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광화문 네 거리를 가보면 딴 세상에 온 거 같다. 불야성의 도시에, 술집마다 사람들로 넘쳐나고, 늦은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거리는 이상한 열기에 휘감겨 있다. 토, 일요일이 휴무가 된 시점부터 사람들은 주말을 앞둔 금요일을 '불타는 금요일'이라 지칭하며 한 주간의 피로를 날릴 '껀수'를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하지만 오히려 늦은 밤 찾아든 두 예능, <땡큐>와 <나 혼자 산다>는 그 열기에 휩싸이기 보다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남자의 자격>의 대체재? <나 혼자 산다>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었던 <남자가 혼자 살 때>가 좋은 반응을 얻자 정규로 편성되어 돌아왔다. 물론 남자가 혼자 사는 모습을 리얼리티로 담아낸 그 착상 자체가 기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돌파구를 연 신선한 기획이지만, 그런 설정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러기 아빠, 독신자 가정 등 1인 가구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격세지감이다.

노홍철의 나레이션을 얹은 김태원, 이성재, 서인국, 데프콘, 김광규의 일상은 '불타는 금요일'이라는 세간의 풍습과는 거기가 멀다. 항상 켜져있는 텔레비젼, 심지어 곰인형과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 기껏해야 단체 채팅으로(그조차도 누군가는 따라가기에 버벅거리는) 금요일 밤의 외로움을 달래는 모습은 '혼자'라는 모습을 역설적으로 각인시킨다.

하지만 '혼자'가 곧 '고독'은 아니다. 누군가는 잠자리에 든 다른 사람에게 끝까지 문자를보내며 '자냐?'며 붙들거나, 늦은 밤 매니저에게 생뚱맞게 우동 한 그릇을 먹자며 전화를 하지만, 대부분은 '혼자'의 삶에 익숙하게 스며들어 간다. 심지어 일요일에 급격하게 이루어진 '번개' 모임이 번거러워 버둥거릴 정도로.

<나 혼자 산다>는 말 그대로 혼자 사는 남자들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단체 채팅이나, 번개에 '~님'이라는 호칭까지, 이 시대의 사람들이 관계을 맺어가는 방식까지 철저히 답습해 낸다. 그래서 어느 프로그램보다도 '동시대적'이다. 마치 시대를 거스르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아저씨 예능 <남자의 자격>이 2013년 버전으로 새롭게 탄생된 듯하다.

하지만 이미 첫 회인데도, <나 혼자 산다>는 묘한 익숙함 혹은 진부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노홍철 특유의 설레발이나 그의 사는 스타일은 이미 <무한도전>을 통해 충분히 전달되었고, 국민할매라는 호칭까지 안겨준 <남자의 자격>에서의 김태원의 홀로 사는 모습 역시 익숙하다 못해 진부할 지경이니까. 노홍철이나 김태원의 합류는 프로그램을 친숙하게는 만들면서 동시에 새롭지 않게 보이게도 하고 있다.

또 하나, 최근 프로그램들이 '힐링' 등 분명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론칭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나 혼자 산다>는 혼자 사는 모습 이상의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도 앞으로 이 프로그램이 지속할 수 있는가의 관건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번개에서 토로된 다양한 혼자 사는 남자들의 고민은 이 프로그램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가능성만으로 <나 혼자 산다>의 발전을 예상해 보기는 쉽지 않다.

 

 

 

여행을 떠난 <힐링 캠프>? <땡큐>

금요일 밤 늦은 시간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듯 여유롭게 한 시간여를 보내는 듯한 <땡큐>는 동시간대 <나 혼자 산다>라는 경쟁 프로가 등장함으로써, 또한 이제 서너 번의 출연진을 거듭해 가면서 예능으로서의 자신의 성격과 특징을 분명히 해야 할 과제를 떠앉게 되었다.

<땡큐>의 가장 큰 장점은 시너지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서로 다른 연배의 사람들이, 여행지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의 관계가 집을 떠나온 그 분위기로 인해 응집하고 그를 통해 그들 한 사람이 가지는 속내 이상의 승화된 사연들이 시간을 흐르며 더 진하게 풀어내어지는는 마력, 그것이 바로 <땡큐>이다.

여행을 오면서 어른들과 어떻게 어울리나 걱정을 했던 지드래곤이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아요~를 외칠 수 있게 되었듯이 주제를 가지고 흐르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서로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고민이었음을 알아가게 되는시간은 끄덕임과 심지어 눈시울을 적시는 공감에 이르게 만드는 시간을 마련한다.

하지만, <힐링 캠프>와 마찬가지로 <땡큐> 역시 시청자들은 함께 여행을 떠난 옆 자리의 누군가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줄 수 밖에 없듯이, 그리고 나중에 집에 돌아와 보니 그 이야기들이 여행지의 들뜬 분위기에 한껏 업된 자기 감상이었음을 깨닫고 씁쓸해 지듯이,<땡큐> 역시 출연진의 자기 속내에 집중을 할 수 밖에 없는데서 오는 아쉬움이 있다. 지드래곤이란 뮤지션의 고민은 진솔했지만, 그가 우리 사회에 끼친 파장의 여운이 아직 다 가셔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토로가 때론 해명이나 변명 혹은 포장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더구나, 그 다음을 이어가는 오상진 아나운서와 은지원의 출연은 더더욱 <땡큐>라는 프로그램의 위험성을 배가시킨다. 인터뷰이의 자기 해석과 객관적 진실 사이의 줄타기, 이것이 이제 초반을 넘어서고 있는 <땡큐>에게 주어진 과제다.

by meditator 2013. 3. 23. 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