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다고 무시하고, 꿈이 있으면 허황하다고 빈정대고 날 보고 어쩌란 말이예요!'

<웃기는 여자> 극중 개그우먼을 꿈꾸는 고은희(문지인 분)가 자신의 개명을 받아주지 않는 판사 오정우(김지훈 분)를 향해 울부짖는다. 
그런데 왜 하필 개명일까? 오정우의 말대로 미모가 재능을 가려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재능이 미모를 가리는 것도 아닌, 데뷔 6년차 아직도 무대 '따까리'난 하는 개그우먼 고정희는, 자신의 평범함의 이유를 이름에서 찾는다. 그래서 고은희라는 아빠가 지어주신 평범한 이름대신 그 누가 봐도 웃겨서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는 '고릴라'로 개명을 신청한다. 



이름을 바꿔 웃기려는 여자와, 머리를 심어 취직하려는 남자
<웃기는 여자>는 판사 오정우와 개그우먼 고은희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물이다. (4월 3일 방영) 하지만 그 저변에 흐르는 건 데뷔 6년차 아직도 무대에 서지 못하는, 하지만 그럼에도 개그우먼이 되고 싶은 꿈을 버리지 못하는 고은희의 유예된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직도 무대에 서지 못한 채 무대 뒷바라지나 하는 그녀를 보고 엄마는 기술을 배우라고 한다. 같은 개그맨 선배는 6년이나 된 똥차 주제에 후배 앞길이나 막는다며 막말을 서슴치 않는다. 개명 신청 과정에서 만난 판사는, 자신의 공정한 '판단 능력'을 내세우며, 개그우먼이 되기엔 재능이 없어보인다고 냉정하게 잘라 말한다. 
하지만 고은희는 개그가 좋다. 자신의 좁은 고시원 방에 붙인 거울에 챨리 채플린의 반쪽 자리 모자를 붙이고, 콧수염을 그려 넣고 늘 거기에 자신의 얼굴을 맞춰 보며, 10년 무명 후에 성공한 찰리 채플린을 롤모델로 삼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꿈은 현실에서 무능하다. 뚱뚱하고 못생긴 동료들은 이미 뜨거나, 드디어 무대에 설 기회를 얻지만, 생긴 것도 평범한 그녀에게 그런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가 택한 방식은, 이름이라도 웃기게, 얼굴이라도 웃기게 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머리 심는날>의 주인공 변임범(최태환 분) 역시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취업 준비생이다.(3월 27일 방영) 매번 시험을 볼 때마다 떨어지는 그는 그 이유를 하루가 다르게 빠지는 머리에서 찾는다. 여친을 만날 때에도 모자를 푹 눌러쓰는 변인범은 그래서, 머리만 풍성하다면 자신의 취직 운도 풀릴거라 여기며, 머리를 심으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고시원 비도 밀린 채 여친네 고깃집에서 숯불 피우는 알바를 전전하는 그에겐 머리 심을 돈이 없다. 
변인범의 여친 역시 마찬가지다. 스튜어디스 시험을 볼 때마다 자꾸 떨어지는 그녀는 그 이유를 얼굴에서 찾는다. 그래서 이미 손을 댄 얼굴에 다시 한번 칼을 대려고 한다.  하지만 역시 만만치 않은 수술비, 돈이 없다. 
여친을 만날 때조차 모자를 벗지 못하는 변인범이 마땅치 않은 여친 봉화원(하은설 분)은 드디
어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별을 통보한다. 금속 알레르기가 있는 손에 자국을 남기는 변인범이 준 은반지를 뽑아 가차없이 변인범에게 전달한다. 변인범은 이제 와 이별을 통보하는 여친이 야속하기만 하지만, 지금 그에게 당장 급한 건, 아침에 발견한 전단지에 나온 머리 이식 세일이다. 그렇게 서운한 듯 하면서도 각자의 이해관계가 앞서 일사천리로 이별을 해결하는 오래된 언인들의 머리 위로 돈이 날린다. 하늘에서 오만원 권 돈더미가 뿌려진 것이다. 잠시 전 이별로 인해 아웅다웅한 게 언젠가 싶게 변인범과 봉화원은 있는 힘껏 돈을 챙겨 도주, 모텔에 든다. 하지만 연인이었던 기억이 무색하게, 모텔에서도 그들을 사로잡는 건, 머리를 심을 수 있게 해주고, 다시 한번 성형 수술을 가능케 해주는 돈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움켜 쥔 돈은 각자의 삶을 업그레이드 해주기엔 부족하다. 그 부족한 돈을, 그리고 그 부족한 돈마저 날리게 생기자, 변인범은 예상치 못하게 목격한 봉화원 아버지의 불륜 현장을 빌미로 삼아 협박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유예된 꿈을 향한 왜곡된 욕망을 풀어가는 서로 다른 방식
<웃기는 여자>의 고은희는 스물 여덟이다. 그리고 <머리 심는 날>의 변인범은 27살이다. 그들의 거주처는 모두 고시원이다. 창문도 없는 좁은 방, 그리고 고시원비 조차 밀려 쫓겨나게 생긴 그 좁은 공간이 그들의 현실을 대변한다. 그들의 벌이는 변변치 않다. 변인범은 여친 봉화원네 집에서 숯불 피우는 알바를 하지만 현실은 머리를 심기는 커녕, 고시원 비 조차 빠듯하다. 동료 개그우먼 무대 뒷바라지를 하다, 그 마저도 포기한 채, 엄마가 말했던 기술을 배우고자 알바를 하는 고은희가 선택한 일은 그녀가 원하던 '고릴라' 탈을 뒤집어 쓴채 아이들에게 고릴라에 대해 알려주는 동물원 알바이다. 

이십대 후반 원하는 일자리를 얻지 못한 채 비정규직 알바를 전전하는 고은희와 변인범, 88만원 세대의 전형이다. 취직을 하고 싶고, 개그우먼이 되고 싶은 그들이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변인범은 매번 취직 시험에 떨어지고, 고은희는 개그 심사에서 매번 고배를 마신다. 현실의 벽을 기어오르다 매번 미끌어 지고 마는 그들, 세상이 받아들여 주지 않는 자신들의 꿈, 그리고 노력에, 그들의 욕망은 왜곡되어져 간다. '노력을 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그들, '솔까 대한민국이 우리에게 해준 것이 뭐 있어!''라면 냉정한 현실 인식을 하는 그들이 택한 선택은 결국 '신의 한수' '머리 이식'과 '개명'이다. 머리 이식과 개명을 둘러싼 <웃기는 여자>와 <머리 심는 날>의 해프닝이 웃픈 것은, 강고한 현실에서 정당한 노력을 통해 성취를 할 수 없는 88만원 세대의 왜곡된 욕망을 '해학'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객관적 판단력'을 지녔다는 판사의 판단처럼, 그리고 길을 막고 물어보았던 사람들의 반응에서 처럼 멀쩡한 이름을 고릴라로 바꾼다던가, 머리를 심는다면 취직이 되겠다는 엉뚱한 시도는 그들이 유예된 욕망을 해결할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보기에도, 고릴라로 바꾼다고 해서, 머리를 심는다고 해서 극중 주인공들의 삶이 달라질 것처럼 보이지는 않아 보이니까. 하지만, 그 왜곡된 욕망을 위해 <웃기는 여자> 주인공 고은희는 개명을 해달라며 1인 시위를 하고, <머리 심는 날>의 변인범은 협박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에서 진짜 개그맨 시험장에 얼굴을 보여준 순간 '합격'을 하게 되었다는 후일담과, 실제 취직을 하기 위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성형 수술조차 마다하지 않는 취업 전쟁의 현장담들이, 드라마 속 이야기들을 그저 해프닝처럼만 여기지 않도록 만든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들을 이해하게 만든다. 

하지만 왜곡된 욕망을 다룬 <웃기는 여자>와 <머리 심는 날>이 그 욕망의 발현을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다.
판사와 개그 우먼 지망생, 계급이 다른 두 남녀의 해피 엔딩을 위하여 <웃기는 여자>의 고은희는 다시 한번 개그 우먼이 되어 보기로 한다. 그런 그녀에게 판사인 오정우는 현실의 법적 판단으로는 개명을 허락할 수 없지만, 대신 아름다운 한자 뜻을 가진 예명 '고릴라'를 선사하는 절충주의를 택한다. 그와 함께 계급이 다르지만 인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두 사람의 사랑도 결실을 맺는다. 

물론 오래된 연인 변인범과 봉화원도 다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상황은 전혀 다르다. 기호가 빼돌린 아버지의 도박 자금을 가지고 머리를 심은 변인범, 드디어 당당하게 취직 시험장에 들어선다. 하지만 정작 그를 '멘붕'에 빠뜨린 것은 시험관들의 질문, 면접을 망치고 나온 그는 그제서야 현실에 발을 딛는다. 봉화원 역시 마찬가지다. 역시나 원하던 수술을 하고 당당하게 면접에 응한 그녀, 정작 그녀를 좌절에 빠뜨린 것은,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키가 작다'는 면접관들의 한 마디이다. 게다가 남의 돈으로 심은 머리 조차도 구제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돈을 주어 버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기호(장성범 분)를 구하는 바람에 애써 이식한 머리를 다시 잃게 만든고서야 변인범은 부질없는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난다. 

<웃기는 여자>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왜곡된 욕망조차, 꿈을 향한 소중한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끌어안는 반면에, 정작 현실은 당신들의 왜곡된 욕망과 다르다며 원칙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환타지로서 판사와의 사랑도, 꿈도 안고 다시 일어서는 <웃기는 여자>나, 머리를 심었지만 역시나 면접에서 실패하고, 머리를 잃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머리 심는 날>의 처절한 션실이나, 그 어느 것도 88만원 세대를 향한 정답일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꿈이 없으면 없다고 무시되며, 꿈이 있으면 허황되다며 빈정거림을 당하는' 이래도 저래고 풀리기 힘든 현실에서 쉬이 헤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이렇게 단막극 한편을 통해 그들의 자화상을 먹먹하게 공감하는 시간을 가질 뿐이다.  


by meditator 2015. 4. 4. 1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