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억해>는 매회 작은 제목을 내걸었다. 15회에 내걸은 제목은 '해피엔딩은 가능할까? 였다. 


대부분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특히나 스릴러물, 그 중에서도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 중 하나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생명을 앗아가는 범죄자들이 통렬한 댓가를 치르는 것이다. 아마도 스릴러 물의 해피엔딩이란 바로 그런 것이리라. 그런 면에서 <너를 기억해>는 매우 찝찝한 드라마이다. 결국 악의 최종 근원이었던 이준영, 혹은 이준호(최준영 분)은 결국 잡히지 않았으니까. 16부라는 길고 긴(?) 회차를 통해 이준영을 잡기 위해 발버둥치던 두 주인공 이현(서인국 분)과 차지안(장나라 분)는 처음과 다르지 않게 끝까지 이준영을 잡겠다며 의지를 다짐하고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도대체 이 드라마는 그렇다면 16부작 동안 뭘 한 거지? 이런 뜨뜨미지근한 결론 답게 드라마는 마지막 회까지 5.1%(닐슨 코리아 기준)로 별다른 반동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렇다면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망드'의 대열에 합류한 것일까?



어른들이 저지레해놓은 세상에 던져진 아이들.
하지만 <너를 기억해>의 미덕은 분명하고도 통쾌한 결론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아니다. 누군가를 대놓고 벌주고 잡아넣고 하는 식의 단죄는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너를 기억해>가 내린 결론은 명확하다. 

<너를 기억해> 속 등장 인물들은 모두 '아이들'이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아이들, 아이들이란 말은 곧, 아직 성장하지 않아서, 어른들이 만든 세상을 뚫고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내지 못한 존재들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른들이 만든 세상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절대 악으로 등장한 이준영이 그렇다.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 철이 들기 까지 방안에 갇혀서, 문자만을 상대하며, 우리든 갇힌 동물처럼 학대받으며 자라나던 아이, 그의 존재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어른들에 대한 복수와, 자신처럼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동포애'로 정의내려진다. 그리고 그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타고난 뛰어난 두뇌와 학습된 지적 능력을 기반으로 실천해 나간다. 

그리고 악의 사도 이준영에 의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 이준영의 유일한 어린 시절 친구는 이준영에게 말한다. 니가 누군가를 생각하면, 언제나 일이 잘못된다고. 그도 그럴 것이, 이준영은 자신처럼 학대받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그들을 학대했던 것으로 간주한 부모들을 살해하고, 자신이 대신 그들의 보호자연 했으니까. 그렇게 '이준영의 아이들'은 앨범을 가들채울 정도로 채워져 나갔다. 그는 이준영의 범죄 외에, 그렇게 이준영의 범죄를 기인하는 어른들의 부조리한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준영이 포악한 범죄자인줄 알면서도 이용하는 현지수(임지은 분)나, 강은혁의 아버지 경찰청 부청장같은 인물들이 존재힌다. 

드라마는 직설적으로 드라마 속 어른들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비유하지는 않지만,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마음대로 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이용하며, 자신들의 잘못이 밝혀진 이후에도 사죄를 하기는 커녕 덮으려고 전전긍긍하는 그 모습들에서 충분이 작가가 현재의 기성 세대를 상징하고자 함을 읽어 낼 수 있다. 



어른들의 세상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방법
그렇다면 이 부조리한 세상 속에 던져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이준영은 악의 사도가 되어 그런 부조리한 어른들을 사적으로 징벌하고, 아이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구원(?) 방식은 뜻하지 않게(?) 아이들에게 부모를 잃게 만들고, 형제간의 생이별을 하게 만든다. 

이현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들고, 동생을 사라지게 만든 이준영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이준영에게 폭력을 가했지만, 그의 도피 과정에서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딸 차지안 역시 복수를 지향한다. 그리고 이준영의 거짓말로 인해 형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던 정선호는 제 2의 이준영이 되어 나쁜 사람들을 사적으로 징벌하는 사이코패스가 되었으며 형을 최후의 목표로 설정하고 쫓는다. 그리고 경찰청 부청장의 아들로 유학까지 다녀온 강은혁(이천희 분)은 그저 자부심이 넘치는 수사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준영으로 인해, 그리고 정선호가 저지른 범죄로 인해 서로 얽혀 들어가며 과거의 사건과, 진실에 다가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서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나쁜 것이 무엇인지, 나쁜 것의 단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복수는 정당한 것인지, 벌을 받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너를 기억해>의 16부는 속시원한 사건 해결 대신 사건에 휘말린 이들이 던진 수많은 물음표로 채워진다. 

어떻게 보면 이준영과 이현은 다르지 않다. 물론 방식은 다르지 않지만, 그 둘은 모두 어른에 의해 밀실에 갇혀진 '학대'당한 경험을 가진 아이들이다. 그리고 본능적 상황에서 누군가를 죽였다. 그래서 이준영은 그런 이현을 구한답시고 그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과 같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동생을 숨겼다. 하지만, 이현의 선택은 달랐다. 그는 사이코패스인 동생을 숨기는 대신 감수하려 했고, 진실에 다가가려 했다. 프로스트의 두 갈래 길에서, 이준영과 이현이 선택한 길은 서로 달랐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한 차지안이 선택한 길도 달랐다. 그리고 이현과 차지안이 선택한 길이 달라짐으로 해서, 이현의 동생, 정선호 변호사, 민이가 선택한 길도 달라졌다. 그리고 수사 기획관을 죽인 최은복(손승원 분)에 대한 동료 수사관들의 선택도 달랐다. 

이준영을 암묵적으로 방조한 아버지의 실체를 알게 된 강은혁은 말한다. 아버지를 사퇴하게 만들까, 하지만 경찰 고위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경찰에서 나가도 공기업 이사직을 맡으며 그 부패한 권력을 유지해 갈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그러면 자신이 사표를 쓸까, 하지만 그것은 도망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강은혁이 선택한 길은 스스로 아버지 대신 차지안에게 사과를 할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고자 한다. 그가 선택한 사과는 '실천'이다. 앉아서 아빠를 원망하며 징징거리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고, 기꺼이 자신의 운명을 감내하고자 한다. 이준영을 잡기 위해 누구보다 솔선수범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쩌면 <너를 기억해>에서 가장 명확하게 제시된 어른들 세상을 사는 아이들의 방식이요,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가는 길이다. 

이현은 말한다. 이준영은 불쌍하지만, 그가 이해도 되지만, 그를 용인하지는 않겠다고, 차지안 역시 끝까지 이현과 함께 이준영을 쫓겠다고 한다. 분명, 이현도, 차지안도 1회와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범죄자 이준영을 잡지 못했고, 그의 존재는 그들의 곁을 유유히 지나칠 정도로 여유롭다. 하지만, 16부의 과정을 거치며, 그들은 어른들 세상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신념에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야 비로소 흔들리지 않고 굳건해졌다. 그리고, '이준영의 아이들'로 잘못 자란 아이들을 설득할 내공조차 생겼다. 처음과 똑같지만, 똑같지 않다. 그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에 불과하던 그들은, 이제 부조리한 어른들의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어른이 되었다. 

그렇게 <너를 기억해>는 언뜻 모호해 보이지만 명확하게 부조리한 부모 세대가 만들어 놓은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의 선택에 대해 목소리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초반 '표절'시비 까지 불러 왔던 트릭이 가득했던 이야기와, 힘이 잔뜩 들어갔던 연기들을 뒤로 하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집중했던 후반이 진득했던 모처럼 보기드물었던 '수작'이다. 단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모두가 함께 하기에는 '접근성'이 떨어졌다는 점일뿐. 모두가 공감해야 한다는 과제는, 놓쳐버린 이준영처럼, 공중파 미니 시리즈의 과제로 남기며. 
by meditator 2015. 8. 12. 1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