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 안에 물을 붓고 개구리들을 넣어 놓은 뒤 불을 땐다. 개구리들은 어떻게 할까? 살기 위해 펄쩍펄쩍 뛰어 오를까? 답은 개구리들은, 서서히 덥혀지는 가마솥의 열기에 뜨거운 줄로 모르고 있다가 죽는다이다. 

이 우화적 문구는 <피리부는 사나이>10회에서 등장했다. 극중 윤희성(유준상 분)은 말한다. 대한민국이 바로 끓는 가마솥이라고,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서서히 덥혀지는 가마솥으로 인해 자신들이 죽는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고. 결국은 가마솥 안의 개구리들을 죽이고야 말 끓는 가마솥, 드라마는 대한민국을 그렇게 정의한다. 그리고 그 끓는 가마솥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하고자 한다. <피리부는 사나이>가 그렇다. 이제 4회를 맞이한 <동네 변호사 조들호>도 마찬가지다. 



뉴타운 재개발에서 외국인 노동자 임금 체납까지 익숙한 사회적 현실
<피리부는 사나이>에서 극을 이끌어 가는 주요한 갈등의 진원지는 k그룹의 철거 피해 현장이다. 철거민들이 강력하게 저항한 현장에 경찰들이 무자비한 진압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불길이 번져 철거민과 경찰 사상자가 발생했다. k그룹의 신입 사원이었던 주성찬(신하균 분)은 강제 진압의 불가피함을 설파했고, 그의 의견에 따라 강제 진압이 이루어 졌다. 그리고 그 진압 작전에 오정학 팀장(성동일 분)과 양청장(김종수 분)이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여명하(조윤희 분) 등은 가족을 잃었다. 이제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피리부는 사나이 윤희성도, 그리고 그의 하수인으로 피리부는 사나이로 수배를 받게 된 정수경(이신성 분)도 모두 그 강제 진압과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 

이렇게 극중 주요 인물들을 얽히고 설키게 만든 뉴타운 재개발 철거 현장은 시청자의 뇌리에 한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다. 바로 철거민과 경찰 사상자를 남긴 용산 철거 현장이 그것이다. 이렇게 <피리부는 사나이>는 인명 피해까지 생긴 용산 참사를 기본 얼개로 하여, 매회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끓는 가마솥같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10회 오랫동안 별러왔던 용역 우두머리를 죽이고 괴로워하는 정수경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피리부는 사나이 윤희성은 그저 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대한민국의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며 끓는 가마솥에서 죽는 줄도 모른 채 죽어가는 개구리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싸울 수 있도록 돕자며 정수경을 설득한다. 그리고 그들은 언더그라운드라는 사이트를 매개로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모집하고 그들로 하여금 마치 볏짚을 지고 불에 뛰어들듯 자신을 그렇게 만든 그곳으로 몸을 던지게 유도한다. 

9,10회에 등장한 사건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공장 점거와 인질 사건이다. 드러난 사건은 공장장을 비롯한 한국인 직원들을 볼모로 삼은 공장 점거이지만, 그 사건의 이면에는 수시로 때리고 모욕을 주는 인간 이하의 대우는 물론, 결국 임금까지 체불한 파렴치한 악덕 기업주와 그 하수인들이 있다. 뉴타운 재개발에서 부터, 외국인 노동자 임금 체납까지, <피리부는 사나이> 속 사건들은 이미 우리가 시사 다큐를 통해 익숙한 우리 사회의 사회적 현실이다. 



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영세 소상인들의 몰락
자신이 잘 나가던 검사 시절 대화 그룹 회장 아들이 벌인 사건인 줄 알면서도 검찰 수뇌부의 지시에 따라 덮었던 사건으로 인해 보육원 시절 동생처럼 강일구(최재환 분)가 죽고, 노숙자 변지식(김기천 분)이 살인범으로 몰리자,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노숙자로 살아가던 조들호(박신양 분)는 이제 다시 변호사로 법정에 선다. 

그가 변호해야 하는 변기식 씨는 설렁탕 집을 내고 가족과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지만, 장사가 잘 되자 집주인이 그들을 내모는 바람에 결국 가족과 헤어진 채 노숙자 신세가 된 사람이다. 그의 아들까지 증인으로 동원하여 진실을 밝히려 했지만 결국 1심에서 실패하고, 조들호는 방향을 바꿔 목격자인 치매 할머니를 등장시켜 항소심을 승리로 이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동내 변호사 조들호'란 간판까지 걸고 본격적인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렇게 동네 변호사가 된 그의 첫 사건은 모처럼 함께 회식을 하러간 감자탕집에서 시작된다. 

줄 서서 먹었다는 단골집이란 말이 무색하게 파리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감자탕집, 그곳에서 조들호 일행이 식사를 하려하자 집주인이란 사람이 빈 소주 박스를 말로 차며 시끄럽게 등장한다. 침을 찍찍 뱉으며 식탁에 발을 올리는 등 불손한 자세로 일관하던 그는, 이곳을 재개발하려 하니 얼른 집을 비우라고 독촉을 한다. 분개하는 감자탕집 아들에게 '임대자 보호법'까지 운운하며 법대로 하잔다. 이어 철거 용역까지 등장하고 이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조들호는 설렁탕집에 이어, 감자탕집 주인을 위한 본격 동네 변호사가 된다. 

4회 조들호 일행에게 밀린 가게 주인이 찾아간 곳은 뜻밖에도 조들호가 해결하지 못한 뺑소니 사고의 범인 정회장의 아들이 있는 룸싸롱이었다. 그는 그 일대의 가게를 모조리 사들여 또 하나의 '뉴타운'을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노숙자가 된 변씨도, 이제 조들호의 단골 감자탕집도, 그저 서민들이 열심히 땀흘려 노력해서 살려고 하는데, 좀 살만하게 놔두지를 않는 또 하나의 끓는 가마솥이다. 


<피리부는 사나이>나,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비록 경찰 위기 협상팀과 변호사라는 하는 일은 서로 다르지만 그들이 자신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끓는 가마솥같은 대한민국에서 서서히 목이 졸려가는 서민들이다. 가족과 함께 살던 터전은 빼앗기고, 그래서 가족들은 죽거나 뿔뿔이 흩어지거나, 심지어 범죄자로 몰리거나, 스스로 범죄자가 되어가는 대한민국 을들의 강팍한 현실을 드라마는 극의 주요한 갈등으로 끌어들인다. 거기에 한때 자신의 영달에 눈이 멀어, 애꿏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데 앞장섰던 '앞잪이' 노릇을 하던 주인공들의 '개과천선'이 더해져 정의의 싹이 핀다. 끓는 가마솥의 불길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각성과 위로를 주기 위해 드라마가 솔선수범한다. 

by meditator 2016. 4. 6. 0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