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뛰어넘는 극한적 상황을 통해 '치유'의 길을 여는 또 한 편의 영화가 찾아왔다. 제이크 질렌할의 <데몰리션>이다. 아니, 장 자크 발레의 <데몰리션>이라야 이해가 빠르겠다. 장 자크 발레 감독은 2014년 <와일드>를 통해 2014 할리우드 필름 어워드 주목할 만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아니 수상 이전에, 그의 영화는 매튜 매커너히에게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안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4)>을 통해 그의 이름을 각인시킨 바 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와일드>, 그리고 이제 <데몰리션>까지, 장 자크 발레 감독은 극한의 지난한 자기와의 싸움을 벌이는 주인공들의 처절한 '전투'를 올곧이 내세운다. 그런가 하면, 제이크 질렌할은 <사우스포(2015)>에 이어 또 다시 '상실'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시작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권태기에 빠진 듯한 부부의 출근 길, 아내는 남편에게 연신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기 위한 어떤 질문을 던지고, 남편은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이제 아내는 그런 남편의 반문조차, 자신에 대한 무관심을 포장하려는 면피라는 걸 간파하고, 하지만 아내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매일 열어보는 냉장고의 이상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부부의 일상에 무뎌져 있다. 하지만 그 무디고 날선 일상은 순식간에 '아내의 죽음'으로 파괴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표현, 파괴
하지만, 파괴된 부부의 삶에도 불구하고 데이비스는 이상하리 만치 일상을 지속해 나간다. 아내가 죽은 병원에서 자판기에서 나오지 않는 쵸코바를 태연히 뽑으려 한다든가, 회사에 출근을 한다던가,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이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음은 이후 데이비스의 이상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는 한국 사회에선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고 후의 후유증이다.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자신의 품에서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고, 그저 자신은 구두에 피가 묻을 정도로 멀쩡한 데이비스는 그 스트레스 반응으로 '무감각'을 보인다.  하지만 외적으로 드러난 무감각과 달리, 그의 의식 속에서 그는 아직도 일상을 늘 '아내와 함께 한다'. 그가 샤워를 할 때부터 그 어떤 순간에도 늘 그의 시선 한 켠에 아내가 여전히 있다. 

그의 이상 행동의 시작은 걸린 초쿄바 자판기 회사를 향한 그의 장문의 편지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저 나오지 않는 초쿄바에 대해 여느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자판기를 향해 분통을 터트리는 대신, 그는 차분하게 아내의 추도식이 열리는 방 한 쪽에서 초쿄바를 뽑게 되기 까지 자신의 여정을 적기 시작한다. 그리고 죽기 전 아내가 말했던 냉장고에서 새는 물을 견디지 못하고, 역시나 죽기 전 아내가 말했던 크리스마스에 아버지로 부터 받았던 공구함으로 냉장고를 고치는 대신, '파괴'해버린 데이비스는, 그때부터 자신의 '무감각'한 일상들을 절단내기 시작한다. 마치 '마이더스의 손'처럼 장인 투자 회사의 잘 나가던 투자 분석가는 '투자' 기획 대신, 그 '기획'에 씌이는 컴퓨터를 해체하고, 장인과의 상담 중에 그 방에 있는 시계의 분해를 꿈꾼다. 그것도 모자라, 회사의 화장실 문을 바닥에 늘어놓고,  그것도 성에 안 차, 오히려 자신이 돈을 지불하고 철거 현장으로 뛰어든다. 



데이비스의 무감각과 무표정에선 역시나 시한부 고통에 시달리던 아들의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거두었던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크로닉>의 데이비드(팀 로스 분)의 무표정이 오버랩된다.  그런가 하면,  '파괴'라는 극단적 방식을 통해 그의 고통이 뿜어져 나오는 방식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포기하려던 인생을 극한의 공간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걷는 것을 통해 해소한 <와일드>의 셰릴 스트레이드(리즈 위더스푼 분)이 떠올려진다.  그런가 하면,  오로지 주인공 데이비스에 대한 집중된 클로즈업을 통해, 온전히 제이크 질렌할이라는 배우를 통해 데이비스라는 한 사람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보자면, 생뚱맞게도 여주인공조차 나레이션으로 등장했던 호아킨 피닉스의 <HER>가 떠올려진다. 

구원, 혹은 공감의 손길
<크로닉>의 데이비드가 아들을 상실한 상처를 타인에 대한 과도한 감정 이입을 통해 해소하려던 방식이 뜻하지 않는 추문 혹은 또 다른 죽음에의 봉사로 귀결되어, '치유'에 이르지 못한 대신, 무감각한 데이비스가 세상을 향해 던진 구원의 신호, 초코바 회사에 보낸 우문에는 현답이 도달했다. 새벽 2시에 그에게 초코바 회사의 고객 상담원이 연락을 해온 것이다. 그녀는 바로 아들과 함께, 현재는 초코바 회사 사장과 동거를 하고 있는 캐런(나오미 왓츠 분)이다. 마치 첫 눈에 반한 그 누군가에게 설레임을 전하듯, 캐럴은 그렇게 장문의 편지를 보낸 데이비스에게 연락을 취한다. 

결국 그녀를 찾아낸 데이비스, 다짜고짜 캐롤에게 들이대는 데이비스는 그녀의 남자 친구가 출장으로 부재한 그녀의 집에 살다시피 하는 하고.  캐롤 남자 친구가 결국 데이비스에게 손찌검을 하듯, 혹은 그의 장인이 분노하듯, 그들은 그저 세간의 눈으로 보자면 '남자와 여자'이다. 하지만, 캐롤의 아들, 크리스의 일탈과, 그 일탈의 자락에서 드러난 미군 병사의 죽음을 통해, 이 모자 역시 데이비스처럼 사랑한 이를 잃은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영화는 설핏 보여준다.  그래서 내내 캐롤과 데이비스는 그토록 붙어 있지만, 그들은 '애무' 대신, 퇴행하여, 소파를 뒤집어 시트로 천막을 만들어 손가락으로 그림자 놀이를 한다. 마치 어린 시절의 단짝마냥, 데이비스의 또 다른 단짝은 캐롤의 도발적인 아들 크리스다. 



그렇게 그를 지원하는 두 벗의 존재로 인해, '파괴'의 힘을 얻는 데이비스는 드디어, 크리스와 함께 그간 '파괴'를 통해 쌓은 내공으로, 자신의 집을 부수기 시작한다.  물이 새는 냉장고, 아내가 사들인 200달러 짜리 커피 머쉰 정도가 아니라, 캐롤이 가장 이상적이라 했던 그 집을 '철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데이비스의 '철거'는 아마도 처음엔, 장인의 말대로 그는 의식하지 못했을 지언정, 아내만 죽고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모멸에서 부터, 혹은 샤워를 할 때조차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아내의 환영에 대한 저항에서부터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나아가, 그가 자신의 무감각을 10년 전부터라 지칭했듯, 그가 대학 시절부터 '편의적'으로 살아왔던, 심지어 아내의 사랑조차 무심히 받아들였던 지난 시간에 대한 '파괴'이자, 복기이다. 

파괴는 존재고, 망가지는 것은 어떤 완성.
아내가 고쳐주기를 원했던 냉장고를 고치는 대신 부숴버렸던 데이비스, 그런 데이비스의 복장은 기묘하다. 그가 투자 분석가로 일하러 나갈 때 입었던 와이셔츠에, 건설 노동자들이 착용하는 바지와 워커 차림이다. 그의 '파괴' 복식은,  존재를 규정하며, 동시에, 행동 방식을 설명한다. 그 복합적인 드러냄이, 그저 데이비스의 '파괴'가 '파괴'아니라, 자신의 삶을 재구축하기 위한 '통과 의례'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파괴'의 끝에서 수염을 깍고, 반듯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아내 유산으로 만들어진 장학금 수여식에 나타난 날, 뜻밖에 그는 오로지 그에게 '자학'만을 남겨주었던 결혼 생활의 또 다른 함의를 깨닫는다. 그리고 그 함의는 그에게 분노대신, 결혼이라는 정의내리기 힘든 여정, 그리고 아내 대신 죽을 수 없어, 아니 아내를 사랑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자책을 내려 놓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가 존재하지 않는 아내를 대신하여 세상을 향해 햄머를 내휘두르며 도발했던 그의 지난 삶, 그리고 결혼, 그리고 무뎠던 그의 '사랑'이 비로소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초코바 자판기를 향해 발로 차며 슬픔을 표출하는 대신 고객 센터로 장문의 편지를 쓰듯이, 남보기에 번듯한 집처럼, 그럴 듯해 보이지만 공허했던 삶과 결혼을 가진 것들을 마구 때려부수는 방식으로 '복기'하는 <데몰리션>은 몹시도 모던하다. 마치, 인간의 초상이, 해체되어 갈기갈기 저마다의 색채와 구성으로 드러나는 현대 미술처럼, 데이비스의 해체의 여정은 끊임없이 가능하지 않은 인간사에서 무언가를 채우고 쌓으려 하는 현대인의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까지 닿는다





by meditator 2016. 7. 14. 1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