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명의 게스트들과 20회의 여행을 떠났었습니다 '

<땡큐> 마지막 회, 갑작스럽게 폐지 통보를 받은 것인지, 그간 <땡큐>를 이끌어오던 mc 차인표의 마지막 인사 한 마디를 육성으로 들을 수 없었다. 대신 제작진은 처음 <땡큐>를 시작하던날, 첫 게스트 박찬호를 만나기 위해 바삐 걸어오던 그의 모습과  <땡큐>의 정체성을 묻는 박찬호의 질문에,  그 자신도 다큐인지, 예능인지 헷갈려 하는 초짜 mc 차인표의 진지한 어눌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까지, 피디 자신도 어쩌면 여전히 다큐와 예능의 경계선에 서있음을 고백한 마지막까지 어정쩡했던 <땡큐>가 사라졌다. 

8년을 한결같이 달려온 <놀러와>가 자막 하나로 사라진 이래, 더 이상 어떤 프로그램의 생존 여부나, 아름다운 마무리 따위가 회자되지 않는다. 그 보다 더 오랜 시간을 우리 아이들의 아침 시간을 달래주던 <뽀뽀뽀>가 사라져도. 이제는 모든 것이 그저, 그러려니, '효용' 가치가 사라지면 무참히 버려지려니 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6% 의 시청률을 턱걸이하는 <땡큐>의 존속을 바라는 건 언감생심일 수도 있겠다. 

2013년 3월에 시작해서 이제 8월, 반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20회의 여행을 다니며, 99명의 게스트를 모신 <땡큐>는 어쩌면 애초에 힐링을 주는 게스트의 섭외가 그렇게 지속적으로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에 비하면 오래한 것일 지도 모른다. 


첫 출연자가 당대 최고의 힐링 멘토 혜민 스님과 이제 막 은퇴한 야구선수 박찬호 였던 것에 비해 마지막회의 출연자가 영화 <숨바꼭질>을 홍보하기 위해 나온 손현주, 문정희에 연기자로서의 새 출발을 알리러 나온 보아인 것을 보면, 힐링 다큐에 방점을 찍다가, 결국은 집단 예능 토크쇼가 되어간 <땡큐>의 한계가 그대로 보여진 것일 수도 있다. 

첫 회 <땡큐>는 스님에게조차 첫사랑의 아픔을 물어볼 정도로, 그 사람의 직위나 존재에 압도당하지 않은 채 조심스레 사람과 사람으로 인연을 만들어 가던, 그리고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는, 출연자들이 함께 한강 다리에, 혹시나 좌절하여 그곳을 찾을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담은 글귀를 남기었던 실천적 멘토링을 했었다.  
이제 마지막 회에 이르러서는 딱 보기에도 손현주를 비롯한 그 자리에 모인 유해진, 무술 감독 박정률, 야구 해설가 이병훈 등에 비해 삶의 연륜이 부족해 보이는 것이 분명한 오죽하면 보아 자신이 민망했던 듯 엔딩에서 많이 배우고 간다라는 감상을 말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아시아의 별'로 치켜세우며 너도 나도 보아라면 무조건 좋다라는 식의 오글거릴 정도의 예능 특유의 호들갑에서 벗어나지 못한 진행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해피 투게더>랑 무에 그리 다를 게 있을까 싶게. 
물론 짧은 시간에 그렇게 변해 온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다큐인지, 예능인지 모를 정체성조차 불분명한 <땡큐>가 '힐링'이 대세인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가서 좋은 이야기를 함께 나누자는 소박한 취지는, 상대 방송국 프로그램의 상대적으로 높은 시청률로 인해, 2회에 걸쳐 느그하게 누렸던 여행의 호흡을 바트게 1회 안에 꾸려 넣을 수 밖에 없게 만들었을 것이고, 생각 외로 존경받을 만한 사회적 멘토들이 많지 않은, 그리고 그들의 tv출연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대부분 출연자들이 '홍보'를 목적으로 한 연예인들 위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주 특별했던 <땡큐>는 어느 틈에, 그저 그런 연예인들의 또 다른 집단 토크쇼가 되어버려가는 게 불가피하다, 이정도면 많이 버텼다 자평했을 수도 있겠다.

(사진; tv리포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땡큐>의 종영은 아쉽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밤을 새며 자신의 경계를 풀고 나누던 이야기의 추억은, 본래의 색깔이 바래졌어도 그 미덕은 여전히 유효하다. 제 아무리, 출연자 누군가를 오글거릴 정도로 치켜세워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행간에서 찾아지는 진심 또한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유해진과 류승룡이 한 달간 비데 공장에서 아르바이트 했던 시간을 즐겼던 거지 라고 말할 수 있는 손현주의 느긋한 품성을 <땡큐>가 아니라면 찾아내기 힘들 것이다. 
더구나 많이 평범해 졌지만, 여전히 '힐링'의 여지가 있는 프로그램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 꿰어차는 것이 실험용 파일럿 프로그램들인 한에서, 그것도 타 방송의 아류 프로그램들인 한에서, 그냥, <땡큐>나 보게 놔둬요~!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공공 부문과 사적 기업의 차이는 흔히, 가치와 효용의 차이로 나뉘어진다. 공공 부문은 효율적으로 일을 해야 하지만, 결코 공공성을 놓치지 말아야 하며, 사적 기업은 보다 이익을 중심으로 효율성을 우위에 놓고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의 공적 영역은 '효율'과 '생존'이라는 명목 하에, 효용 가치가 최우선의 과제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방송은, 이 둘 중 어디에 방점을 찍어야 할까? 공중파는 말 그대로 공중의 기기이면서도, 그 활용 논리는 지극히 사적이다.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전가보도처럼 씌여진다. 금요일 밤의 늦은 시간일랑, 쫌 놔두면 안될까. 그 시간까지, 굳이, 케이블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따라잡을  또 다른 서바이벌에 시청자들을 몰아세우는게 공중파의 바른 자세일까? 공중파는 꼭 흥행 위주의 케이블보다 높은 시청률을 유지해야 할까? 

물론 그저 그런 연예인 토크쇼로 전락해 버린 <땡큐>의 책임도 크다. 지리산 산골만 뒤져도 이원규에, 박남준에, 정말 세속에 찌든 사람들을 '힐링' 시켜줄 무소요의 삶을 실천하는 '멘토'들이 널렸다. 그런 분들을 모신 진짜 힐링 <땡큐>의 존속을 기대하는 건, 시청률 경쟁만이 난무하는 공중파에선 이젠 무리일까. 시청률 상관없이, 그저 이런 프로 하나쯤은 좀 놔두면 안될까. 시효가 지난 맥빠진 질문만 던져본다. 


by meditator 2013. 8. 10. 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