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들도 한때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여유롭게 직장 생활을 하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앞에서 방긋 속없이 웃음을 띠던 때도 있었으리라. 그저 그 '존재' 만으로 '누나'와 '누나'가 아닌 여성들에게 '기쁨'이 되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세월은 흘러 그들의 몸에 흐르는 남성 호르몬 테르토스테르몬은 존재를 '오욕'으로 물들게 하는 상징이 되었다. 한때는 '산업 역군'으로 대접받고, '아버지'라 인정받던 시대는 흘러, 이제 '숨만 쉬어도' '위협적인' 존재로 '치부'되는 시대에 머물게 되었다. '주역'이 '민폐'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주역인지도, 민폐인지도 모르고 세상의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존재만으로도 부담스러운 아저씨
그런데  '존재' 자체가 민폐가 된 시절에 그런 부담을 무릎쓰고 '아저씨'에 대해 이야기하는 드라마들이 있다. 바로 제목부터 아저씨인 tvn의 <나의 아저씨>와 sbs의 <키스 먼저 할까요>다.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이선균 분)과 <키스할까요>의 손무한(감우성 분), 그들은 외모부터 '남성적 매력'과는 담을 쌓았다. 희끗희끗해진 머리에, 심지어 코밑 수염조차 흰 가닥이 잡히는 그런 추레한 외양이다. 외양만 그런가, 번듯한 대기업에 잘 나가던 카피라이터에, 최고 실력의 건축사였던 적도 있었지만, 이젠 스스로는 광고를 만들지 않은 채 아날로그한 소품에 집착한 잔소리꾼에, 한직인 구조기술사로 조직의 그늘을 자처하며 버티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키스할까요>의 손무한은 췌장암 말기에 살아갈 날조차 얼마 남지 않았다. 



늙수그레한 박동훈과 손무한, 남성이라기 보다는, 아저씨란 중성적 단어가 더 어울리는 이 연배의 남자들은 공히 그 세대 남자들의 표상과도 같다. 한때는 공부 좀 한다 하여 대학을 잘 갔을 터이고, 그래서 남들 보란듯한 '기업'의 일원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꽃이 붉어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던가, 한때는 대학에 입학했다고 빵빠레를 울리던 그 시절도, 혹은 연인의 가슴을 설레하던 그 훈훈했더 매력의 시기도, 그리고 열렬한 사회인으로서의 열정도 이젠 그들에겐 역사가 되고, 그들은 '징역'을 살듯 현실을 견뎌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견뎌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들이 '보신'의 차원으로 자신을 남겨두었던 '조직'이 이제 그들의 목덜미를 잡는다. 대학 후배가 대표 이사 자리에 오르고, 설계팀에서 밀려 그런 후배의 승승장구를 보며 잘 나가는 변호사인 아내는 대놓고 무사안일(?) 한 박동훈에 대해 환멸을 표시하지만, 그래도 박동훈은 그저 '별일 없이 산다'했다. 하지만 그가 '내력'의 증거로 삼아 달리기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뽑은 이지안(아이유 분)과 돈봉투로 인해 얽히고 전혀 엮이고 싶지 않은 사내 정치의 중심으로, 그리고 아내의 불륜에 휘말려 들어가며 그의 삶은 본의 아니게 격전지가 되고 만다. 

트렌디의 상징으로 귀걸이를 하며, 지구 위의 우주인이라며 스스로 자부심이 우주를 향해 치솟을 때까지만 해도, 활자화 된 그 책이 책상 서랍 안에 자물쇠를 잠가 숨겨놓아야 할 오욕의 상징일 줄 몰랐다. 하지만 6년 전 비행기에서 만난 한 여성, 아니 10년이란 세월을 직조하며 얽혀든 안순진(김선아 분)와의 '악연'은 그로 하여금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온전히 부정하도록 만든다. 

박동훈과 손무한, 두 사람은 우리 시대 '아저씨'들의 성공적인 삶이었을 것이다. 대학을 나오고, 잘 나가는 직장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는 중산층 남자들의 그러그러한 삶의 모습들이다. 그런데, <나의 아저씨>와 <키스 먼저 할까요> 두 드라마는 우리 시대 성공적인 아저씨의 삶, 그 성공이라 썼지만 신기루처럼 날아가버린 '산업 사회의 성공담'을 해체해 버린다. 

조직의 일원으로, 조직에서 시키는 대로 자신의 맡은 바 책무를 다하면 자신의 성공은 물론,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도 번듯하게 살아낼 수 있었을 것 같던 삶, 그러나 '조직'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아 버리듯, 별일 없이 살고 싶었던 박동훈을 변방으로, 변방으로 밀어버린다. 심지어, 사내 정치의 젯밥으로 써버리고, 불륜을 핑계로 희생양을 만들고자 한다. 그의 버팀목이 될 아내도, 부하 직원들도 막상 벼랑 끝에 선 그에겐 등을 돌린다. 

카피라이터로서 그의 성공담의 사례가 된 광고는 그가 저지른 사회적 부도덕의 상징이 되었고, 그 부도덕한 상흔은 그의 몸조차 좀먹어 들어갔다. 광고주는 그에게 협잡의 손길을 내밀었고, 그래서 그는 더 이상 광고쟁이로 살아갈 수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도피라고는 스스로 직접 광고의 피를 묻히지 않는 소극적 저항정도. 



아저씨를 통해 던진 산업사회 대한민국에 대한 질문, 그리고 회자정리 
결국 이들의 실패는, 자본주의의 고도 성장의 논리로 달려온 한국 사회에 대한 질문이 된다. 조직의 일원으로 그 논리를 내재화하여 버텨온 이들이, 성공의 정점에 이를 나이에, 스스로 반문하고, 회의하며, 조직에서 버림받거나, 조직으로부터 스스로 분리하는 이 과정은, 결국 '조직'맨으로 살아왔던 우리 시대 '아저씨'들의 '업보'다. 또한 무너진 중산층의 현실에 대한 조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와 <키스 먼저 할까요>는 그저 아저씨들의 한풀이에 머물지 않는다. 드라마는 그들의 '회자정리'에 주목한다. 그 시작은 중반부를 돌아선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의 손무한이 앞선다. 그저 중년의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던 손무한과 안순진의 사랑 이야기는, 기꺼이 그 '업'을 품에 안은 손무한의 순애보로 전개된다. 손무한은 말한다. 6년전 만났던 안순진의 눈물이, 매번 만날 때마다 울고 있던 그녀가 손무한을 적셔서, 나비의 날개짓처럼 손무한을 변화시켰다고.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카피라이터 손무한은 그의 전재산을 결혼이란 과정을 통해 대기업과의 재판에서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잃은 안순진에게 의탁하고, 그녀의 재판에 유일한 증인으로 서고자 하는 것으로 자신의 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박상무에게 잘못전달된 돈봉투를 보고, 어머니가 말한 형의 사업 자금때문에 잠시 흔들렸던 대가로 혹독한 회사 내 검증을 치웠던 박동훈은, 여전히 아내와의 불륜으로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은 도준영(김영민 분)의 도발에 응전한다. 비록 그 시작은 비겁한 통화 목록 조회에서 부터이지만, 그는 더 이상 '변두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응전은 이제 시작이다. 

그렇게 손무한과 박동훈이라는 아저씨의 회자정리가 된 드라마가 새삼스럽게 우리 사회 아저씨에 대한 미화라 불편할 건 없을 듯하다. 그들은 주역이었지만, 그들 또한 '희생양'이었으니, 그러기에 이지안과 박동훈이 동지가 되고, 손무한과 피해자 안순진은 손을 잡을 수 있다. 아저씨는 불편하지만, 그들 역시 이 사회의 무기수로서 그들의 존재는 갸륵하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는 희생양이었지만 조력자였던 그들의 '책임'에 대해, '도덕'에 대해 천착하고 있으니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볼만하겠다. 부정할 수 없는 한 시대의 표상의 회자정리에 시간을 허락해 줄만도 하지 않은가. 

외려 안타까운 건, 아저씨란 이름으로 복기되는 중산층이란 한정성이다. 이제 우리 드라마에서 봉제공장 재단사였던 <바보같은 사랑>의 전상우를, <유나의 거리> 속 창만이 깃들어 살던 다세대 주택의 아저씨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나의 아저씨> 속 이제는 한량이 되어버린 놈팽이 아저씨들도 알고보니 한때는 대학 나와 번듯한 직장에서 한 자리씩 했다던 그 알량한 설정의 계급적 한계야 말로 어쩌면 정말 안타까워해야 할 지점이 아닐까. 

by meditator 2018. 4. 13. 1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