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친구들>은 '자작곡 프로젝트'에 이어 '집밥 먹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그 취지에 맞춰 맛있는 집밥을 소개한다며연예계의 숨은 요리 고수를 찾아다닌다. 처음 김나운을 찾아가 연입밥에 복분자 장어 구이 들을 먹었고, 다음 시간에는 홍진경 집에서 김치국밥, 물냉면, 시래기 국을 먹을 예정이다. 
김나운 집에서 밥을 먹는 중, 일찌기 1박2일에서부터 초딩 입맛으로 지적받았던 은지원이 김치을 집어 먹는다. 그러더니, 주변 동료들에게, 
'와, 이거, 대박이다. 이거 먹어 봐, 진짜 맛있어.'
라며 호들갑을 떨고, 그의 권유에 따라 먹은 주변 mc들도 그의 말에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 장면 아주 평범한 장면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홍진경 집에 가서도 대뜸 김치 냉장고를 열어 맨 입에 김치부터 맛본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걸까?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김나운도, 홍진경도 케이블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김치를 팔고 있는 연예인이라는 것을. 그런 그들의 집에 가서 그 집의 김치를 맛있다며 먹어보이는 건, 고도의  PPL이다. 과연 케이블을 통해 음식을 파는 연예인의 집에 가서 한끼를 먹는 걸 집밥이라고 해야 할까? 이러다, 다음엔 홍진경과 김치 전쟁을 벌인 오지호에, 연예인 요리 상품화의 원조 김수미의 집까지 갈까? 

  

어거지 집밥 프로젝트이거나 말거나, 웃픈건 그래도 <맨발의 친구들>의 시청률이 그 이전의 '자작곡 프로젝트'에 비해 올랐다는 사실이다. <우리 동네 예체능>을 따라 다이빙을 하고, <무한도전 가요제>를 따라 자작곡 프로젝트를 하고, 이제 요즘 대세인 먹방에 이르러 나름 성과라면 성과를 올렸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건 안타깝게도 , <맨발의 친구들>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이른바 '먹방'이 요즘 가장 인기있는 예능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먹방'만 하면 웬만큼은 먹고 들어가는 추세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너도 나도, '먹방'을 하느라, 텔레비젼이 온통 음식 먹는 장면으로 차고 넘친다. 텔레비젼뿐만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개인 인터넷 방송에서도 오로지 '먹방'만 하는 채널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공교롭게도 그 누구도 구제할 수 없을 거 같았던 mbc예능의 침체기를 구제해 준 것이 바로 '먹방'이었다. 
<아빠, 어디가>에서 윤민수의 아들 윤후가 복스럽게 먹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고, 덕분에 윤민수 부자는 짜장 라면 광고의 주인공이 되었다. <진짜 사나이> 역시 먹방을 빼놓고는 그 인기를 논할 수 없다. 특히나, 군대 음식이라면 맛이 없을 거라는 선입관을 깨버리게, 군대로 간 연예인들은 고된 훈련 뒤에 나온 음식을 그걸 보는 시청자들의 입맛이 다셔질 정도로 맛나게 먹어 주었다. 심지어, 류수영은 이른바 '짬밥'이라 폄하되던 군대 음식을 마치 4성급 호텔 요리라도 되는 것처럼 음미하고 평가를 내림으로써, 군대판 미슐랭 가이드와 같은 존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사진; 아시아 투데이)


그렇게 죽어가던 예능도 살리고 보는 '먹방'때문일까? 요즘은 너도 나도 당연히 '먹방'은 당연히라는 추세다. <인간의 조건>은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라는 자막까지 넣어가며 30분 전에 멤버들과 함께 라면을 푸짐하게 먹은 김준현이 돈까스를 먹는 모습을 들이민다. 김준현은 얼마전 케이블을 통해 심각한 성인병 수치로 진단받아 절식과 다이어트가 절실할 위치인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먹고  또 먹는다. 보는 사람이 다 포만감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혼자 사는 삶의 모습을 지켜보는 <나 혼자 산다>도 결코 밀리지 않는다. 이미 아들 하정우의 먹방 장면이 인기를 끌고 있는 걸 복기시키며, 아버지 김용건의 먹방을 들이민다. 그뿐 아니다. <인간의 조건>에 김준현이 있다면, <나 혼자 산다>에는 데프콘이 있다.  데프콘도 못지 않다.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지만, 가끔은 먹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지경이다. 

'먹방'의 융성을 흔히들 '나 혼자'라는 현대인의 고독한 삶을 통해 설명하려 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작 먹방의 원조라고 하면, 상까지 받았던 배우 최불암이 함께 하는 <한국인의 밥상>이다. 최근 새삼스레 <한국인의 밥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한국인의 밥상>과 요즘 인기를 끄는 '먹방'의 차이는 무얼까? 인기를 끌고 있는 먹방치고 조금 먹는 걸 못보았다. 먹는 거랑 원수라도 진 듯이 와구와구 밀어 넣으며, 세상의 모든 음식을 삼킬 기세로 먹는다. 그리고 웬 음식들은 그렇게 지천으로 흥건하게 쌓아놓고 먹는 건지. <한국인의 밥상>에서 보여지는 소박하고 질박한 음식들이 낄 자리는 없다. 

인간의 쾌락을 단계별로 설명하는 '뇌과학'에서는 먹는 걸 통해 즐거움을 얻는 단계는, 성욕과 함께 쾌락의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다. 아이들, 군인, 그리고 '먹방', 요즘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표제어를 이어보면, 가장 원초적이란 공통점이 떠오른다. 
이 복잡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가장 단순한 즐거움을 추구한다?
아니, 삶에서 오죽 즐거움을 느낄 것이 없으면 그저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혹은 가장 극한의 상황 속에 놓인 군인들이,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취하는 먹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할까, 이런 것일까?


	강호동 설거지 먹방
(사진; 조선 닷컴)

땀을 뚝뚝 흘리며 입이 미어져라 가득 밀어넣는 음식을 보고 있노라면, 맛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슬며시 '욕구 불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한편에서는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극강의 다이어트를 하며,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한맺힌 게 있다는 듯이 먹을 걸 밀어넣는 이 극와 극의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 내야 하는 것인지. 산해진미를 먹고, 깃털로 목을 간질여 토해 내고 다시 먹었다던 로마인의 세기말적 식도락이 떠오른다. 

한때 예능이 몹시도 계몽적이던 때가 있었다. 
'책, 책, 책을 읽자'고 했고, 텔레비젼이 권장 도서 목록을 정해 주기도 했고, 그 여파로 도서관이 지어지기도 했다. 모범적인 시민이 되자며, 몰래 카메라로 정지선을 잘 지키는 사람을 찾아 냉장고를 덥썩 안겨주기도 했다. 
텔레비젼이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는 것도 불편하지만, 그래도 너도 나도 누가누가 잘 먹나를, 누가 누가 많이 먹나를 내기하는 요즘의 예능을 보고 있노라면, 책 한 줄의 향기를 논하던 시절이 그리워지긴 한다. 어떻게 세월이 점점 형이하학적이 되어가는지.....


by meditator 2013. 8. 26. 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