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귀촌'이나, '귀농'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중년의, 혹은 초로의 나이에 선택가능한 삶의 행보 중 하나로 뚜렷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그 또 다른 삶의 선택지는 <삼시세끼>의 그 한량스러운 삶처럼 느긋하게 포장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삶의 고달픔이 거기라고 다를손가. 1월 17일 방영된 <다큐 공감-소나무 마을 8가족 생존기>는 귀촌, 귀농이라 쓰고, 멋들어지게 포장되어왔던 전원의 이상적 삶의 포장지를 뜯고, 그 안의 가감없는 진솔한 삶을 전해주려 애쓴다. 


2010년 함께 전원 생활을 꿈꾸는 까페에 가입해 있던 우루사(닉네임)은 모래(닉네임)에게서 온 '좋은 땅을 찾았어요'라는 한 통의 문자에 다짜고짜 송금을 했고, 충남 아산시 소나무 마을 8가구 동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다큐의 시작은 그리 황홀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전원 생활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과 달리, 오직 개를 기우고 싶어 전원 생활을 시작했다던 가장은 이제 개가 없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또 다른 가장은 물 내려가는 소리가 이상하자, 헐레벌떡 마당으로 향한다. 아파트에 살면 경비 한번 부르면 될 것이지만, 이제 허투루 지내보낸 물 소리 한번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의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채득했기 때문이다. 올 겨울에 유독 눈이 많이 왔다던 아빠의 말끝엔 원망이 서려있다. 아이들은 아빠가 계단을 메워 만들어 준 미니 눈썰매장이 신나지만, 그 곁엔 눈삽을 들고 허망한 아빠의 노고가 있다. 이곳에 살기 위해 어느 집 가장은 진급이 여유로운 도시의 직장에서 이곳으로 전근을 했고, 또 다른 가장은 여전히 서너시간 걸리는 도시의 삶을 위해 새벽 길을 나선다. 하다못해 삼십 분 거리 인근 번화가에서 술 한 잔을 해도, 대리기사가 돌아가는 돈까지 셈해주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주변엔 마트도 없고, 치킨이나 피자 배달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소나무 마을에 모였을까? 이들을 소나무 마을에 모여들게 한 직접적 계기는 인근에 위치한 '거산 초등학교'이다. 10년 전 줄어드는 학생으로 인해 폐교 위기를 겪은 이 학교는 교사와 학부모들의 노력으로 '생태학교'로 거듭났고, 이후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거산 초등학교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소나무 마을 17명의 아이들도, 모두 이 학교를 다니니, 거산 초등학교가 이들의 귀촌의 직접적 원인인 셈이다. 
이게 쉬는 시간인가 싶게, 아이들의 수업 시간은 왁자지껄하다. 그도 그럴 것이, 판을 벌린 건 윷놀이요, 칠판은 졸지에 윷놀이 판에, 아이들은 저마다 편을 먹고, 이길 전략을 짜느라 분주하다. 아이들이 목이며 팔에 주렁주렁 매달린 중년의 남자가 선생님이란다. 그 반 만이 아니다. 유치원 아이들은 엄마와 선생님의 손을 잡고 눈 내린 겨울 산 산행을 즐긴다. 개구리 한 마리 쯤 잡는 일이야 이 아이들에겐 예사로운 일이다. 
아이들의 분주함은 학교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 집의 아이가 하나건, 둘이건, 학교가 끝난 아이들은 이집으로, 저집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냉장고를 털고, 거실을 저지레하며, 떠들썩하게 논다.
부모가 말 안듣는 아이들을 항복시키는 제일 기막힌 말은, '학교 보내지 않는다'고,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단어는, '퇴근'이란다. 


하지만 행복한 아이들을 위해 소나무 마을 사람들이 감수할 삶의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양지바른 곳에, 논으로 훌쩍 트인 '좋은 땅'은 분명했지만, 그곳에 집이 세워지기 까지, 마을 사람들과 멱살잡이를 하며 물싸움도 하고, 허락을 내주지 않는 관계 기관과 법률적 실갱이를 벌이고, 여덟 가구 중 누군가는 자기 몫을 희생해야 하기도 했다. 인터넷 까페에서 모여, 전원 생활을 즐기자고 시작한 의도가, 현실이 되었을 때 녹록하지 않음을 여덟 가구는 혹독하게 경험했고 경험하는 중이다. 

카메라가 찾아간 소나무 마을 식구들은 늘 분주하다. 위치를 생각지도 못한 채 화목 보일러를 놓는 바람에, 땔감 한번 들일 때마다, 남편과 아내가 갖은 고생을 하고, 비용 치레도 만만치 않았던 집은 땔감을 창고로 넣느라 쩔쩔 맨다. <삼시 세끼>에서 눈깜짝할 사이에  짠! 하고 만들어 졌던 아궁이를 만드느라 또 다른 가장은 하루 종일 흙과 벽돌로 씨름한다. 그나마 목수였던 아버지의 도움을 받은 가장이 가장 여유롭다. 
도시에서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도시의, 아파트의 삶에 맞춤으로 제작된 세상에서, 시골에서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모든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하는 건 온전히 이들의 몫이다. 

하지만 그것이 꼭 고달픔만은 아니다. 서너시간의 출퇴근을 감수할 만큼, 고단한 삶의 끝에 맛보는 보람을 준다.
아내를 졸라 멋진 목공 기계를 선물 받은 가장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며 아이들의 다락방을 자랑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 성장해도, 이곳이 아이들의 추억으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인근에 없는 마트 대신, 아내들은, 직거래 농산물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지역에서, 무공해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저 사고 파는 관계를 넘어, '생명'이 있는 먹거리를 향한 행보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하루를 걸려 만든 화덕에 불이 들여지고, 솥에서 연기가 나자, 자연스레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인다. 

물론 함께 사는 건 녹록치 않다. 비가 오는 날 모처럼 번개를 한 주부들이지만, 처음부터 이들이 친해진 것은 아니다. 한 마을에서 살기에 당연히 친해져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이들의 관계를 어렵게 했던 적도 있었고, 함께 부대끼는 속에서의 외로움도 저마다 겪었다. 하지만, 이제 4년 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모나고, 거친 것들이, 조금씩 무뎌지고, 둥글어지는 과정이다. 
모처럼 마을 회의 시간, 일년에 두번 함께 하는 여행에, 아내들은 '서울 구경'을 주장할만한 시간이 흘렀다. 


<다큐 공감>은 소나무 마을 여덟가구의 삶을 '생존기'라는 표현을 썼듯이 가급적이면 가감없이, 현실적으로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물론, 전해지는 삶은 고달프다. 물 내려가는 소리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듯이, 농촌에서의 삶은 처음부터 끝가지 사는 사람의 노력을 요구한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 소나무 마을이 얹힌 주변 지역 주민들과의 관계도 늘 숙제다. 지금은 거산 초등학교에 다니지만 아이들이 커가면서 진학도 고민거리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이렇게 하나둘씩 사람들이 이사를 오고, 이제 여덟 가구가 생기니, 말 그대로, '마을'이 이루어 졌다고. 17명의 아이들 중엔 소나무 마을 에서 태어난 '토박이'도 있다고 마을 주민에게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불편함이 불편함이 아니라, 삶의 당연한 과정으로 익숙해져 가고, 그것이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도시의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단어, '마을', 그게 소나무 마을에 있는 것이다. 사람사는 맛이 저건가 싶다. 


by meditator 2015. 1. 18. 1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