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대로 시간대를 옮긴 탓일까? 아니면 역시 박보영일까? '커밍순'까지 방영하며 홍보를 했던 ,힘쎈 여자 도봉순>이 방송 2회만에 시청률 5%를 넘었다.(닐슨 유료 가구 기준 5.798%) 박보영의 전작을 함께 했던 유제원 피디의 <내일 그대와>가 매주 시청률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나 '박보영'이라는 소리가 나올만도 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8시 반의 시간대를 포기한 것일까란 설레발이 나올 정도다. 




도봉순과 나봉선의 박보영 표 연기 
박보영은 <힘쎈 여자 도봉순> 여자 주인공 도봉순을 연기한다. 행주대첩 당시 행주 치마에 돌멩이 대신 바윗돌로 적을 내려쳤다는, 모계로 이어내려진 괴력의 소유자다. 이 '걸크러쉬'한 능력의 슈퍼 히어로지만, '괴력 오용'의 경우 '괴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는 징크스로 인해 늘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에 급급하며 살아왔다. 그러기에 현실의 도봉순은 그저 고졸 출신에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으면서도 게임 기획자라는 포부를 지닌 '아프니까 청춘'일 뿐이다. 하지만 늘 그녀 주변에서 벌어진 뜻하지 않는 해프닝들이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괴력을 숨길 수 없게 만드는데, 드라마는 바로 그 '괴력'의 남발로 인해 얽혀진 '아인 소프트'ceo 안민혁을 비롯한 갖가지 사건으로 엮어져 간다. 

이렇게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 박보영이 맞은 역할은 현실에서는 영락없는 88만원 세대의 청춘이지만, 알고보면 '현실을 뛰어넘는' 히어로급의 존재이다. 그런데 이 캐릭터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이 설명은 박보영의 전작 <오 나의 귀신님(2015)>의 캐릭터에 입혀보면 어떨까? 고시원을 전전하며 28살의 나이에 주방 보조를 하게 되는 나봉선과 상당히 흡사하지 않은가? 나봉선 역시 '귀신들이 자꾸 말을 거는'  남다른 능력을 가졌다. <오 나의 귀신님>에서 '귀신을 보던' 나봉선은 이제 '귀신 대신 괴력'이란 특이한 캐릭터 도봉순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나봉선이든, 도봉순이든 현실에서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치이고, 사회적으로 자기 역할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청춘'이라는 점에서 또한 공통적이다. 

뿐만 아니라 <힘쎈 여자 도봉순>과 <오 나의 귀신님> 역시 기본적으로 '로코'에 '빙의물'과 '범죄물'이 결합된 복합 장르다. 그래서 주인공인 박보영은 '빙의'되어 누군가의 사연을 해결해주며 그 과정에서 남자 주인공이었던 셰프 강선우와 사랑을 엮어 나갔다. 마찬가지로 <힘쎈 여자 도봉순>의 도봉순 역시 그 '괴력'을 빌미로 아인 소프트 ceo 안민혁(박형식 분)의 보디가드가 되는가 하면, 어릴적 친구이자 짝사랑인 형사 인국두(지수 분)와는 사건을 매개로 얽히게 된다. 이렇게 드라마는 기본적 구성에 있어서는 '연애물'이지만, 그 전개 방식은 신선한 소재의 드라마로 시청자들에게 접근한다. 실제 1회 각 캐릭터를 소개에 치중했던 드라마는 2회에 들어서며 연쇄 살인범을 전면에 등장시키며 극의 긴장감을 높여간다. <오 나의 귀신님>이 서브남 캐릭터 대신 빙의된 최성재(임주환 분)을 전면에 내세웠던 것과 비슷한 구성이다. 



박보영의 영리한 전략 
실제 <힘쎈 여자 도봉순>이나, <오 나의 귀신님>에서 박보영이 연기하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현실에 고통받지만, 사랑하는 이 앞에선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녀가 사람들의 뇌리에 박보영이라는 이름을 아로새기는 그 시점부터 어쩌면 박보영은 늘 그랬던 것처럼. 안타깝게도 박보영이 스스로 연기 변신으로 시도했던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2015>와 같은 작품은 외면받았다. 그렇다고 박보영 만의 아우라가 늘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과속 스캔들(2008)>로 이름을 알리고, <늑대 소년(2012)>으로 흥행의 정점을 찍었지만, <피끓는 청춘(2013)>, <열정같은 소리 하고 있네(2015)>로 박보영의 캐릭터는 '소진'되어 가는 듯 보였다. 

그랬던 박보영이 뒤늦게 tvn의 <오나의 귀신님>으로 돌아와 박보영만의 사랑스러움을 한껏 만개한다. 물론 사랑스러움못지 않게 김슬기인지 박보영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천연덕스러운 현실 연기 또한 맛깔나게 살려냈다. 그리고 빙의된 천연덕스러움과 사랑스러움을 천하장사 괴력을 가진 아르바이트생 도봉순을 통해 재연된다. 캐릭터는 흡사하되, '귀신'과 '괴력'이라는 조건을 달리하며, 박보영 표 '로코'의 지루함을 피해가는 영리한 전략이다. 그리고 이 전략은 2회의 시청률에서 보여지듯 박보영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증명해 내고 있다. 이 전략이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도 먹힌다면, 어쩌면 박보영 역시 공효진처럼, 자신만의 로코 연기로 명불허전의 역사를 쌓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오 나의 귀신님>에서 박보영의 '쿵'한 사랑스러움을 조정석의 원맨쇼급 셰프 연기와 김슬기의 천연덕스러움이 뒷받침한 반면에, 이제 2회를 마친 <힘쎈 여자 도봉순>이 박형식과 지수의 풋풋함과 멋짐 이상 박보영의 연기를 '에스컬레이션' 해준 상대방이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보여진다. 그 덕분일까? 이미 2회지만, 박보영 표 연기가 드라마 속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덕분에 박보영은 빛나지만, 그 빛의 지속성이 걱정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1회에서 '걸크러쉬'했던 도봉순이, 2회에서 짝사랑 연인을 돕다 피해자를 놓치듯 '민폐적' 소인을 드러내는 것 역시 <힘쎈 여자 도봉순>의 과제가 될 듯하다. 

물론 이런 우려조차도 <욱씨 남정기(2016)>를 통해 신선한 '걸크러쉬' 캐릭을 창조해냈던 이형민 피디가 있는 한 접어두어야 할 기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신선한 여성 캐릭터의 <욱씨 남정기>든, 혹은 신선한 소재의 로코 <오나의 귀신님>이었든 결국 여주인공의 캐릭터를 밀고 나간 것은 신선하지만, 탄탄한 이야기였다. 부디 <힘쎈 여자 도봉순> 역시 이들 작품처럼 박보영 표 연기의 성공작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by meditator 2017. 2. 26. 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