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찾는 사람들2(이하 웃찾사)> 의 한 코너 '굿닥터' 중에서,

연애 상담을 하려고 찾아온 남녀, 여자는 매사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남자에게 짜증을 낸다. 남자; 알았어, 알았어, 담배 끊을게
여자; 그래? 그러면 대신 사탕 먹어
남자; 사탕? 무슨 맛 먹을까?
주원 선생; 안됩니다. 안됩니다. 사탕은 안됩니다. (목소리가 바뀌며)사탕보다 달콤한 네가 필요해~
여자와 간호사, 동시에 격렬하게 환호하며 주원 선생에게 매달린다. 

(사진; tv리포트)

이 코너의 상황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여자와 남자는 동일하게 한국말을 사용하지만, 여자가 쓰는 한구말에는 통역이 필요하다는 것과,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이 쓰는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웃찾사>의 또 다른 코너, '내남자'는 남자들의 상황을 개그로 풀어낸다. 등장한 네 명의 남자들은 몸이 아프다며 누워있다. 친구가 만나자고 놀러 나가자고 해도 다 귀찮단다. 그러던 남자들이, 여자를 만나기로 했다는 소리에, 그 여자가 혼자 산다는 소리에, 벌떡벌떡 일어선다. 여기서 남자들은 오로지 '여자'와 그 여자와의 스킨쉽 등 맹목적인 메뉴얼에만 반응하는 외계에서 온 독특한 생명체이다. 

굳이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찾아보지 않아도 요즘 텔레비젼을 틀면 이렇게 서로 다른 별에서 사는 외계인같은 여자와 남자에 대한 담론들이 차고 넘친다. 개그 프로그램이라면 한 코너 이상은 여자와 남자의 다름에 대한 것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다. jtbc의 <마녀 사냥>은 아예 프로그램 내내 서로 다른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을 이루어 가는가를 놓고 진지한 토론을 벌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마녀 사냥>을 비롯한 프로그램들의 목적이 서로 다른 여자와 남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일 터인데, 보고 있노라면 여자나 남자를 이해하게 되기 보다는, 공부해도 늘지 않는 외국어처럼, 점점 요지경 속에 빠져버리는 느낌이다. 매주 나오는 다양한 사례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며, 여자와 남자는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라고 소리를 높인다. 과연 이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종족을 하나의 인간종에 묶어도 될까 라는 회의가 들 정도로. 

게다가 이해를 돕는다는 전제를 깔며, 오히려 차이를 부각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위에 제시한 예처럼, <마녀 사냥>의 패널들은 친절하게, 자기 여자 친구의 속마음을 몰라 우물쭈물하는 남자 상담자에게, 여성의 그런 반응은 이런 것이라면 친절하게 해석을 해준다. 그런데 그 해설이 더 오묘하다. 사탕을 주겠다는 여성의 속마음이 사실은 네가 더 달콤해 라는 대답을 원한다는 걸 이해할 남성이 몇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녀 사냥>이든, <웃찾사>나, <개그 콘서트>의 몇몇 코너들에서 등장하는 남녀의 모습이 점점 더 전형화되어간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웃찾사>의 '내남자'들처럼 앉으나 서나 한 가지 생각만 하고, 여자들은 호시탐탐 밀땅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난. 

'여성학'의 입문 과정에 전제로 깔리는 것이 있다. 실제 조사를 해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여성과 남성 간의 차이보다, 동성간, 즉 여성이면 여성, 남성이면 남성 간의 차이의 편차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방송 속 여성과 남성은 전형적이다. 최근, 저런 식으로 여성과 남성의 심리를 소재로 삼는 프로그램들은 더더욱 그런 경향이 강하게 부각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마녀 사냥>의 경우, 다양한 사례가 등장하기는 하기만, 거개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식이다. 

(사진; osen)

아마도, 차이가 더욱 부각되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과정의 맹목성에 있겠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이라는 동질의 감정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맹목적 열정이, 여자와 남자의 다름, 아니 기본적으로는 성의 차이가 아니라, 나고 자라나고 교육받아온 과정 속에서 빚어지는 인간적 차이를 고까워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리라. 
하지만 , 텔레비젼 속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들은, 지구별에서 함께 살아가야하는 인간의 다름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서로 다른 외계의 자기 별에만 머무르려는 이방인의 관점만을 부각시키는 듯하다. 그래서 보면볼수록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낯설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마치 수능 문제집을 더 많이 푼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따르듯, 남녀의 심리에 천착하게 된다. 

논어에 나오는 대표적 이념이 바로,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이 자구에 대해 신영복 선생은 다름을 인정하며 화합한다는 것으로 해석하신다. 그 말에 반대말이 동이불화(同而不和)이다. 남녀 관계도 결국 인간 관계다. 사실 가장 문제는 서로 다른 외계별에 살았던 과거가 아니다. 이제는 지구별에서 함께 사랑을 꾸려가야할 현재인 것이다. 다른 별의 언어는 제 아무리 독해를 해도, 외계어일 뿐이다. 그런데 남녀의 심리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은 시시콜콜 그 다른 외계어를 독해해주는데 골몰한다. 제 아무리 많은 문제집을 풀어도, 그것을 관통하는 원리를 꿰지 못하면, 조금만 틀어놓은 문제가 나오면 틀리는 건 당연지사다. 아니, 애초에 남녀관계가 서로 문제를 내주고 풀어보라는 식이어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by meditator 2013. 11. 23. 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