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의 <굿닥터>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예언자가 되어간다. 

월요일 방영 중반 차윤서(문채원 분) 선생이 모처럼 노는 날 어디에 가고 싶냐는 질문에 박시온(주원 분)은 동물원에 가고 싶다고 대답한다. 
당연히 차윤서와 박시온은 동물원에 놀러가고, 거기서 차윤서는 수의사가 되어도 좋은 만큼 동물의 마음을 읽는데도 탁월한 박시온의 능력을 알게 된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회분 방영 말기, 등장하는 환자가 개들 사이에서 방치되어 길러진 '늑대 소녀'였다. 물론 강력한 진정제 말고는 제압할 수 없는 그 늑대 소녀를 환자로 제대로 대우하는 것은 박시온 뿐이다. 



<굿닥터>를 보다보면 어떤 장면이 나오거나, 혹은 누군가 등장하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되겠구나 예측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드라마는 십중팔구 그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을 최고로 만들겠다는 약혼자 채경에게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좀 이해해 주면 안되겠냐고 말하던 김도한은 채경이 기다리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호, 혹시 차윤서를 불러내는 거 아냐? 하니 아니나 다를까 차윤서를 불러낸다. 그러고는 채경이 그토록 궁금해 하던 자신의 속 이야기, 자신의 정신지체3급 동생이 자기로 인해 죽게 되었다는 자신의 죄책감을 털어 놓는다. 박시온이 차윤서를 만날 때마다 딸국질을 해대는 것에 버금가는 노골적인 속내다. 
어디 그뿐인가, 박시온의 엄마가 등장하는가 싶더니, 역시나 병원 드라마답게 아파서 쓰러진다. 그것도 차윤서와 박시온 앞에서, 게다가, 엄연히 맡은 과가 정해져 있는 종합병원임에도 소아외과 차윤서가 차트를 들고 그녀를 담당한다. (바로 지난 주 다른 과 환자를 데려갔다고 멱살잡이를 하더니 말이다) 그리고 엄마의 사연을 가장 박시온을 안쓰럽게 여기는 차윤서가 알게 된다. 병원과 엄마의 전형적인 클리셰이다. 

<굿닥터>를 보고 있노라면 신선한 줄거리가 아니다. 어디서 한번쯤 보던 것이나, 혹은 '늑대 소녀'처럼 충격적이어 보여도. 그로 인해 박시온이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고, 또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다음 이야기가 예측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도, <굿닥터>는 재미있다. 그건 뻔한, 혹은 예측 가능한 이야기들이 <굿닥터>를 이루는 하나의 씨실이라면,  그 씨실을 얽어가며 그림을 만들어 내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주는 재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 캐릭터들이 어느새 공감을 얻어가며 '내' 사람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굿닥터>에서, 말 그대로 좋은 의사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세 사람이다. 
대표적으로 드러난 것은 서번트 증후군으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 생활을 하기엔 많이 부족해 보이는 박시온이다. 그의 의사로써의 재직 자체가 병원 원장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만큼, 장애인의 경계에 서있는 박시온 선생은 말 그대로 화약고이다. 이 드라마의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그로 인해 생겨나고, 그로 인해 해결되는 말 그대로 좋은 의사의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은 존재다. 
그런데 분명 20일자 엔딩에서처럼 자신의 환자를 위해서라면 그 옆의 경호원을 밀치고 나자빠지게 할 만큼 맹목적이고 불온한 박시온이지만, 작가의 인터뷰에서 보여지듯이, 포레스트 검프처럼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그는 나타난 결과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매력을 내보이고 있다. 맹목적인 그의 행동들이 체계와 시스템에 억눌린 요즘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힐링'이요, 때로는 눈치없이 내뱉는 그의 말들이 속시원하기 까지 하다. 


하지만, 박시온은 아직 절름발이다. 그만으로는 좋은 의사와 의학 드라마는 완성되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그를 성장시켜 줄 '멘토'이다. 
처음에 최우석 원장(천호진 분)이 그를 데려왔을 때, 그가 박시온의 멘토일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 외로 회를 거듭하면서, 박시온의 뒷치다꺼리를 하고 있는 것은 정작, 그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김도한 선생(주상욱 분)이다. 
차윤서에게 고백한 것처럼, 자신의 섣부른 욕심으로 인해 동생을 홀로 거리로 내몰아 교통사고로 죽게 만든 김도한 선생은 박시온에게 섣부른 기회를 주는 것보다, 그를 제 자리로 돌려 놓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다. 동생 때문에 훌륭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적자인 소아외과에 남아있는 김도한은 박시온을 볼 때마다 동생이 떠올라 힘들어 한다. 
그럼에도 무능력한 과장 아래 김도한은 소아외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 위치이고, 본의 아니게, 박시온의 일들을 수습하게 되고, 묘하게도 박시온에게 기회를 주기도 하고, 봉쇄하게도 되는 긴장감있는 '멘토'의 위치에 놓인다. 
<굿닥터>라는 드라마가 기존의 드라마와 다른 매력을 가지게 된 것은, 서번트 주인공인 박시온이 주인공인 것도 있지만, 거기에 덧붙여, 주인공인 박시온에 적대적이면서, 그에 대해 애증을 지니는, 그리고 위치상 멘토가 될 수 밖에 없는 애증의 인물 김도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도한은 김도한 자체로 늘 병원을 집어 삼키려는, 혹은 의료 행위를 입신 양명의 수단으로만 삼는 세력들에게 비타협적이다 못해 적대적이면서, 자신의 직업의 이유를 자부심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념이 뚜렷한 정의로운 존재이자, 그 자신의 사연때문에, 입장 때문에 박시온과 대립하는 양면성을 지닌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시청자들은 어느새 사건만 생기면 그의 눈빛과 안색을 살피게 되어 버렸다. 
<굿닥터>는 말 그대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성장담을 다루는 이야기이고, 거기에서 외면적으로 드러난 성장담이 박시온이 의사가 될 수 있는가 여부이지만, 사실 드라마 속에서 많은 것들을 해결하며 고뇌하는 실질적 견인차 역할은 김도한에게 맡겨져 있다. 그의 선택, 그의 의지에 따라, 박시온을 비롯한 드라마 전체가 요동친다. 

김도한이 궁극의 해결책을 쥐고 있는 결정적 멘토라면, 차윤서는 그 자신이 때로는 김도한의 표현처럼 박시온처럼 의지만이 앞서는 맹목적이고 불완전한 펠로우 2년차이면서, 또한 어린 아이 같은 박시온을 곁에서 보살피고 도와줄 수 있는 실질적인 멘토이다. 박시온이 하는 모든 일에 끼어서 때로는 그를 꾸짖고, 때로는 그를 편들며서, 그리고 그런 박시온을 보면서 의사로서의 자신을 투영하고 반성하며 커나가는 중간적인 존재이다. 

<굿닥터>는 박시온이라는 어찌보면 그저 선명한 하나의 빛깔 밖에 없는 캐릭터를 그보다 조금 성숙하지만 아직은 여전히 박시온같은 차윤서와, 보기엔 냉철한 이성밖에 없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배려하고 그로 인해 고뇌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김도한이란 캐릭터로 두텁게 덧칠해 간다. 그리고 이 세 사람 모두가,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응원하고 싶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굿닥터>가 예측 가능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골든 타인>을 제외한 많은 드라마들이 병원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에 발목을 잡혔던 전례를 <굿닥터>가 극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미 차윤서만 보면 딸국질을 하는 박시온에, 약혼자 대신 차윤서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김도한을 보면 그런 바램은 불가능할 듯 하지만, 사랑 이야기에 발목잡히지 않는 좋은 의사들의 성장담을 보고 싶다.  


by meditator 2013. 8. 21. 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