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하다, 무기력하다. 
이것만큼 오늘날 '현대인'에게 익숙한 단어가 있을까? '우울해서 꼼짝도 하기 싫어'라는 말을 친지에게 한번쯤, 아니 그 이상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익숙한 우울한 정서를 넘어, 그게 '병'이 된다면? 하지만, 일상에 묻혀 살아가는 우리들은 우리의 우울이 '일시적인 감정'인지, 치료가 필요한 병인지 조차 구분하지 못한다. 다큐에 등장한 어머님의 말씀처럼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병'으로서의 '우울증'을 키운다. 감기에 걸렸는데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증상이 심해진다면 '폐렴' 등으로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치료'의 시기를 놓친다면 '생명'의 경계를 넘어설 수도 있다. 8월 9일 방영된 <다큐 시선- 우울증이 어때서요?>는 바로 그 치료받아야 할 질병으로서의 '우울증'을 알리기 위해 용기를 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매일 웃고 다녀서 제가 힘든 걸 아무도 안믿었어요' -현경 

독립출판물인 현경의 <병동 일기>의 한 문장이다. 그녀의 또 다른 책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이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우울증을 나타내는 딱 한 마디 단어를 고르라면 바로 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이기에, 그 단어를 통해 '우울증'을 말하고자 했다. 


우울증은 병이다. 
depressive disorder, 우울증, '정신 의학에서 말하는 우울한 상태란 일시적으로 기분만 저하된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내용, 사고 과정, 동기, 의욕, 관심, 행동, 수면, 신체 활동 등 전반적인 정신 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의미한다.'(다음 백과)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왜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병'이기에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방 안에 칩거하는 자식을 이해할 수 없어 울고 불고 싸우지만, 그 또한 '병'이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병이라 죽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우울증에 대한 인식은 낮다.  '우울증' 약이라도 복용한다고 하면 '직장' 등에서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아니 우선 스스로가 '우울증'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부모나 친지들은 '병'으로 인지하는 대신 '나약함'을 들먹이며 '의지'를 내세운다. 그래서일까. 우리 사회 '우울증'에 대한 치료율은 5%에 불과하다. 거기에 더해 '정신과 진료'에 대한 불신도 높다. 한번 정신과 약을 먹으면 '중독'이 되어 끊기 힘들 것이란 선입견이 심하다. 그래서, oecd 국가 중 우울증에 대한 약물 치료율이 가장 낮다.

의사들은 씁쓸하게 말한다. 문고리 잡고 5년이라고. 정신과를 가기 까지 주저하는 시간이 치료의 시기를 놓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같이 방문하고 도와주면 쉽게 달라질 수 있는 질환으로서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고되어야 한다고 의사들은 입을 모은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 스스로가 나섰다. 스무살 시절부터 우울,  공허감과 싸우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서밤은  '서늘한 마음썰'이란 팟 캐스트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우울증에 대한 그림 일기 <나에게 다정한 하루>를 펴냈다. 아직도 집 밖으로 나서기가 힘들 때가 있지만, 일주일에 5일의 외출을 하고, 하루 두 끼 밥을 먹는 것을 sns의 친구들과 나누며 스스로 용기를 내는 조제는 '우울증 환자들의 책읽기 모임'을 만들고, sns 친구들을 위한 책을 만들고, 동화를 썼다. 폐쇄 병동에서의 한 달 치료 기간을 독립 출판물로 펴낸 현경은 '옛 여관'을 이런 독립 출판물의 전시 공간이자, 작업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기획을 하고,  그곳에 작업실을 꾸렸다. 


 

​​​​​​​'소중한 하루를 이렇게 보낼래?' -조제 


'소진된 사람들'의 질병, 우울증
그들이 처음부터 '우울'했던 건 아니다. 현경은 폐쇄 병동에서 만난 자해를 되풀이 하는 언니에게 말한다. '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 사람들은 그 스트레스를 흔히 남에게 풀죠. 하지만 착한 사람은 그걸 자신이 품어내죠,' 언니를 위로하기 위해 했던 현경의 말은 곧, 우울증 환자 현경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20대의 현경은 일을 두려워하지 않던 젊은이였다. 에너지가 넘쳤고, 추진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열정'이 그녀를 다치게 했다. 조증과 울증이 반복되고, '죽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서밤의 부모님들은 늘 싸우셨다. 집에 있기 힘들 정도로.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방치됐었다.  이제는 못해도 된다고 '팟 캐스트'를 통해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 이전의 그녀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조제는 일 욕심많은 회사원이었다. 그녀가 생각했던 미래의 자신은 '에너지 넘치는 유능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하지만, '번아웃'된 그녀는 모니터만 켜면 과호흡이 오는 '공황 장애'와 우울증'에 빠졌다.  지난 다이어리에서 찾아낸 설기의 2013년은 회사에, 드럼, 크로스핏, 재즈 댄스, 토익으로 쉴 틈이 없었다. 부모님에게는 어릴 때부터 알아서 잘 하던 아이였지만, 그녀를 어릴 적부터 괴롭힌 건 내가 잘해야만 부모님들이 나를 좋아해 줄 것이라는 강박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어머니가 찾아온 친척과 함께 '쓸모없는 사람은 왜 안 데려가고'라는 대화를 듣고 이성현(가명) 씨는 집을 나왔다. 절연 상태이지만 차라리 편하다는 그에게 가족은 늘 질곡이었다. 

'물고기가 자라서 물고기가 되고, 고양이가 자라서 고양이가 되듯이
나도 간신히 자라서 내가 되었다. 
살아있는 날 귀여워하고 싶다. 살아있으니까.' -조제

환자들이 말하는 '우울증'
현경을 상담한 의사는 말했다. '죽고 싶은데 정말 죽고 싶을까봐 그게 무서운 거죠?'라고. 현경은 말한다. 자신들이 '순풍에도 흔들리는 꽃들'과도 같다고. 서밤은 그런 상태를 '망망대해'라고도 표현한다.  심리 상담 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스스로 자신을 낙인 찍을 까봐 두려웠다고 서밤은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까봐 용기를 내었다. 울고 불고  '의지'를 내세우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우울증이 자신의 병이라는 것을 설득하여 '병원'으로, '상담 심리 센터'로 향했다. 약을 먹고, 상담도 꾸준히 했다. 그리고 용기를 냈다. 자신의 병을 인터넷의 친구들에게 알리고, 그들의 응원을 요청한다. 오늘 먹은 밥을 sns에 알리고 칭찬 댓글을 받는다. 그들의 칭찬이 이제 다시 '조제'를 내일 집 밖으로 나설 용기를 준다. 그리고 자신들의 상태, 자신들의 투병 일지를 널리 알리고자 한다. 서밤의 <나에게 다정한 하루>가, 현경의 <병동일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등이 그것이다. 

현경이 죽을 것 같다며 의사에게 도움을 청하자. 그녀에게 돌아온 처방은 '폐쇄 병동'이었다.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폐쇄 병동', 하지만 현경의 해석은 다르다. 그건 환자들을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죽음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는 곳이었다고. 그래서 책읽기와 tv 시청, 피아노와 탁구만이 가능한 그곳을 그녀는 '무균실'이라 정의한다.  현경의 북토크에 참석한 '폐쇄 병동' 실습생은 '환자'의 목소리로 알려준 병동 이야기가 그래서 고맙다. 그 누구보다 '당사자'의 이야기이기에 설득력을 가진다. 




서울 시에서 마련한 무료 상담을 비롯한 여러 상담 센터, 그리고 정신과 등의 치료를 통해 우울증 환자들은 '기술'을 배운다. 위기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기술을, '자책'과 '고립'에 갇혔던 스스로의 우물에서 나와 '대인 관계'를 꾸리며 '의지'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기술, 그리고 감정의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기술. 상담을 받으며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된다. 필요하다면 약물의 도움도 받는다. 헤어나올 수 없는 질곡과도 같던 '가족'이 '심리 치료'를 통해 그저 잘못된 가족 뽑기'로 받아들여질 여유를 갖게 된다. 불행을 돌보느라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 잊었던 '외로웠지만 마음씨가 예뻤던' 그 아이에 대해 '나라도 잘해줘야 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보건복지부 건강 실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우울증 환자는 61만 3000 명이다. 하지만 전체 국민의 1.5%에 해당하는 숫자다. 하지만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22%에 그친다.(벨기에 39.5%, 미국 43.1% 등) 우울증과 우울한 상태조차도 구분하지 못하며, '감기'와 같은 질병으로 우울증을 다루는 사회적 인식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5월 9일 방영된 <다큐 시선- 우울증이 어때서요>는 스스로 용기를 낸 우울증 환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울증에 대한 치료를 독려한다. 치료를 하면 감기 증상이 덜해지듯, 우울증도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수 있는 '질환'일 뿐이라고 환자들은 말한다. 의사들도 주장한다. 그 누구보다 '중독'에 대해 민감한 의사들이 '우울증' 치료제를 '중독'시킬리가 있겠냐고.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병원의 문을 열고 오시라 권유한다. 그게 힘들다면 우선 '무료 상담 센터'를 통해 접근해 보는 것도 권한다. 출연한 환자들의 사례에서 보듯이, 개인에게 온전하게 '부담'을 지우는 사회 속에서 우리 누구라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그리고 '우울증'에 걸린다면, '치료'를 받고 다시 사회 속으로, 사람들과 함께 '나'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 감기처럼. 

by meditator 2018. 8. 10. 0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