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원작으로도, 그리고 이미 동명의 만화를 이용해 모바일 무비라는 신선한 시도로 대중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던 <미생>이 tvn의 드라마가 되어 찾아왔다. 모바일 무비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 편에서 잠깐의 출연으로 이미 그 존재감을 드러냈던 임시완이, 다시 한번 주인공 장그래가 되어 등장한다. 장그래이미지

 

스물 여섯 살, 대학은 커녕 고졸 검정고시 출신에, 영어는 커녕, 겨우 컴퓨터 활용 능력 자격증 하나만 달랑 가진 장그래가 '낙하산'이 되어 종합 상사 원 인터내셜널에 취직이 된다.

'딱 이등병이네'

제대를 하고 나온 아들이 <미생> 첫 방송에서 회사에서 어리버리한 장그래를 보고 던진 말이다. 아니 회사를 다닌 이들이라면, <오늘부터 첫 출근>에서 첫 출근해 눈만 이리저리 굴리던 회사원 코스프레를 하던 연예인들처럼, 자신의 출근 첫 날을 떠올렸을 것이다.

스물 여섯에 대학도 나오지 않고, 종합 상사를 다니기에는 한참 부족한 능력으로 낙하산이 되어 던져진, 장그래를 보며, 사회 생활을 한 누군가는, 다 자신의, 혹은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의 첫 날을 떠올리며 씁쓸해 진다.

 

 

 

그렇게 어눌하고, 일 처리 하나 제대로 못해 걸치적거리던 장그래에게 울컥 감정 이입이  되기 시작하는 건, 그의 회상 부분부터이다.

일곱 살에 바둑에 입문, 한국 기원 연구생으로 청소년 시절을 보내던 장그래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바둑을 그만둔다. 그런 그가 바둑책 뭉치를 들고 기원을 나서며 자신에게 던지는 대사가 있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실패한 것이다'

이 말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기원 스승의 우려처럼 기원 연구생에서 정식 프로가 되기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알바를 가정 형편 때문에 놓지 못했던 자신의 처지, 그리고 그마저도 꿈꿀수 없게 만들었던 아버지의 죽음, 즉 자신의 형편과 조건 때문에, 입단에 실패했던 그 경험을, 그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퉁친다.

그리고 이 말에는 역설적으로 희망이 담겨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면' 성공할 것이다 라는.

그래서 오상식(이성민 분)의 '잘 하는게 뭐냐'는 질문에, 질과, 양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말로 장그래는 대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좌절을 ,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의지로 승화시킨, 장그래의 일성은, 우리 사회 속 젊은이들의 현실과 각오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리고 이런 젊은이들의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가 반영된 세상은 한병철의 <피로 사회> 속 성과 사회를 상징한다.

한병철은 그의 <피로 사회>에서 현대 사회, 즉 포스트 모던 사회를 성과 사회로 정의내린다. 즉, 그 이전 규율 사회가 '~ 해야 한다'라는 규율, 규제, 강제 등, 강요된 패러다임의 사회였다면, 오늘날의 사회는, 긍정성을 패러다임으로 내세운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과 사회에서, 성과의 주체가 되어, 자기 자신을 경영하며 '무한정 할수 있음'에 도전한다. 이런 긍정성의 이면에는, '생산의 최대화'라는 함정이 숨겨져 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부정'의 당위성보다, '능력'의 긍정성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동하는 주체가 되어, 성과를 위해, 자기 자신을 강제하는 '자유'를 가지게 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착취하게 된다.

첫 회 <미생>에서 장그래가 자신의 노력을 증명하기 위해 오징어 젓 통에 어머니가 새로 산 80만원이 넘는 새 양복을 입고 손을 휘젓듯이.

그렇게 과잉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늘 피로할 수 밖에 없다. 공항에 내려 바로 다시 외국 바이어와 상담을 하러 가야 하는 오상식 과장의 빨갛게 충혈된 눈 처럼.

 

오상식이미지

 

이렇게 첫 선을 보인, <미생>은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모습에의 공감으로 시작한다. 이런 드라마 미생에 대해 인터넷 백과 사전,위키백과는 2014년만 <tv손자병법>이라 정의내린다. <tv손자병법>은 1987년에 시작되어 인기를 끌었던 종합 상사 직장인들의 삶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서 직장인들의 삶을 병서 '손자 병법'에 비유했다. 즉, 당시 직장인들의 삶이란 게 무기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전장에 나가 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2014년판으로 돌아왔다는 <미생>은 직장인들의 삶을 바둑에 빗댄다. 바둑 역시 또 하나의 전쟁이다. 네모난 바둑 판에서, 흑돌과 백돌이 서로 누가 더 많은 진영을 차지하는 가를 두고 벌이는 소리없는 혈전이 바로 바둑이다. 역시나 또 하나의 전쟁이다. 하지만, 바둑이 인생을 반영한다고 하듯, 이기는 병서 '손자 병법'을 넘어, 인생의 바둑을 담은 <미생>에는 자기 자신을 착취할 자유를 가진 피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치유해줄 담론과 위로가 담겨있기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4. 10. 18. 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