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의 후속으로 tvn의 금토일을 책임지는 <기억>의 반향은 미미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고로 먹는 것에서부터 화끈한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다짜고짜 잘 나가는 변호사 남자 주인공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소재는 그다지 동할만한 소재가 아니다. 거기다, 마치 시청자들에게 리모컨을 돌리라고 던져주기라도 하는 듯한 개개인의 표정을 들려다보는 듯한 느린 화면과 구성은 속도감있는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겐 참을 인자를 요한다. 박태석을 연기하는 이성민을 비롯한 배우진들의 연기는 매력적이지만, 그 매력을 견디기에 드라마가 짊어지고 가는 무게감이 녹록치 않다. 




질주하는 거리 위의 박태석
<기억>을 처음부터 본 시청자 중 눈 밝은 누군가 기억을 할른지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의 시작은 '거리'이다. 말 그대로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가 즐비하게 들어서있는 도시의 광활한 거리, 그 곳에 차들이 움직인다. 그런데 여느 드라마라면 그  도로를 채운 차들의 속도감을 잡았을 카메라는 <기억>에서는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분명 차들은 거리를 바삐 움직일 터, 하지만 그 움직임과 높은 빌딩은 그 자체로 이 도시를 그린 정물화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그 차들 속에 우리의 주인공 '박태석' 변호사가 있다. 그리고 드라마 속 그는 번번히 거리를 질주한다. 때론 바삐, 때론 기쁨에 들떠, 때론 분노하며, 그의 희노애락은 그 '거리의 도로'위에서 변주된다. 

즉, <기억>에서 이렇게 종종 잡히곤 하는 도시의 거리는 바로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한 단면을 상징한다. 저마다 바쁘게 차를 타고 움직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그것 자체로 하나의 대한민국을 드러내는 정물화와 같은 정경. 그 속에 번번히 차를 타고 움직이는 주인공 박태석은 우리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저 주인공 박태석이 매양 거리 위를 질주하는 바쁜 도시인이라서만이 아니다. 그의 면면이 수상하다. 그는 속물 변호사이다. 재벌 기업의 하수인이 되어 그 사위가 저지른 살인죄에 해당하는 의료 사고를 해결하기 위해, 그 사건을 폭록한 교수의 지병과 유학 간 딸의 숨겨진 약물 복용 사실까지 들추어 내며 '협박'하는,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탈 도덕적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반기를 든 젊은 변호사가 그에게 양심을 운운하지만, 그런 그의 도발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인물이다. 오히려 그 댓가로 받은 차를 타고 큰 소리로 승리를 자축하는 인물이다. 어느덧 성공을 위해 살다보니, 누군가의 목숨값에 무뎌져버린 박태석의 일상은 그걸 보는 갑남을녀의 가슴을 뜨끔하게 한다. 그를 바라보는 우리도, 부모의 원을 이루기 위해, 성공을 하기 위해, 어느덧 그처럼 무뎌져버린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처럼, 자신이 짓밟은 누군가의 진실보다, 지금 자기 앞에 던져진 새 차 앞에 환호작약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으니. 

그런데, 그에겐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그리고 그 어두운 그림자는 알츠하이머란 그의 병과 함께 자꾸 그에게 드리워진다. 바로 그가 잊고 살고 싶은 과거, 술만 먹으면 지금 자신의 아들인 정우를 동우라 부르며, 이젠 자신의 옛집을 찾아가는, 그 회귀의 기억말이다. 그의 외아들이었던 동우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뺑소니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고, 지금껏 그 범인을 잡지 못했다. 애지중지하던 외아들의 사고로 그와 전처 나은선(박진희 분)은 이혼을 하게 되었고, 태선 로펌과 손을 잡은 그는 재혼까지 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술과 병은 자꾸 그를 과거로 회귀시킨다. 



박태석을 통해 되돌아 보는 우리 
자신의 아이를 잃은 아버지, 하지만 그 과거를 잊고 성공을 위해 여전히 질주하려고 하지만, 알츠하이머란 병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평범한 한 가장의 비극사 같지만, 어쩐지 박태석이란 인물이 상징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는 세월호 등 우리의 숱한 아이들을 사고로 잃고도, 그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도 않은 채 여전히 성공과 발전을 향해 달려가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에게 찾아온 '알츠하이머'는 '성공'과 발전'을 욕구하지만 결국 주저앉아버린 작금의 대한민국을 또한 상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박태석에게 찾아온 '알츠하이머'는 그가 하늘에 대고 '나 한테 왜 이래요?'라고 원망을 쏟아내지만, 결국 '트라우마'를 삼키고 달려온 '성공'과 발전'의 '급브레이크'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은 <시그널>에 이어, 과거를 통해 현재를 되돌아 보는, 또 하나의 '반추'작이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지금까지 살아오던 대로 성공을 쫓으며 발전을 바라며 과거를 덮으며 살아왔던 우리를 과거에서 온 무전 대신. '알츠하이머'가 잡는다. 당신이 지나쳐 온 것을, 당신이 짓밟아 온 것을 다시 되밟아가라고. 
by meditator 2016. 3. 27.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