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째 스무살>은 <내딸 서영이>로 kbs2 주말 드라마의 불패 아니 성공 신화를 만든 소현경 작품이다. 하지만 <내딸 서영이>를 그저 시청률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의 신화로만 설명해서는 부족하다. 그보다는 오히려 불륜과 위악이 판치는 주말 드라마 속에서 이른바 '착한 드라마'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는 면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내딸 서영이> 이후 mbc에서 방영되었던 <투윅스>는 <내딸 서영이>의 히트 작가란 이름이 무색하게 고전하였고, 결국 소현경 작가의 차기작 <두번 째 스무살>은  tvn이란 케이블 장르로 귀결되었다. 




소현경 작가의 특기, 유예된 삶의 이야기
10월 17일 16부작으로 종영한 <두번 째 스무살>, 이 작품은 미처 고등학교조차 마치지 못한 채 한 아이의 엄마로,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란 이름으로만 살아온 하노라(최지우 분)가 본의 아니게(?) 대학에 들어가게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다. 극중 하노라는 서른 여덟의 나이에 벌써 대학 1년생의 아들을 준 아줌마이지만, 남편의 이혼 요구에 제대로 불만조차 표출하지 못하는 '자아' 상실형' 인간으로 등장한다. 

나이는 먹을 대로 먹었지만 제대로 된 자신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 어른들의 이야기, 바로 이것이 소현경 작가가 꾸준히 풀어내오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의 공통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발군의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을 꼽으라면 아마도 2011년 5월 종영한 <49일>이라 할 수 있다. 방송 초반 모 가수의 팬픽과 유사하다는 표절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마지막 회에 이르러 어이없는 자매 설정에도 불구하고, <49일>은 드라마 사상 드물게 죽은 자가 주인공이 되어, 49일의 유예된 삶의 기간 동안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왜곡된 삶을 바로 잡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작품으로 인정받은 작품이다. 

그렇게 자신의 죽음 뒤에 비로소 49일의 유예를 얻어 자신의 뒤틀린 삶에 개입하는 <49일>의 여주인공 신지현처럼, <두번 째 스무살>의 하노라도 남편과의 이혼을 막기 위해 무작정 뛰어든 대학 생활 속에서 비로소 헝크러진 자신의 삶을 목격하게 된다. 방송 초반 하노라는 <49일>의 신지현처럼 불치병 해프닝을 통해 자신의 삶에 그다지 긴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긴박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불치병이 말 그대로 해프닝이 되어버렸지만, 그것을 계기로 하노라는 그저 누군가의 아내,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인 채 자신이 묻어두었던 자신의 존재를 조금씩 꺼내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자신은 서른 여덟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열여덟 남편을 만났던, 그리고 무용에 뜻을 두었던 그 시절에 정체되어 버린 아이 어른이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우연히 만난 그 시절의 친구, 하지만 하노라를 첫사랑으로, 그리고 자기 인생의 은인으로 생각했던 차현석(이상윤 분)의 도움으로 하노라는 비로소 열 여덟의 그 시간으로 부터 발을 내딛는다. 



어른으로 살고, 사랑하는 법에 대하여 
<두번 째 스무살>은 흔히 캠퍼스물처럼 학생 하노라와 교수 차현석은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 서로 만나고 갈등하고 사랑을 가꾸어 나간다. 또한 여타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처럼 대학으로 간 하노라는 '회춘'의 모든 통과 의례를 수행한다. 수강 신청도 하고, 또래 대학생들과도 어울리고, 알바도 하고. 

하지만 소현경의 <두번째 스무살>은 그저 다시 대학으로 간 낭만을 만끽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저 그 시절 첫사랑을 다시 만나 사랑을 이루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남편의 이혼을 막기 위해 간 대학을 결국 스스로 나오듯이, 남편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대학을 선택했던 그녀가 남편의 내연녀에게 당당하게 남편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로,  짧은 대학 생활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해 나간다. 거기에 15회 이혼을 하고 홀로서기를 하는 차현석에게 결별을 선언할 만큼, 하노라는 그 짧은 시간을 통해 비록 차현석의 도움을 얻었지만,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만을 하지 않는 자신의 삶에 용기를 얻어 나간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도 좋지만, 나도 소중한 진짜 어른 하노라가 된다. 

또한 <내딸 서영이>를 통해 불통인 어른 세대와 젊은 세대의 화해를 고민했던 소현경 작가는 <두번 째 스무살>에서도 그 문제 의식을 이어간다. 하노라가 간 대학은 그래서 그저 그녀가 생각했던 막연한 낭만과 꿈이 충만한 대학이 아니라, 죽도록 알바를 해도 등록금조차 빠듯한, 그래서 주판알을 튕겨보니 대학을 다니는게 별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서게 만들 정도로, 삼포 세대의 현실이 담긴 대학이다. 그리고 거기서 하노라는 몸만 어른인 채 아직은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서, 현실의 파고에 휩쓸린 청춘들과 조우한다. 의기충만하여 교수의 성추행에 반발해 보지만, 그 조차도 현실의 직업 구애에 고개를 숙여버린 선배, 동기들과의 갈등으로 이끌어 가는 에피소드들은, '어른'도 아이도 만만치 않은 2015년의 현실을 깊게 고심한다. 

그러나 용감하게도 작가는 삼포 세대의 현실에 그저 함께 고개를 수그리지 않는다. 그래서 막연하게 취직을 해야 해서 경영학과에 갔던 선배는 마지막에 공연 기획을 꿈꾸고, 학점의 노예였던 아들은 외국에 나가 일을 하며 자신을 단련시킨다. 그저 대학이란 공간에서 자신을 어른으로 성장시킨 것은 늦깍이 대학생 아줌마 하노라만이 아니라, <두번 째 스무살> 속 청춘들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던져져 어른들의 프레임 속에서 자신을 규정하던 아이들은 조금씩 그 어른들의 프레임 밖으로 튕겨져 나와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함께 어른이 되어가며, 젊은이들과 덜 젊은이들은 서로 소통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차현석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도 중요하다는 하노라뿐만이 아니라, 오직 하노라 바라기였던 차현석은 첫사랑 하노라를 넘어 현실의 하노라를 사랑하게 된다. 자기애적 인격 장애의 안하무인 교수 남편도 조금은 성장한다. 입신양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김우철(최원영 분)이 유배대로 유배를 가고, 다시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논문을 쓰고, 사랑을 얻기 위해 비열함을 마다않던 김이진(박효주 분)이 자신의 부도덕함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교수직을 사퇴하는 결론은 철부지들의 또 다른 어른이 되는 법이다. 

덕분에 많은 갈등에도 불구하고 극중 누구도 끝까지 나쁜 놈이 되지 않는 <두번 째 스무살>의 결론은 그래서 오히려 감동적이다. 불륜이 복수가 아니라, 나의 성장의 터전이 되는 그래서 당당하게 남편을 던져버리는 당당한 여성으로서의 성장은, 이것이야 말로 진짜 어른다운 복수가 아닐까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길지 않은 16부작의 시간 동안 모두가 한뼘씩 자라,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 그래서 보는 시청자마저 '어른스러워지게' 만드는 드라마, 역시나 소현경의 또 한편의 착한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 착한 드라마를 어른스럽게 만든 것에는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다. <겨울 연가> 이후 오래도록 고전하는 최지우는 서른 여덟 사랑스러운 하노라를 그녀의 새 이름으로 얻었다. 이상윤은 우재씨에 이어 또 한번 소현경의 남자임을 증명했다. 비열한 남편임에도 그의 연기로 인해 설득되고 싶은 최원영, 밉지 않는 내연녀의 박효주 역시 <두번째 스무살>의 공신이다. 

by meditator 2015. 10. 18. 1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