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로웠다. 얼마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엄지 척하는 인증 사진으로 '물의'를 빚었던 손혜원 더불어 민주당 국회의원이 8월 1일 <냄비 받침>에 등장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그 '공교로운 시기'를 허심탄회한 인터뷰를 통해 운영의 묘를 살렸다. 출연 당사자에게는 공개 사과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력하고픈 속내를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그리고 이런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명색이 '스타의 사생활을 한 권의 책으로 담는다'던 그 어정쩡한 콘셉트를 이제 예능판 <썰전>으로 자리잡아가는 정치 예능 토크쇼로서의 새 장을 안착시켰다.


 

손혜원 vs. 나경원 
일단 8월 1일의 <냄비 받침>은 손혜원과 나경원이라는 두 국회의원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 앉힌 제작진에 가장 큰 점수를 주어야 하겠다. 

한 자리에서 밥도 먹기 힘들다는 초선 의원과 다선 의원의 독대, 하지만 연륜으로 보면 이미 60줄을 넘은 건 물론, 사회적으로도 '참이슬', 처음처럼' 등 '브랜드 디자이너'로 한 획을 그은 손혜원 의원과, 소장 판사로써의 재직 경험 외에, 일찌기 국회로 들어와 여당의 각종 직책을 맡아가며 모범생 국회의원으로 잔뼈가 굵은 나경원 의원의 조합은 한 그릇에 담기엔 너무도 이질적인 조합이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인선 사실조차 신문을 보고 알았다지만 김정숙 여사의 고등학교 동창에, 더불어 민주당 당명 선정 과정에서, 이번 대선까지 '브랜드 디자이너'로서의 그 역할을 톡톡히 드러낸 나경원 의원이 평가한 여권 실세와, 정치 입문 시절부터  '근황'조차도 뉴스꺼리가 되어 온 '실세'였던 나경원 의원의 조합은, 현재의 정치권에서 가장 어울리는 만남이다. 

그랬기에 연륜과 사회적 경험이 풍부하지만 내일이 없는 초선 손혜원 의원과, 연륜으로 치면 몇 년이 밀리지만, 정치적 연륜에 있어서는 손혜원 의원의 그 어떤 행보에도 '훈수꺼리'가 있는 다선 의원 나경원 의원의 노회함은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다. 

무엇보다 적폐 청산을 내세운 여당의 전투적 초선과 투쟁적으로 여당의 발목을 잡는 것이 사명이지만, 정작 내일을 고민하는 야당의 다선의 중후함은 그 자체로 현재 여당과 야당을 상징하는 듯이 보였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여성 국회의원이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져 '여혐' 발언을 했다간 같은 당 남자 의원이라도 뼈를 못추릴 것이라며 달라진 시대를 선언하는 손혜원 의원과 여당 대표 추미애 의원조차도 접근성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그간의 정치 생활 동안 체험한 유리 천장을 토로하는 나경원 의원에게서는 슬로건으로서의 여성주의와 현실에서의 한계를 동시에 경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해를 넘어선 이해 
흥미로운 예능적 조합을 넘어 <냄비 받침>이 의미가 있었던 건, 그간 손혜원, 나경원이라는 정치인에 대한 '오해'를 넘어선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시간이었다. 

우선 김군자 할머니 장례식장에서의 적절치 못한 처신으로 문제가 되었던 손혜원 의원, 그 일에 대해 다른 사안에 있어서는 매사에 자신이 넘쳤던 손혜원 의원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무조건 '사과'를 했다. 자신이 순간 경계가 풀렸었다며 정치인으로서의 행보에 대한 반성과 어려움을 덧붙였다. 

그리고 그 날의 상황을 설명했다. 김군자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빈소에 사람이 너무 없었다고. 자신의 sns를 통해 급하게 요청을 했는데, 그 요청에 100 명이 넘는 분들이 와주셨다고. 그 분들과 함께 장례식장에서 상주처럼 분주했던 손의원. 이제는 지역구에 가면 아이돌급 인기인답게 내내 사진 한 장 찍다는 부탁을 받고, 내내 거절하던 손의원이. 늦은 밤 장례 일정을 마무리하고 너무 미안한 맘에 한 장 찍은 사진이 그만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고. 

사과는 사과대로, 하지만, 그 사과와는 별개로 그 날의 설명을 담담하게 한 손의원의 해명은, 분명 적적치 못한 행동이지만 아직 정치인 초년생의 그 해프닝을 이해할 터전을 만든다. 그런 손의원이기에, 그의 '닥치세요'라는 그 유명한 발언에, '오죽하면 그랬겠어요'라는 해명을 이해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어쩌면 8월 1일의 <냄비 받침>에서 오해를 넘어선 이해의 이득을 더 많이 본건 나경원 의원일지도 모르겠다. 늘상 '해'가 드는 곳에만 있는 '공주'같은 미모의 정치인, 심지어 표정 변화가 없어 '얼음 공주'란 별명까지 얻은 연륜의, 하지만 어쩐지 인간미가 없어보였던 이 정치인의 또 다른 면을 <냄비 받침>은 들춰낸다. 

사람들은 늘 '실세'라고 하지만, 자신은 그 누구의 세력이었던 적이 없던, '공주'라 하지만 '무수리'처럼 늘상 여당의 어려운 뒷설거지를 마다하지 않으며, 때론 패전장으로 잠시 정치의 무대를 멀리한 적도 있었던, 하지만 여전히 그의 근황이 뉴스꺼리가 되는 성실하고 진득한 직업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서로 다른 당에, 한 자리 하기도 힘든 초선과 다선이지만, 국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때마다 나경원 의원을 지켜보게 되었다는 손의원의 말처럼, 불통의 아이콘, 독불장군 노땅의 상징이 된 야당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보수적 신념에 따라, 하지만 '당명'에서부터 진솔하게 터놓고 고민하고,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노력하고자 하는 정치인의 모습은 '신선'했다. 

물론 이런 나경원 의원의 모습을 오랜 정치적 경험을 통과한 세련된 자기 포장이라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런 식의 평가는 반대당인 손의원의 진솔한 자기 표현 역시 그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당연히 예능이라는 '프레임'은 편집을 통해 제작진이 의도한 '사실'들을 선별적으로 전해주는 방식이다. 그건 '미디어'가 가지는 본질이다. 마치 사람들이 소주를 마시면서도 그 이름이 '참이슬'이라 하니, 이슬을 마신 듯 청량감을 맛본다고 느낌을 받듯이. 



예능판 <썰전>의 가능성을 잘 살려내길
하지만, 소주를 참이슬로 위로하듯, <냄비 받침>이 제시한 정치 예능은 '포장'을 넘어선 '정치적 마타도어'를 비껴간 그래도 진솔한 정치적 비젼들이다. 막말 선봉대가 아니라, 오죽하면 닥쳐가 아닌 그래도 존댓말인 닥치세요를 한 정치인의 모색과, 자기 당 의원들이 반말에 삿대질을 하는 상황에서도 표정 변화 없이 질끈 외면하고픈 정치인의 고뇌를 통해, 그래도 서로 최소한의 기본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에 대한 '의도성'말이다. 

설사 그것이 각자 자신의 한껏 치장된 정치적 수식어라 하더라도, 다음 국회의원을 위해 달리지 않고 이 정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문화계 적페 청산을 위해 한껏 타오르겠다는 초선 의원의 포부도, 젊은이들이 외면하는 내일이 없는 야당에서, 그래도 열심히 보수의 가능성을 지펴보겠다는 그 초라하지만 성실한 의도는, 이데올로기와 수식어를 제한 현실 정치의 이성적인 '전선'이다. 세상이 하나의 명쾌한 색깔로 정리되면 좋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대치된 전선'의 현실에서 마주친 '이성적인 모색'과 이해가능한 호감의 자리로서 <냄비받침> 손혜원-나경원 편은 유효하다. 

그리고 이런 예능판 <썰전>으로서 스스로를 자리 매김해 가는 <냄비 받침>의 성과이기도 하다. 이경규라는 '중용'의 미학을 통달한 mc의 균형추 아래, 여,야라는 현실의 가장 두 극단을 모아놓고, 각 정치인들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내공은 이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연다. 다행히도 어설픈 아이돌 탐구 생활의 끼얹음이 없으니 아이러니하게도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더욱 빛난다. 어설픈 책 출간이나, 냄비받침이라는 어긋난 네이밍이야 민망하지만, 그래도 모처럼 자리잡아가는 예능판 썰전의 기획을 잘 살려내길 바란다. 

그런데, 손혜원 의원의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국회의원이 됐지?라는 의아함처럼 이렇게 나와서 이성적으로 자기 생각을 풀어낸 정치인이 얼마나 있으려나 싶은 우려가 들기도 한다. 아니 뭐 꼭 정치인만 하라는 법은 없지 않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푸드 칼렄니스트 황교식 씨 등의 '사회적 자폐' 논란처럼, 우리 사회 함께 모여 생각을 나눌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겠다. 연예인의 신변잡기가 아니라도. 부디 이런 모처럼의 모색을 잘 살려내길 바란다. 

by meditator 2017. 8. 2. 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