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흔히들 '철이 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철이 든다해도 삶을 모두 '조련'할 수는 없는 법, 흔히 '사랑'을 '교통사고'에 비유하듯이 자신의 마음에 휘몰아쳐 들어온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은 제 아무리 어른이라도 불가항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른이기를 포기해야 할까? 아니 어쩌면 거기서부터 진짜 어른이 되는 시험대가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이기에 '실수'를 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해 책임지려 하는 것' 그게 바로 어른이다. '어른'과 '아이'가 구분되기 힘든 세상에, 아니 오히려 '어른'이라서 더 제멋대로 하는 것이 용인되는 세상에서, 11월 10일 종영한 <공항 가는 길>은 '어른'으로서 사랑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즉히, 하지만 꿋꿋하게 전했다.

공항 가는 길ⓒ kbs2
어른도 사랑 앞에는 어쩔 수 없다. 
서도우(이상윤 분)와 최수아(김하늘 분)는 그렇게 만났다. 애니 아빠와 효은이 엄마로, 각자 가정을 가지고, 자신의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로, 그리고 그 아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고뇌 속에서 두 사람은 접점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로 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서도우'가 아이를 잃음으로 인해, 그리고 최수아는 그런 서도우를 보고, 아이를 되찾음으로 인해, '유대'가 깊어졌다. 자식을 잃었지만, 그 아픔을 아내와 나눌 수 없는 아빠, 그리고 아이의 행보를 둘러싸고 남편과 소통불능인 아내, 두 사람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서로에게서 대번에 '영혼의 단짝'임을 느꼈던 것과 달리, 두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가정'이란 곳은 매번 두 사람과 파열음을 낸다. 그렇게 소외된 가정과 달리, 눈빛만으로도 이해가 되고 마음이 전해지는 두 사람은 결국 '삼무' 사이도 무색하게 '사랑'의 선을 넘어 버린다. 책임감있는 존재로 살아왔던 세월이 무색하게.

흔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이젠 '범사'가 된 불륜, 하지만 그래서 더 '터부'시 되는 불륜을 그려내는 tv는 말 그대로 '미친 년, 미친 놈'식이다. '눈이 뒤집혀' '가정'따위는 '내팽개쳐두고', '뺑소니'를 쳐버리는 몰상시한 인간들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그런 묘사 방식은 그 예전에 머리에 빨간 뿔이 난 식으로 반공 포스터를 그리던 방식과 다르지 않다. 여전히 '감정'을 가진 인간을 '제도' 속으로 꾸깃꾸깃 밀어넣는 식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냐고, 이혼율 1위의 국가, 이즈음에는 그저 '바람'이란 관점을 넘어, '어른들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시점에, <공항 가는 길>은 바로 그 지점을 살핀다.

그 누구보다 가정적이며, 아이를 생각했던 두 남녀가, 뜻하지 않은 아이의 죽음을 통해, 각자 자신이 관행적으로 지켜왔던 '가정'으로부터 튕겨져 나온다. 그리고 그 튕겨져 나온 황량한 들판에서 만난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이성, 역시나 그들도 여전히 피가 흐르는 인간이기에, '사랑'하고 만다. 만나지 말자, 만지지도 말자, 바라지도 말자, 라고 애를 쓰지만 그게 '남녀 상열지사'에서 무기력한 공약이란 걸, <공항 가는 길>은 내숭으로 덮지 않는다.

공항 가는 길ⓒ kbs2
오히려 다짐하면 다짐할 수록 다가서고, 의지하고, 결국은 하룻밤까지 보내게 된 두 사람, 하지만 그 교통사고 같은 사랑 이후에, <공항 가는 길>이 멋졌던 것은 두 사람이 자신들이 저지른 일, 자신들이 가진 감정에 대해 '솔직'하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에 대해 두 사람은 비겁하게 둘러대지 않는다. 흔히 한국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길고 장황한 부정기 대신, 두 사람은 솔직하게 감정을 인정한다. 이런 두 사람의 감정은 자신의 아이조차 부득불 부정하려 애썼던 도우의 아내 김혜원(장희진 분)과 끝까지 아내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는 박진석(신성록 분)의 감정적 도피와 대별된다.

불륜을 책임지다?
또한 그 감정을 핑계대지도 않는다. 아내 때문에, 남편 때문에 라고. 오히려 그럴 수록 자신이 속한 가정과 '사랑'을 불리하려 애쓴 두 사람, 하지만 두 사람의 '눈맞음'의 시작이 애니 아빠, 효은 엄마였듯이, 이미 두 사람의 가정은 이제 두 사람에게 더 이상 '안온한 즐거운 나의 집'이 아니다. '흔들렸던 가정'으로부터 '사랑'이 왔는지, '사랑'으로 인해 '흔들린 가정'이 더 흔들리게 되었는지, 불분명하다 핑계댈 만도 하지만, 두 사람은 냉정하리 만치 서로의 사랑과 자신의 가정 문제를 분리하려 애쓴다.

그렇게 각자 자신의 속한 삶에서 각자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던 두 사람, 하지만 그 해결의 귀결지 제주에서 다시 해후하고, 이젠 '운명'이 되어버린 사랑을 직감한다. 여기서 '제주'는 그저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휴양지가 아니다. 서도우란 사람이, 그리고 최수아란 사람의 인생 여정의 자연스런 귀착지이다. 두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생각하는 취향의 공통분모랄까. 희희낙락 사랑의 도피처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먼 두 사람, 서도우가 어머니를 보내고, 아내까지 보내고 최수아의 곁으로 가려하지만, 이번에는 최수아에게 시간이 필요하고, 결국 마지막 회 겨우 한 10분을 남기고서야 두 사람은 비로소 다시 공항에서 만날 수 있었다. 혹자는 결국 '불륜' 남녀가 다시 만나기 위한 요식 행위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요식 행위'라 치부하는 그걸 다른 말로 돌려 말하면 '인간으로서의 예의'가 아니었을까? '감정'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저질러놓은 관계들에 대해서도 무책임하려 하지 않는, 이 아이러니해 보이는 책임 의식이, 그래도 교통사고같은 유부남, 유부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책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최선을 다한 두 사람의 '책임 의식'으로 인해 가정은 무너졌지만, 두 사람이 맺은 관계가 주저앉지는 않았다. 여전히 수아의 딸 효은은 엄마처럼 살겠다 하고, 이제서야 도우의 아내도 자신이 머물 곳을 찾았다.

공항 가는 길ⓒ kbs2
그 예전, 그리고 여전히 아직도 결혼식장에서 주례 선생님이 말씀하시듯이,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살아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과연 '자신'을 지워가면서, 아이를 위해 희생하면서 살아내야 하는 '결혼'이 이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이란 전제 속에서 <공항 가는 길>은 새로운 사랑에 눈뜬 두 남녀가 겪어야 할 과정을 차근차근 살펴나간다. 감정과 감정 이후의 관계, 그리고 두 사람을 둘러싼 상황, 그리고 그것에 대해 책임과,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 등등, 그걸 16부작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드라마는 차분하게 생각하도록 한다. 그래서 '불륜'이라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뜨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가장 사변적인, '감정'을 핑계대지 않는  그래서 '환타지'가 된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가 되었다. '사랑'이 '소유'가 아니고, '사랑'이 '배려'라는 스산한 가을을 데워줄 화두를 띄우며.

*어른들의 사랑을 그려낸 <공항 가는 길>을 더 분위기 있게 만든 건 또 다른 주인공 같았던 배경이다. 공항, 서울, 그리고 제주, 그 흔한 공간이 이리도 아름다운 곳이었던가 라는 감탄이 아놀 정도로, 마치 갑남을녀 중 서도우와 최수아가 서로 영혼의 눈을 뜨듯 그렇게 우리가 몸담고 사는 공간이 새로운 이름으로 다가온다. 보너스처럼. 어른들의 사랑만큼, 어른스런(?) 공간이 감사하다. 

덧붙

by meditator 2016. 11. 11. 0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