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3월 16일부터 mbc를 통해 방영한 <굿바이 미스터블랙>이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순정 만화 작가인 황미나 작가의 초기 작품으로 이제는 그 이름만으로도 추억이 된 <여학생> 잡지에 1980년대 초중반에 연재되기 시작한 작품이다. 


만화 원작은 1800년대 인도를 배경으로 한다. 세포이 항쟁에 가담으로 몰락한 가문의 아들 에드워드 다니엘 노팅 그라함이 주인공으로, 호주에서 영국으로 이어지는 그의 유배와 복수를 위해 자신의 신분을 숨긴 그의 기구한 행적은 알렉산드로 뒤마의 <몬테 크리스토 백작>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한 청년의 운명적 삶을 그린<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모태로 하여 19세기 식민지를 경영하던 대영제국을 배경으로 창작된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이제 21세기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새로운 드라마로 탄생된다. 



황미나의 원작보다 문희정의 그림자가 짙은 
만화계의 대모 황미나 작가의 작품이고, 식민지 시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드라마로 돌아온 <굿바이 미스터 블랙>에서는 만화의 근간이 되었던 한 청년, 그리고 그의 가족의 비극적 운명은 그대로 담아내지만, 원작의 향내를 쉬이 맡을 수 없다. 오히려, 첫 회부터 남자 주인공 차지원(이진욱 분)보다도 강렬하게 존재감을 드러낸 그의 친구 민선재(김강우 분)을 통해 이 작품이 문희정 작가의 작품이라는 각인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문희정 작가는 2014년 <기분 좋은 날>, 2009년 <그대 웃어요>, 2008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등의 가족극으로 정평이 나있는 작가이다. 하지만, 이제 <굿바이 미스터 블랙>을 통해 문희정 작가를 복기하려면 이들 가족극보다는, 2011년 <내 마음이 들리니>, 2012년 <보고싶다>의 작가을 살펴보는 것이 정확하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 첫 회, 선우 건설 회장 아들이자 해병 특수 부대 장교인 차지원의 매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드라마는 바로 그의 친구이자, 그의 아버지 품에서 자라난 민선재의 어두운 그림자와 욕망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교도소를 나와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를 미친 사람이라며 외면했던 어린 시절, 늘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선우 건설의 아들 차치원에 대한 열등감을 숨기기 위해 해병에 입대했지만, 자신을 따라온 차지원에게 군대에서 조차도 늘 2인자가 되어야 했던 민선재는 결국 아버지를 핑계로 자신을 최고로 만들어 줄 수 없었던 군을 떠난다. 지원 부의 배려로 선우 건설에 입사한 그, 지원 부는 지원 동생의 배필로 그를 흡족하게 바라보지만, 민선재의 억누를 길 없는 욕망은 백은도(전국환 분)의 마수에 기꺼이 영혼을 팔아넘기는 처지가 된다. 

악을 통해 선을 설득하다. 
마치 카인과 아벨처럼 태생적으로 다른 듯한 두 사람, 하지만 드라마의 동인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악의 영역인 민선재, 그의 욕망과 그를 조정하는 백은도의 숨겨진 야망이다. 그리고 이것은 문희정 작가가 미니 시리즈물에서 즐겨 해오던 전개 방식이기도 하다. 

2011년작 <내 마음이 들리니> 바보 아빠와 청각 장애인 새 엄마를 부끄럽게 여긴 영리한 소년 마루(남궁 민 분)는 자신의 가족을 버리고 동주(김재원 분)네 집으로 들어가 의붓 형 장준하로 살아간다. 동주에겐 수호천사 같은 형처럼 보이지만, 늘 그는 청각 장애를 가진 동주를 향한 연민과 부유하고 선한 동주를 향한 질투 사이에서 고뇌한다. 그런 그에 비해 주인공 동주는 후천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태생적 선함을 숨길 수 없는 사람, 드라마는 당연히 자신의 신분을 버린, 숨긴 마루의 얽힌 인연으로 풀어진다. 

2012년작 <보고싶다>도 그리 다르지 않다. 열 다섯 어린 시절 뜻하지 않은 사고로 헤어진 두 남녀의 14년의 순애보를 그리려 했던 드라마였지만, 정작 극은 14년의 순정을 저돌적으로 표현해낸 '미친 토끼' 한정우(박유천 분)의 상대편에, 그가 그토록 찾아헤맸던 이수연(윤은혜 분)대신, 그와 삼촌조카관계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어린 의붓 동생,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를 빼앗기고 평생 다리를 절게 된 강형준(유승호 분)을 등장시킨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보기 드물게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삼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스하게 다루려 했던 <내 마음에 들리니>, 그리고 역시나 성범죄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최초의 사회적 멜로를 시도했던 <보고싶다>였지만, 애초의 의도는 매력적인 악역에 대한 천착으로 신음하며 드라마는 애초의 주제 의식을 상실한 전례가 되었다. 

문희정 작가의 이런 전개 방식은, 최근 <용팔이>, <가면>, <리멤버> 등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가 답습한, 악역의 향연을 통해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방식이다. 매력적인 악역, 그의 진기명기한 악행, 심지어 그런 그에게 사연마저 있다면, 드라마는 저절로 자기 동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비록 2회에 불과하지만, <굿바이 미스터 블랙> 역시 차지원 일가의 불행은 고스란히 민선재라는 인물의 욕망과, 그로 인해 배태된 배신으로 시작된다. 드라마는 선과 악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거기에 심지어 민선재의 어두운 욕망은 충분히 개연성마저 드러낸다. 작가가 전작을 통해 보여주었던 장기가 십분 발휘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부디 이번에는 선을 무력화시키지 말고, 비록 악에 의해 잉태된 선과 그의 복수일 망정, 충분히 그 진가를 발휘하기를 기대해 본다. 
by meditator 2016. 3. 18. 05: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