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사피엔스>에서 농업 혁명이 일어나기 전 원시 인류 사피엔스는 무리의 가운데에서 살며 평생 '고독'과 싸울 일이 없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무리와 함께 이루어지며, 개인의 삶이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 하지만 인류는 그런 '환상적'인 공동체를 시절을 두고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 비대해진 사회 속 원자화된 개인으로 홀로 '고독'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처지에 이르렀다.바로 그 '원자화된 개인'이 처한 '관계'의 문제를 kbs2의 2부작 드라마 <개인주의자 지영씨>가 전면에 내세운다. 




고독에 대처하는 두 가지 자세
드라마는 대비되는 두 남녀의 캐릭터를 시끌벅적하게 내세우며 시작한다. 한 오피스텔에 잇닿아 있는 704호와 705호 그곳엔 번호만 다를 뿐 똑같은 구조의 집과 달리,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산다. 간호사로 일하는 나지영(민효린 분), 그녀는 극단적 개인주의자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인주의를 넘어 '인간, 관계 혐오주의자'같다. 심지어 살아있는 모든 것과 혹시라도 연이 닿을ㄲ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녀가 매달리는 건 정신과 의사, 매번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잠을 들 수가 없다며 좀 더 강한 수면제를 요구한다. 

그런 그녀의 옆집에는 그녀와 정반대로 찰거머리처럼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박벽수(공명 분)가 있다. 알콩달콩 연애를 하는가 싶더니 그의 여친은 그가 자신을 외로움을 피하는 도구로 여긴다며 실랑이를 벌이다 경찰서를 갈 정도로 그에게 진절머리를 치며 떠난다. 그가 친절하게 대하는 회사 동료들, 친구들은 하지만 그런 그를 웃긴 진상 취급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 먹는 대상으로 취급해 버린다. 

잠시 사귄 애인들과의 격한 이별 의식으로 경찰서에서 조우한 두 사람, 이후 그들은 각자의 성격답게 치근덕거릴 정도로 관심을 가진 벽수씨와 그런 벽수씨를 치한보듯 멀리하는 옆집 여자로 자꾸 부딪친다. 그리고 그 부딪침은 일련의 연애 드라마 방식의 싸우다 정들고 연애하는 이야기로 전개되는데.

드라마는 '혼밥족'이 대세가 된 젊은이들의 연애 생태계를 그린다. 하지만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 그 '혼밥족'이 된 젊은이들이 '마음'을 들여다 본다. 극단적으로 캐릭터화 했지만 '관계'로 부터 받을 상처가 두려워 '관계'를 거부하는 지영과 그 '관계'로 부터의 단절이 두려워 '좋아요'를 구걸하며 기꺼이 '봉'이 되는 벽수의 모습 중간 그 어디쯤에 이 시대 청춘들의 고민이 들어서 있을 듯하다. 



고독 증후군, 그 발원지는?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드라마가 그려내고 있는 '관계'로 고민하는 청춘들의 '발원점'이다. 이들의 양상을 달리하지만 결국은 '관계 공포증', 혹은 '고독 증후군'을 빚어낸 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여전히 떠받들고 있는 '가족'이라는 것이다. 

지영은 8살 무렵 아버지와 싸우는 엄마의 입을 통해 자신을 가지지 말았어야 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녀가 8살 이래 집을 떠나올 때까지 매번 아버지와 싸울 때마다 그 말을 되풀이 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부부'로 살았지만, '가족'이란 이름 아래 그녀를 방기했고, 정신적으로 학대했다. 그녀가 스스로 집을 나올 때까지. 벽수라고 다를까. 입양아인 그는 한번의 파양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새로 입양된 집안에서 자신에게 가하는 노골적인 차별을 감내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학대에서 도망친 지영과 가족이란 울타리를 지탱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은 벽수. 그런 두 사람이 '가족'이란 제도 속에서 받은 상처는 고스란히 이제 '혼밥족'이 된 그들의 삶을 규정한다.

드라마는 말한다. 이 시대의 고독한 청춘들, 그러나 그 '고독'의 발원지는 해체되어 가고 있는 가족이라고. 청춘은 그 '가족'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지만, 거기서 받은 자신이 책임질 필요가 없는 '트라우마'로 인해 현존재의 삶조차 규정받고 있다 말한다. 우리 시대가 여전히 신봉하고 있는 가족주의가 가진 발톱을 드라마는 유리처럼 여린 청춘들의 자기 방어적 기제를 통해 드러낸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사회에서 가족은 우리 사회에서 개인에 대한 전면적인 '보호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지듯이, 그 '보호자'인 가족은 동시에 언제나 '가해자'가 될 수 있을만큼 자의적인 구조이다. 개개인의 불투명한 가족애와 의지에 맡겨진 가족이 그 속에 힘없는 존재에게 얼마나 가학적일 수 있는가를 드라마는 증언한다. 젊은이들치고 '가족'에 대한 고민 한 자락없지 않은 이 시대의 풍경의 상징적 묘사다. 

물론 드라마는 그런 두 사람의 상처를 '로맨틱하게. 사랑과 이해의 '관계'를 통해 치유해간다. 그 흔한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사랑으로 인한 상처는 사랑으로.라는 상투적 슬로건처럼. 애초에 704, 705호의 옆집에 가장 양 극단의 캐릭터를 가진, 그러나 동일한 가족으로 부터 받은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살게된다는 상투적 설정은 그렇게 당연히 로맨스 드라마의 정석에 맞추어 결론이 난다. 

그러나, 그런데도 어쩐지 너무도 현실적이었던 벽수와 지영의 캐릭터 덕분일까. 그들이 때론 막무가내로, 때론 조심스레 서로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로맨스 드라마의 훈훈함 이상 마음을 덥힌다. 마치 빗속에 거리의 고양이들이 서로 몸을 마주대고 그 온기로 내리는 비를 견디듯. 그들이 어린 시절 자신들이 받은 상처를 그 유리처럼 깨뜨려버리는 대신, 로맨틱한 사랑으로 마무리하는 것에 어쩐지 안도하게 된다. 아마도 그건, 사랑만큼 그 치유에 마음이 가기 때문일 것이다. 부디 '가족'으로 부터 상처받은 청춘들이 서로를 보다듬으며 치유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미니 시리즈와 미니 시리즈 사이 땜방처럼 들어간 2부작 드라마, 극단적이지만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관계'의 이야기를 '사랑'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때론 달달하게 때론 뭉클하게 이 시대의 청춘 서사를 짧지만 공감가게 완성해 보인다. 

by meditator 2017. 5. 10. 14:23