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차원의 중차대한 시책이라고만 생각되었던 인공위성을 한 개인이, 그것도 티셔츠를 팔고 모금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대출까지 해서 우주로 띄웠던 송호준은 물론 그 이전에도 화제를 몰고 다녔지만 <라디오 스타>에 나온 후 그의 행보가 대중적으로 보다 더 각인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에 고무된 <라디오 스타> 제작진은 송호준에 이어, 로봇을 만드는 한재권 박사를 게스트로 초빙하였다. 이로써, 그저 해프닝이었던 인공위성을 만드는 송호준은, 로봇을 만드는 한재권으로 이어지면서, 그저 연예인들만이 출연해왔던 <라디오 스타>에 신선한 모색으로 자리잡고 있다. 11월 20일 방송의 주제가 '중독'이었던 것처럼, 누가 개그맨이고, 가수이고가 아니라, 다종다양한 레고 조립 장난감과, 피규어를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거기서 시작해 이제는 로봇을 만들 게 된 사람이라는 동질성을 부각시켰다. 물론 방송 초반 의기양양하게 자신이 아끼는 리모컨으로 작동되는 호빵맨 피규어를 출연시켜 의기양양했던 김신영이, 한재권 박사가 데리고나온 로봇 군단의 '빠빠빠' 율동과, 재난구조 시범을 보면서 기가 죽기는 했지만, 정작 시청자 입장에선 그게 무안하다기 보다는, 저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로봇까지 만들게 되는구나라는 공감대를 충분히 느끼도록 했다. 
이미 <라디오 스타>를 비롯하여 다수의 집단 게스트 토크쇼가 범람하고, 게스트들간의 중복 출연이 불가피해지면서, 신선한 기획의 주제조차도 점점 그저 또 그 사람이 나와 돌려막기 식의 토크의 재연이 되는 경우가 많아, 이제는 한계에 봉착한 듯한 상황에서, 연예인과 일반인이, 자신이 좋아하는 그 무엇을 가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신선했다. 

(사진; tv리포트)

하지만, 그 신선한 모색을 담아내는 내용조차 신선한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번 송호준의 출연에서도 그가 인공위성을 쏘아올림으로써, '지식과 정보의 공개'라는 화두를 실천하고자 했던 송호준을 동대문 티셔츠 장사로 폄하하며 우스개로 만드는 과정은 웃자고 하는 방식이었음에도, 본말이 전도된 느낌이 들었었는데, 20일 방송분을 보면서, 그건 단지 송호준이 출연했던 회차가 아니라 최근 일련의 <라디오 스타>의 흐름의 경향성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엄밀하게 <라디오 스타>에서 '본말이 전도된다'라는 문제 제기는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늘 <라디오 스타>는 출연했던 게스트가 하고자 하려고 했던 말보다는, 그가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끄집어 내는 것이 장기인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작가진의 '국정원'이 울고갈 정보력은 출연자조차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 당황시키곤 해왔다.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틀에 박힌 언론 플레이를 넘어, 출연자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라디오 스타>가 과연 그럴까? 20일 방송에서 김신영과 케이윌이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조립식 장난감과 프라 모델을 들고 나왔을 때, mc들의 반응은 '웬 장난감이야'라는 식이었다. 심지어, 그것이 애써 어렵게 만든 것들이었는데도 함부로 덥석 덥석 만지다, 부숴뜨리고,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키덜트'라는 용어까지 등장했을 정도로 이제 어른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취미 생활이 된 것이 이젠 하등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라디오 스타>의 mc진은 한결같이 그들이 들고나온, 심지어 구하기 힘든 한정판을 그저 한낱 장난감이려니 한다. 
그리고 그런 흐름은 김구라에 의해 주도된다. 그런데 그 방식이 익숙하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세바퀴>에서 하던 식이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그들의 세대에게 낯선 그 무엇을 보았을 때, 우선 '뭐야?'하면서 반응하며,  호시탐탐 '별 거도 아닌게' 하다가, 비싸거나, 대단한 것이며, '어, 그랬어?'하며 꼬리를 내리는 식이 고스란히 재연된다. 심지어, 지난 번에 나온 송호준을 한재권과 비교하기를 무람없이 해버린다. 마치 옆집이 우리집보다 넓은 평수에 사니, 더 행복한 집이라는 식으로. 그리고 그렇게 주도적으로 흐름을 끌고가버리는 김구라의 방식에 김국진은 물론, 윤종신도, 심지어 젊은 규현조차 어깃장을 놓지 못한다. 기껏해야 김구라가 실수를 해야, 말꼬리를 잡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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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wow한국 경제)

<라디오 스타>의 정신은 'b급 정신'이었다. 좀 모자르고, 찌질해 보여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라디오 스타>의 기획을 보면, 20일의 '중독'특집처럼 여전히 <라디오 스타>만의 b급 정신이 살아있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기획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라디오 스타>의 정신은 '속물 정신'의 한 색깔로만 칠해지고 있는 듯하다. 가진 것이 부족한 b급들이,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지고, 나은 그 무엇 앞에 한없이 약해지고 비겁해 지는 것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반응일 뿐이었다. 거기에 최고의 mc가 되기 전에 김구라가 일관되게 속물주의노선을 추구했다면, 거기에 어깃장을 놓는 누군가가 있었었다. 세상이 '자본'과 '주류'에 함락되어도, 여전히 자기 멋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게 <라디오 스타>였었다. 그러기에, 송호준의 인공위성 해프닝도, 다르파 로봇 챌린지에 출전하는 한재권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김구라는 mbc연예 대상을 노릴 만큼 mc계의 대세가 되었다. 윤종신도 이제는 자신의 소속 가수를 출연시키는 제작사 사장이다. 규현 역시 아이돌계의 대세다. 대세가 되어버린 그들의 눈에, 찌질한 b급들은 그저 찌질함으로만 규정된다. 그 예전에 함께 모자르고, 부족하던 시절, 하지만 각자 자신만의 자부심으로 가득찼던 그 시절의 느낌이 아니다. 대세가 되기 전의 김구라의 속물주의는 애잔하고 보호해 주고 싶었지만, 이제 비싼 시계를 찰 수 있는 김구라의 속물주의는 불편하다. 윤종신이 공감해주는 다양함에 어쩐지 힘이 빠진 듯하다. 예전에는 게스트들을 물어뜯고 흠집내도, 그것이 결국은 그들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그 무엇이 되곤 했었는데, 최근의 <라디오 스타>는 비범한 것조차 평범하고 속물적으로 만든다. 

아마도 예전의 (이제는 그 예전이 언제인가조차 까마득) <라디오 스타>였다면, 김신영과 케이윌의 취미들을 그저 장난감으로만 치부해 버리지는 않았을 듯하다. 조금더 그들이 '홀릭'한 그것들에 함께 심취할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 등산 좀 가본 김구라가 등산 용품을 들고 나온 이봉원의 취미생활을 대하는 자세와, 김신영과 케이윌의 취미 생활을 대하는 자세에서 그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로봇이라는 존재감만으로 출연자를 제압시킨 한재권 박사의 경우를 차치하고, 애지중지한 자신의 소장품을 어렵게 들고나온 김신영과 케이윌이 20일의 방영분을 보며 무엇을 느꼈을까? 


by meditator 2013. 11. 21. 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