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야, 내 말 좀 들어봐? 이거 그린라이트지?"

"뭔데, 뭔데?
"아이스크림 집에 갔는대, 여직원이 두배다 많이 퍼주는 거야?"
"응, 그거 원 플러스 원 행사 하는거야?"
개구리 개그 극단 대표 왕자방(정찬우 분) 앞에서 오초림과 최무각이 벌인 만담 개그의 한 토막이다. 진지한 두 사람과 달리, 극단 대표는 눈 하나 끔쩍하지 않고 그런 식이라면 다가올 품평회에서 꼴찌를 하고 극단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그런 대표의 으름장에 하지만 시종일관 진지한 오초림은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개그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런가 하면 오초림의 만담 파트너로 본의아니게 무대에 오른 최무각은 1회에 이어, 2회에도 게걸스런 먹방을 선보인다. 무감각한 그가 커피 전문점에서 뜨거운 커피를 원샷하는 정도는 약과다. 1회 편의점 강도를 만나기 위해 불침번을 서며 그가 먹은 것은 새우탕 사발면 서너 개에, 커피 두 잔, 그리고 핫바 등이다. 2회에 그의 먹방은 업그레이드 된다. 짜장면 서너 그릇에, 볶음밥, 이어 짬뽕 두 그릇에, 마지막 입가심으로 탕수육을 더한다. 



개그에 빠진 오초림
만담 파트너가 없어서 개그 극단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오초림은, 지난 번 범인을 쫓아 간 찜질방에서 여자인 자신이 탄로날 위기에 처하자 능청스런 전라도 사투리로 위기를 모면했던 최무각 순경을 떠올린다. 처음 그가 부순 차값 대신 만담 콤비를 제안하지만, 최무각은 요동도 않는다. 대신 역시나 강력계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최무각의 아킬레스 건을 건들여, 어렵사리 파트너로서의 승락을 얻는다. 하지만 오로지 수사 생각만으로 가득찬 채 개그에 관심이라고는 1%도 없는 최무각에게 오초림은 다그치듯 말한다. '나에게 개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고.

1회가 시작하자마자 보여지듯이 최은설이었던 시절 오초림은 그녀의 눈 앞에서 부모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른바 이 드라마의 중심 사건인 '바코드 살인 사건 해녀 부부 살해 사례'의 유일한 목격자이다. 하지만 범인으로 부터 도망을 치다 교통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그녀는 의식을 되찾은 후 최은설이었던 때의 기억이 없다. 대신 냄새를 보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집요하게 개그를 추구한다. 

극단 대표는 오히려 최무각에게는 '바보같지만 연기의 재능이 있다'라는 코멘트를 덧붙였지만 정작 선배들의 심부름조차 마다않고 열심인 오초림에게는 별 코멘트가 없다. 시청자가 보기에도, 애지중지하는 개그 아이디어 노트는 물론, 오초림의 개그조차 별 재능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는 자신에게 개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며 절박하게 말한다. 그것도, 2015년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장소팔, 고춘자'의 개그를. 혹시나, 그런 그녀의 개그에 대한 집착이, 극단적인 발랄함이 과거의 기억을 잃은 최은설의 트라우마의 변형이 아닐까? 그녀가 집착하는 그 지나간 '장소팔 고춘자'의 만담은 혹시나 그녀가 잃어버린 해녀였던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편린은 아닐까? 원래의 성격도 밝았으며, 과거의 기억을 잃고 양아버지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밝은 성격을 유지하는 오초림, 그렇게 봐도, 개그에 대한 오초림의 열망은 그저 예사로 보아 넘겨지지가 않는다. 

극 중 오초림의 개그는, 오초림과 최무각을 이어주는 메신저로 등장한다. 파트너를 잃은 오초림이 자신의 만담 파트너를 얻기 위해 최무각의 수사 파트너를 자원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자연스레, 그들을 그 자리에 있게 만든 '바코드 살인 사건' 수사에 첫 발을 들인다. 



전의를 불태우는 무감각남 최무각의 먹방
오초림의 개그가 그녀의 전사와 삐긋하게 맛물린다면, 그에 반해 최무각은 2회에 이른 지금, 수사를 한답시고 다섯 날 밤을 새다 정작 범인 앞에서 잠이 들어 버리고, 무식하게 많은 음식을 먹어대는 무감각한 설정에 대한 이렇다할 설명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상에 유일한 가족, 그래서 동생을 거침없이 '내 새끼'라 부르던 동생 바보, 그런 동생이 자기 눈 앞에서 피흘리며 죽어간 모습을 보며 절규했던 그 장면만으로도 그의 무감각이 이해가 된다. 극한의 고통이, 그리고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아 내 손으로 죽이고야 말겠다는 그의 저돌적 의지가 그로 하여금 '통각 상실증'에 이르게 했으며, 범인을 찾아내겠다는 전의가, 몇 그릇의 음식을 들이부어도 끄덕없는 무감각의 식욕을 만들어 냈을 것이라는 예측을 자연스레 하게 만든다. 거기에 덧붙여, 아쿠아리움에서 일했던 동생과 단란하게 보냈던 시절을 해파리만이 떠도는 수족관의 기억으로 남긴 채 홀로 남겨진 그의 채울길 없는 외로움이, 자꾸만 그의 허기를 충동하는 듯이 보여지기도 한다. 상식적 수준을 넘은 채 먹어도 먹어도 채워질 수 없는 그의 무감각한 허기는 묘하게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외로움'으로 독해되어 짠함을 느끼게 만든다. 

결국 그의 이런 외로움, 혹은 그의 다른 표현인 범인에 대한 전의는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아내는 수사 과정에서, 그 과정에서 만난 또 다른 사랑으로 풀어내어 질 수 밖에 없다. 

결국 오초림의 개그에 대한 집착이나, 최무각의 채울 수 없는 허기는, 현재 그들이 처한 '트라우마'의 다른 표현이라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기억을 하건 못하건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고로 한 순간에 잃은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그들은 그 트라우마의 표현으로 과거의 기억을 잃고 정반대의 정서에 빠져들거나, 아예 감각 자체를 망각해 버린다. 최무각의 무감각과, 오초림의 초감각은 정반대의 양상으로 드러나지만, 결국 그들의 비정상적인 감각은 그들의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육친을 잃은 그들의 슬픔이, 그들을 '초감각'하거나,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렸다. 사건 후 몇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들은 그 시절에서 놓여나지 못한 채 혹은 놓여난 듯 하지만, 결국은 거기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그저 선남 선녀의 말랑말랑한 사랑 이야기 같은 <냄새를 보는 소녀>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것은 가족을 상실한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놓여날 수 없는 두 남녀의 치유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렇게 상처의 흔적을 초감각과 무감각으로 드러낸 두 남녀의 기묘한 캐릭터의 행간을 채우는 것은, 신세경, 박유천 두 배우의 진솔한 연기이다. 한 장면에서도 이쁜 척, 멋진 척 하지 않고, 가장 최무각스럽게, 오초림답게 무감각한 순경과 초감각한 개그 우먼 지망생의 연기를 선보인다. 덕분에, 오초림의 밝음이 조증을 넘어, 선하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뻣뻣해 보이고 재미없을 무감각남이, 무감각해서 외려 더 재밌고, 보는 이의 짠한 감정조차 자아내는 풍성한 캐릭터로 재탄생된다. 심지어 2회 초반은 오초림의 냄새를 보는 설정을 설명하기 위해 30분에 걸쳐 두 남녀 주인공의 설왕설래로 드라마를 채워갔지만 전혀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온전히 두 배우의 합 만으로, 드라마의 매력을 만들어 가는 <냄새를 보는 소녀>.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과거의 상처를 정반대의 양상으로 그려내는 박유천, 신세경이 그려내는 무감각남과 초감각녀이다. 
by meditator 2015. 4. 3. 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