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은 허영만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만화이다. 그런데 거기에 뜬금없이, 혀영만과 지인들이 캐나라도 '집단 가출'을 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만화는 나름 사회에서 다 저마다 한 가닥 하는 남자들이 '가출'이라는 마법이 걸리자 마자, 갑자기 사춘기소년처럼 설레여하고, 대책없이 무작정 덤벼들기도 하고, 또 바로 그런 순수한 시절의 눈으로 자연을 감동하는 모습을 너무도 실감나게 그려냈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만화 속 그 중년의 소년들의 감정과 표정이 고스란히 기억날 만큼. 
아니나 다를까, 나말고도 그들의 '집단 가출' 해프닝이 인상깊었던 것인지, 허영만은 아예 <허패의 집단 가출>이라는 만화를 펴냈고, 이들의 '집단 가출'은  2010년 <ebs 다큐 프라임>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 중; 사진; 미디어 한글로)

그리고 바로 그런 허영만과 지인들의 집단 가출에 모티브를 둔 예능 한 편이 9월11일 방영되었다. 
남희석, 신현준, 이훈, 정형돈, 정겨운, '인피니트'의 성규 등 여섯 남자가, 정규 편성을 지향하는 이름의 '레귤러 호'를 타고 마라도까지의 1박2일을 요트를 타고 항해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보트를 탄다거나, 가출이라는 포맷적 특징이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우선 드는 생각은 '또 남자들의 예능이야?'였다.
만약에 <바라던 바다>까지 생기면, kbs2 에만 남자들의 예능이 3개나 되는 것이다. 전국 방방 곡곡을 여행하는 <1박2일>에,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는 여러가지 미션을 수행하는 <인간의 조건>에 이제, 그것도 모자라 바다에 가서 1박2일을 찍는다고? 

허영만과 지인들의 '집단 가출'의 묘미는 매우 안정적인 일상에서의 삶을 지닌 평범한 사람들이 그 일상의 궤도에서 삐끄러져 나와, 가출을 감행하는 것이다. 
화면에 등장한 남희석, 이훈 등이 아내와 가족으로부터의 가출을 논하지만, 제 아무리 그들이 가출의 절실함이나 당위성을 주장해도, 이미 '예능'에서 너무 익숙한 그들의 면모가 '가출'이라는 '일탈'이라는 단어와 잘 조합되지 않는다. 게다가 정겨운은 이미 케이블의 캠핑 프로그램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했고, '인피니트'의 성규 역시 이젠 '예능'에서 익숙하다 보니, 분명 새로운 멤버인데, 전혀 새로운 프로그램 같지 않은 느낌이랄까?
<나혼자 산다>의 김광규같은 본투비 총각 같은 느낌이라던가, <꽃보다 할배>의 네 할배처럼, 예능 프로그램에 멤버의 구성과 색깔의 조합은 이미 프로그램의 성격을 어느 정도 결정해 버린다. '가출'이라는 컨셉을 들고 나오면, 멤버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가출'에 대한 공감을 불러 일으킬 사람들을 불러와야 하는 것이다. 
차라리 새롭지도 신선하지도 않은 멤버들로 1박2일 바다 버전을 찍느니, 최근에 심각한 정체 현상을 겪고 있는 원래의 1박2일 멤버들을 끌고 바다로 도전해 보는 게 더 새로운 돌파구가 되지 않았을까?

?


그렇다면 정작 1회에 불과하지만, 정규 편성을 바라며 배의 이름조차 '레귤러'라고 지은 <바라던 바다>의 내용은 어땠을까?
최근에 빈번하게 여러 예능의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선보이면서, 안타깝게도 역설적으로 주목받게 되는 것은, <꽃보다 할배>나, <무한도전>고 같은 성공한 프로그램을 이끄는 pd의 능력이다. 
물론 <꽃보다 할배>처럼 생각지도 못한 할배들의 배낭 여행을 소재로 삼았다던가, <진짜 사나이>처럼 군대를 예능으로 끌고 온다던가,<아빠, 어디가>처럼 아빠와 아이들의 여행이라는 기획 자체로 먹고 들어가는 예능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기존에 나와있는 그 무엇과 어딘가 비슷한 지점이 있는 예능일 수록 원하건 원하지 않건, 기존의 그 무엇과 비교되기 마련인 것이다. <가슴이 뛴다>의 피디가 프로그램이 시작하자 마자 다짜고짜 멤버들을 불 속으로 들이민 것은 그 만큼 단번에 사람들의 눈에 들어야 하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무리수인 것이다. 

그런데, 그에 비해, <바라던 바다>는 정규편성을 바란다면서 너무 '슬로우 스타터인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 이미 정규 편성을 받아놓은 사람과도 같달까?
무모하게 바다로의 가출을 감행한다면서 첫 회의 많은 시간을 이미 익숙한 캐릭터들의 가출 출사표와, 요트 배우기에 보냈다. 이른바 '관찰 예능'의 성격을 띤 것은 알겠지만, 바다로 나가 파도와 싸워도 볼까말까 하는 판에, 느긋하게 요트에 대한 설명과 매듭 묶기 등을 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멤버들과 함께 하는 스탭들은 재밌지만 보는 사람들은 지루한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배를 타고 겪는 본격적인 모험은 '다음 시간에'로 넘겨 버리고 만다. 
하다못해 허영만의 '집단 가출'팀의 ebs방송 조차도 한 달에 3일씩 1년간의 요트 가출 동안 길거리에서 자는 비박과, 비좁은 요트 안에서의 아비규환 등 날 것의 바다 생활을 다뤘는데, <바라던 바다>의 요트 여행은 예능도 아닌 것이, 다큐도 아닌 것이 보는 사람의 고개가 갸웃해진다. 

11일 오후 KBS2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바라던 바다가 첫 방송을 했다./KBS2 바라던 바다 방송 캡처
(사진; 스포츠 서울)

jtbc는 <썰전>이라는 정치 비평 토크쇼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더니, 이제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적과의 동침>을 통해 국회의원까지 끌어 들인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공중파인 kbs2가 만들어 내는 예능의 모양새는 어떤가? 제 아무리 아니다, 아니다 외쳐본들 그럴 수록 오히려 더 <꽃보다 할배>의 아류가 되어버린 <마마도>에, 1박2일의 바다버전 <바라던 바다> 등이다. 추석 특집으로 방영되는 아빠들의 아이들 돌보기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아빠 어디가>가 없었다면 기획되기 힘든 프로그램이었다. 
기획이 참신하지 않다면, 프로그램의 만듬새라도 창의적이어야 하는데, <바라던 바다>의 첫 회 파이럿 프로그램을 보면, 멤버들의 면면이 참신하지도, 내용이 신선하지도 박진감 넘치지도 않았다. 이러니, 그들의 불감청 고소원 '레귤러'에 썩소가 지어질 밖에. 


by meditator 2013. 9. 12.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