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하늘이 높아진 계절에 딱 맞춤한 영화다 싶다. 가을은 그저 높아진 하늘과 서늘한 온도만이 오는 게 아니라, 그 낮아진 기온과 함께 외로움, 쓸쓸함도 함께 온다고 어느 분이 말했던가. 그렇게 아직은 한낯의 볕이 저항을 하지만 계절의 서늘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저무는 해와 함께 고꾸라져 버리는 환절기, 아마도 <더 테이블>은 이런 계절의 정서를 함께 하기엔 딱인 영화일 듯 싶다. 




주목하다
<더 테이블>속 시선은 지켜보다라고 하면 좀 아쉬운 느낌이 든다. 그 보다는 주목하다라는 조금더 목적의식적인 술어가 적확하다는 생각이다. 

영화는 한 까페를 주목한다. 서울 어느 골목 한 켠의 까페, 그리 세련될 것도, 화려할 것도 없는, 오래된 상들리에와 그 오래된 상들리에만큼 시간의 흔적이 묻은 테이블이 있는, 그래서 찾는 이도 그리 많지 않은 까페, 그곳의 테이블에 물컵에 담긴 흰 꽃 몇 송이가 올려지며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그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손님들을 주목한다. 오전 11시 에스프레소와 맥주를 사이에 두고 앉은 예전의 연인 유진(정유민 분)과 창석(정준원 분), 오후 두 시반 두 잔의 커피와 초콜릿 무스 케이크를 사이에 둔 채 신경전을 벌이는 경진(정은채 분)과 민호(전성우 분), 오후 다섯 시 두 잔의 라떼를 사이에 둔 채 사업인지 연민인지 모를 은희(한예리 분)와 숙자(감혜옥 분), 저녁 아홉 시 커피와 홍차를 사이에 두고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찍을 뻔한 혜경(임수정 분)과 운철(연우진 분)

하룻동안 이 네 커플의 만남은 우리 사회 인간 군상의 단면을 충분히 보여준다. 한때는 연인이었지만, 이제는 속물과 찌라시의 주인공이 된 남녀가 빚어내는 불협화음, 그리고 그 간극의 서늘함. 관계보다 감정이 앞서는 이 시대 연인들의 뒤늦은 사랑 만들기의 어깃장과 그 어깃장의 끝에서야 어렵게 시작된 사랑, 진심조차 포장할 수 밖에 없는 세상 속에서 진심을 길어내는 사기 공모자 커플, 그리고 그 흔한 사랑하지만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신파의 2017년 자본주의 버전까지. 하룻동안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은 이들의 사연은 그 하나로 영화가 되고 서사가 됨직한 것들이다. 



우리 시대의 미시사
하지만, <더 테이블>에서 그런 네 커플의 사연은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영화를 보다보면, 그들의 사연보다, 그 사연을 오가는 테이블 위에 떨어뜨리고 가는 그들의 감정과 정서가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 속 혜경은 홍차를 시킨다. 홍차가 우려지는 티포트, 맑은 물 속에 붉은 빛깔의 차가 퍼져나가는 모습을 영화는 집요하게 지켜본다. 이런 식이다. 영화가. 테이블을 중심으로 만나는 두 인물의 감정, 정서를 마치 홍차가 우려내어지는 그 순간을 주목하듯 한 치의 감정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그런 속에서 관객은 '이해'를 하게 된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 되는 인생사의 그 한 장면, 주인공들의 속내를 헤아리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찌라시의 주인공이건, 혹은 이제는 과거의 연애사보다 동료들에게 자랑할 사진 한 장이 더 중요한 속물이 됐을 지라도, 미친 짓을 바래는 미친 년이 되었을지라도, '사기'를 직업으로 하다 덜컥 사랑에 발목잡히지만 어쩔 수 없이 하던 가락으로 결혼조차 이루려 하고, 그 결혼에 '역지사지'로 엮어들어가더라도, 풋사랑에 안달을 하더라도, 세상사 얼마든지 비난과 구설수와 심지어 욕설의 대상이 될 그 사연들이 그 테이블 위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를 얻고 간다. 

문득 궤를 달리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김종관 감독이 홍상수 감독처럼 오래도록 '이런(?) 영화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시대의 '미시사'랄까? 늘 무언가 구체적인 꺼리를 가지고 선명한 주제 의식을 전달해야 하는 한국 영화의 흐름 속에서 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생소하다. 그래서 소중하다. 서사의 행간 속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이런 영화를 종종 휴식처럼 만나 이해받고 싶다. 오래도록 우리 시대의 마음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by meditator 2017. 9. 1. 2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