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4. 12. 3. 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